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공감] ‘꽃보다’와 ‘삼시세끼’엔 있고 ‘윤식당’엔 없는 것
2017. 04.19(수) 18:24
윤식당
윤식당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누군가 한가롭고 아름다워 살아 볼만한 삶의 모양새를 묻는다면 tvN ‘윤식당’을 이야기하겠다. 한번쯤 가고 싶어 하던 휴양지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과 비호를 받으며 오로지 오늘 하루의 식당운영에만 힘을 쏟으면 된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쫓겨난다거나 빚 독촉을 받을 일 없고, 하루의 생계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방송프로그램이 메마른 현실 속 우리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상의 신기루가 아닐 수 없다.

‘윤식당’엔 네 명의 배우가 네 명의 캐릭터를 맡는다. ‘윤식당’의 사장이자 메인 셰프인 ‘윤여정’, 그녀를 보조하는 ‘정유미’, 음료 제조를 맡은 ‘이서진’, 그리고 서빙 담당 ‘신구’까지. 어쩌면 예능프로그램계의 마이다스인 나영석 PD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이미 흥행이 보장되었을지 모를 ‘윤식당은, 브라운관을 꽉 채우다 못해 넘치는 출연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백전백패의 완벽한 승리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한갓진 삶의 풍류를 누리며 때마다의 끼니를 채우기만 하면 되었던 ‘삼시세끼’보단 좀 더 나아간 형태다. ‘윤식당’은 장사를 해야 하니까, 그것도 요리가 주업이 아닌 사람들이, 그것도 만리타국에서. 하지만 무엇이든 빽빽한 도시에서,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단 실제적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 이들에겐, 이처럼 낭만적인 가상현실이 또 없으리라.



일정의 삶만 보장된다면 손님이 오지 않고 장사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몇 발자국만 나가도 맞닥뜨릴 수 있는 청아한 바닷물과 쏟아져 내리는 맑은 햇빛, 여기에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온 몸으로 내뿜는 흥겨움은 메아리처럼 돌고 돌며 공간을 가득 메운다. 딱히 돈을 크게 벌 생각도 없는 이들에게 메뉴를 개발하고 손님을 끌어와야 한다는 고민은 지루할지도 모를 여유로운 삶의 하나의 작은 자극이 될 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윤식당’은 잃어버린 가치들을 재인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세끼’와 달리 최고급 신기루로서의 역할, 즉, 우리가 처한 현실과 너무 달라 보고 나면 도리어 마음이 공허해지게 되는 결과를 안긴다. 누구나 존경하고 존재감 있다고 인정하는 배우들이 식당을 하는 그 곳은, 그야말로 보통의 우리가 누릴 수 없는 지극한 꿈과 환상의 세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드라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이다.

우리가 종종 꿈꾸는 한갓진 곳,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본연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현실을 도피하려는 하나의 방편 혹은 일종의 질 좋은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써 무조건적인 선망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여행지에서의 삶이 아무리 좋고 또 좋아 보여도 그 곳은 어디까지나 여행지이며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 할 삶은 이 곳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우린 철저히 여행객이고 이방인일 따름이다.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익숙한 ‘나’를 떠나 새롭고 낯설어서 더욱 ‘나다운 나’를 만나고 돌아와, 그 힘으로 현실의 삶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 가는 데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가치를, 우리는 나영석 PD의 앞선 여러 작품에서 느껴왔고 얻어왔단 점이다(‘꽃보다’ 시리즈가 그러했고 ‘삼시세끼’가 그러했다). 이는 단순한 대리만족을 뛰어넘어, 그저 현실에 치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 여겼던 우리에게 건네는 힘 있는 위로였으며 우리가 그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윤식당’에게도 동일한 기대감을 걸었다면 욕심일까. 물론 예능프로그램의 기본 소양인 재미 부분에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이전 프로그램들이 주었던, 주변이 요구하는 기준을 쫓느라 마냥 바쁘게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어진 자신의 삶을 꼭꼭 씹으며 살라는 위로와 격려가 ‘윤식당’에게선 들려오지 않으니, 마음 한 구석부터 차오르는 허함을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한가롭고 아름다워 살아 볼만한 삶의 모양새를 묻는 누군가에게 ‘윤식당’을 이야기하겠단 마음은 여전하다. 비록 그러한 삶이 우리의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고, 그것을 본다 하여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나 지혜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조건 하에서. 어쩌면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나영석 PD에게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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