[영화공감] 영화 ‘해빙’이 정작 녹여내지 못한 것
2017. 03.20(월) 13:20
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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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해빙(解氷), 얼음이 녹아 풀림, 흔히 다시 태동하는 생명을 떠올리기 마련인 시기이지만 영화 ‘해빙’에서만큼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깊이 잠겨 있던 머리 없는 무의식이 떠오르는 때인 동시에 인간의 악한 본성이 이성의 베일을 찢고 밖으로 나오는 때다.

영화 ‘해빙’은 병원 개업에 실패한 의사 승훈(조진웅)이 우연찮은 몇 가지 계기로, 집주인 부자를 미제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리는 절정 직전에 이를 때까지 철저히 승훈의 시점을 따르게 되는 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장면과 장면이 끊기며 이어지는 부분이다. 왜 이야기가 연속되지 않을까.

추측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다. 사이사이 잠에 들고 깨고를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었다거나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편집(심장을 조이는 배경음악과 함께)의 일환이었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치 어떤 ‘해리(解離)성 장애(통합되어 있던 개인의 기억, 의식, 정체감, 지각기능 등이 단절되어 와해된 행동상태)’에 걸린 사람의 기억마냥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막상 우리가 깨닫는 건, 믿었던 승훈의 기억이 의외로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감독의 의도가 충분히 녹아들어간 결과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관객이 인지할 수 있진 않다. 왜냐 하면 열린 것도 아니고 닫힌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건의 마무리가 관객들의 시선을 ‘그래서 범인이 누구였다고?!’하는 단순한 물음에만 머물게 했다고 할까. 정작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는데, 이도 저도 아니어서 도리어 복잡해진 이야기의 모양새가 주제와 오롯이 연결될 수 있었던 편집과 배우들의 열연을 조금은 쓸모없게끔 만들어버린 것이다.

덧붙이자면 소재와 배경 등 이야기의 요소요소가 주제와 갖는 연결성은 탁월하다. 의식이나 이성이 억누르지 않고 있을 때 드러나는 무의식 혹은 인간 안에 내재된 악한 본성의 모습을, 얼음이 녹은 강 위로 떠오른 목 없는 여자시체와 수면내시경 중 내뱉은 어떤 이의 고백 아닌 고백(승훈의 마음을 교란시켰던)으로 연결시켰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배경도 한때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신도시로 설정하면서, 속은 곪았는데 겉만 멀쩡한 주인공, 그로 대표되는 보통의 우리, 현대인들을 그려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승훈의 대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답이 없는 현실과 달리, 범인이란 정확한 답이 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인물로, 여기서 ‘그런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 내어 유기까지 하는 흉악한 살인마다. 답이 없는 현실에서 승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만은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명제이자 답니다. 비록 이런 그의 생각과 달리 전개되는 작품의 펼쳐짐은, ‘그런 사람’이 따로 없다며, ‘그런 사람’이고 아니고는 강이 얼고 녹는, 잠에 들고 깨는 딱 그 정도의 차이라 말할 따름이다.

좋다. 이만큼 적합한 설정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문제는 이야기의 형태가 단순하지 못했다는 것, 주제가 추상적이고 복잡할수록 이야기는 단순하게 뽑아내야 제대로 녹여낼 수 있는 법이다. ‘해빙’은 얽히고 얽힌 사건의 범인을 두고 관객들로 하여금 아예 헛갈리게 하지도, 끝까지 일관성 있게 몰지도 못했다. 전자였다면 보는 이들의 머리는 좀 아파도 주제가 살았을 테고 후자였다면 주제가 덜 살더라도 좀 더 깔끔하고 감각적인 추리스릴러물로 남았을 테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찝찝하고 복잡한 마무리를 택하는 바람에, 굳이 되짚어보고 싶지 않은 그저 기분 나쁜 공포물로 남고 말았다.

어쩌면 비평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좋은 영화일 수 있으리라. 외부의 불안한 현실에서 오는 압박감으로 균열이 일어난 이성 혹은 선한 의지, 그 사이에서 드러난 악한 본성을 갖가지 상징적인 설정으로 똑똑하게 맞물려 놓았으니까. 그러나 영화는 평론가들만이 아닌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서, 다수의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적인 재미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이게 결국 영화의 주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고. 어쨌든 너무 많이 담으려다 정작 중요한 건 녹여내지 못한 셈이랄까. ‘해빙’이 남긴 안타까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 출처=영화 '해빙'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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