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특집' 문재인, 운명 노무현과 김대중 유언…그리고 간절한 책임감
2017. 05.10(수) 01:43
문재인 19대 대통령 당선
문재인 19대 대통령 당선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19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된 문재인 후보의 운명같은 삶이 귀감이 됐다.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을 방송 중인 종합편성채널 MBN '개표방송-하나되는 대한민국'에는 '제19대 대통령 특집, 문재인 새시대의 문을 열다' 특집이 꾸며졌다.

문재인은 당선 확실로 19대 대통령 당선인이 됐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사상 최대 피난민의 탈출이 이뤄졌던 당시 문재인 부모는 거제로 내려왔고, 3년 뒤 문재인이 출생했다. 문재인 탯줄을 자른 할머니는 당시를 회상했다. 문재인 부모는 타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산 영도로 향했다. 당시 영도는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소년 문재인은 그 가난에서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꿨다.

문재인 후보 모교 선후배들은 "이때도 잘생겼다"며 졸업사진을 확인했다. 그들은 "옛날엔 말도 잘 못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기들이 기억을 잘 못할거다. 유세 보니 많이 늘었다"고 넉살이었다. 문재인은 집에서 공부할 환경이 안 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학교 공부방에서 늘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고. 숱한 소설까지 섭렵한 그는 사회의식이 싹텄다. 경남고등학교 시절엔 의외로 '문제아'였다. 하지만 급우들에겐 잊지 못할 학생이었다. 부산 금정구 해동저수지로 소풍을 가던 시절, 길이 험해 포기를 하려던 동급생은 "친구들이 어느 순간 안 보였다. 둘만 남게 됐을 때 재인이가 나를 업었다. 그땐 재인이도 힘도 없고 조그맸다. 걷다 쉬다 반복하고 나중에 도착했을 때 소풍은 거의 파장 수준이었다. 훗날 그 얘기를 하더라. 자기가 그때 좀 더 힘이 세고 키가 컸다면 나를 마음껏 업어줬을텐데 같이 소풍가자고 말은 했는데 업어보니 힘들고 속으로 울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1969년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추진했고, 전국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로 들끓었다. 당시 교련 거부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문재인도 그 속에 있었다. 경희대학교 시절, 유신 반대 투쟁에 나섰다. 당시 동료는 "경희대 교복을 입은 단정한 친구가 오더라. 나중에 바로 코 앞에 왔을때 그 인상은 눈이 매우 강렬한 친구였다. 사회 문제점을 풀고 싶지만 풀 수 없는 상태의 답답함, 그러나 앞으로 반드시 풀겠단 욕망, 열망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1972년 10월 박정희는 10월 유신과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를 반대하는 대학엔 탱크를 보냈다. 살벌한 시대였다.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 유신 반대 행동이 벌어졌다. 74년 정초, 대통령 긴급조치로 이를 반대하거나 비판하거나 개정하자고 주장만 해도 징역 15년에 처하는 것이었다. 문재인은 치열하게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구국선언문을 발표한 대학생들이었다. 당시 총학생회장 강삼재가 경찰에 잡혀 나타나지 않았고 학생들이 우왕좌왕 할 때 문재인이 대신 나섰다. 결단과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인혁당 관계자들이 살해를 당하자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감옥에 갔다.

유신 반대 투쟁을 함께 한 대학동기는 당시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평생을 우리가 72년도 대학 들어온 뒤부터 평생을 늘 42년을 같은 길을 걸었던거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지만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입영 영장을 받고 강제 징집을 당한 문재인은 특전 사령부에 배치받았다. 특전사 동기들은 "군생활을 같이 했다. 차렷 자세를 하다 보면 무릎이 붙어야 하는데 우리 대통령님은 약간 오다리다. 아무리 노력해도 붙을 수 없는 다리였다. 노력했는데 안 붙으니 밤에 잘 때 도복 끈으로 다리를 묶고 자고 그랬다. 밤에 옆에서 자면 조금씩 끙끙 앓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탁탁 털고 일어났다"고 했다. 당시 부사관은 "군에 징집돼 들어온 사람인데 제가 그걸 안 건 80년인가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을 보고 알았다. 그 정도로 과묵했고 사람들에겐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동료들이 기억하는 문재인은 특별한 병사였다고. 처음이라 믿어지지 않을만큼 거뜬하게 공중낙하, 수중침투, 폭파과정, 화생방 훈련 특A급 부사였다고. 당시 소속 대대 중위는 "병사들에겐 우등상 안 준다. 직업군인에게만 줬다. 근데 문 대통령을 (다른 병사들이) 따라 갈 수 없는거다. 실제 폭약 터뜨리는데 그 사람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으니 간부들이 사정하며 안 줄 수가 없어 이등병에 상을 준거다"라고 했다.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총살을 당했고 긴급조치가 해제돼 학교로 돌아간 문재인은 12.12 사태를 주도하다 또다시 구속됐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2차 사법고시 합격 통지를 받았다.

문재인 부인 김정숙 여사는 대학 2년 후배였다. 재학 중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최루탄을 얼굴 정면에 맞고 기절했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김정숙 여사가 물을 닦아줬다고. 김정숙 여사는 "제가 남편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주 커다란,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논리적인 걸 좋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재인은 판사를 지망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임용에서 탈락해 아내에 미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랜 연애 기간, 결혼 후 지금까지 늘 기다리고 견뎌주고 도와주고 그렇게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라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대형 로펌을 거절하고 부산으로 귀향한 문재인은 운명적으로 한 사람을 만났다. 변호사 노무현이었다. 두 사람은 합동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이 사무소는 경남 일대 노동인권 사건을 총괄했다. 노무현, 문재인은 지향점은 같았지만 성격은 판이했다고. 1987년 열린 고문 사망 박종철의 범국민 추도대회, 부산에서 연행된 두 사람의 조서는 완전히 달랐다. 과거 법무법인 사무장은 "조서도 완전히 다르다. 노무현 변호사는 투사다. 진술 거부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조목조목 변호사답게 반박했다. 노무현 변호사는 길거리에 드러눕고 싸우고 그러는데 문재인 변호사는 그건 못하겠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신사였다"고 했다.

당시 부산 경남 지역 노동 판례 모음집을 보면 변호사 문재인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노동 변론을 많이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를 찾았다. 당시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은 한 이는 "회사가 문을 닫고 투쟁하게 되며 10여 명이 기소되고 몇 분은 구속되는 상황에서 저희가 법적인 것도 모르는데 힘이 되어주던 분이 문재인 변호사였다. 저희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저희를 위해 변론해주셨다. 기억나는 게 한 아주머니가 같이 올라갔다가 사무실을 내려오며 '우리도 변호사 빽 있다'고 좋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전 부산양산 해고노동자투쟁 위원장은 "노동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것이 정말 감동이었지만, 더 사실 놀란 건 저렇게 하시고도 본인은 그냥 개별 노동자들만 걱정하고 챙겼다. 전국적 사안이나 정치적 이슈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저 분은 그냥 개별의 사람이면 사람, 노동자면 노동자, 사람이 소중했던 거다"라고 했다.

인권 변호사로 유명했지만 승소율도 높았다. 당시 동료 변호사는 "법률가로서 상당히 뛰어났지만 마음이 따뜻한 분" "치밀하고 끈기가 있고 사건을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는 분" "억울한 사건, 다른 사무실에서 '도저히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하는 사건은 기꺼이 장시간 상담을 통해 사건을 맡고 이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실제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둔 분"이라고 했다.

문재인이 변호 맡은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 1989년 부산 동의대에서 일어난 5.3 동의대 사건이다. 경찰이 투입됐다가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문재인은 공동 변호단을 꾸렸다. 당시 17년만에 복직한 교수는 "모든 걸 재판에 걸었다. 재판 가면 문재인 변호사 용어는 법정 용어가 아니다. 재판부, 검찰, 방청객이 다 감동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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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 전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은 "정책에 대해 정말 잘 알고 계신다. 이 분이 말씀하시면 안심이 된다"고 했고, 전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은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비서실장 밑에서 일하는 게 가장 힘들다. 아이디어와 생각 많으신 노무현 대통령과 그 일을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해해야 일을 진행하는 문재인 비서실장 밑에서 일하는 이들은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공부가 많이 됐다"고 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두 분 공통점이 낯가림이 정말 심하시다. 친한 체를 잘 못한다. 정치인은 악수 잘하고 잘 몰라도 아는 체하고 이런 게 표와 직결되지 않느냐. 그냥 그윽한 눈빛으로 소통하려고 하지 입으로 고맙단 소리를 잘 안 한다"고 했다.

청와대 시절 문재인은 철저한 자기관리, 주변관리로 유명했다. 그래서 미움도 사고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어려울 수록 원칙을 지켰다고. 일례로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데 비닐봉지에 짐을 싸들고 가는 자세, 일체 청탁 전화를 거절하기 위해 일절 끊은 것, 약간의 타협 얘기를 하면 핀잔을 하는 등 '얕은 수를 쓰지 말고 정공법으로 가자'던 문재인이었다고.

문재인은 청와대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치아가 10개나 빠질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민정수석을 사퇴한다. 그리고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다. 그러나 휴식은 길지 못했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대한민국은 촛불로 물들었다. 노무현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촛불이었고, 문재인은 급히 귀국해 법정 대응 전반을 조율했다. 청와대로 돌아간 문재인은 시민사회 수석, 민정수석 등 한결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켰다. 둘은 서로가 있어 요동치는 날들 숱한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자연인으로 돌아가 봉하마을에서 평화로운 인생을 꿈꿨고 문재인도 양산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찾아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주변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시작됐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치욕스러운 검찰 수사를 했고 이를 지켜보던 문재인은 가슴이 타들어갔다고. 하지만 결코 그 고통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그였다.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 차성수는 "너무나 비통하고 원통하고 분하지 않았겠느냐. 화가 하늘 끝까지 치밀었을 거다. 그걸 그렇게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 눈물이 나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고 그게 표정에 나타나는데 어떻게 저렇게 의연하고 담대하실 수 있나. 그게 문재인이다"라고 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비극, 2009년 5월 29일 스스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장을 책임져야 하는 문재인은 상주로 나섰다. 김경수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직접 우시는 걸 못봤다. 그랬는데 지난 대선 때 영화 '광해'를 관람 하시고 나서 한동안 나오시질 못했다. 떠나가는 가짜 광해를 보고 절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거기서 눈물이 터지시더라. 그걸 보는데 우리는 그렇게 대통령님을 보내드리지 못했는데 대통령님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거다"라고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리움과 회한, 미안함이 뒤섞인 오열한 문재인이다. 당시 아직 친구를 보내지 못했던 그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몇달 동안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여정부 시절이 새하얗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던 문재인이다.

그리고, 문재인은 그의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도 언급했듯 노무현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적당히 도우며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치열함이 자신을 늘 각성시켰고 고인의 서거로 결국 운명처럼 다시 나서게 됐다고 했다. 또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도 있었다. 민주당의 힘만으론 정권교체가 어려우니 범야권이 대통합해야 이룰 수 있다고.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단 걸 깨달은 문재인은 본격적으로 정치의 길로 나섰다. 노영민 전 국회의원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고 하지 않느냐. 그 운명이 친구 노무현의 죽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주변인들의 간곡한 권유, 본인이 살아오면서 도망치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의 비이성적인 행태들로 인해 문재인은 누구보다 절규하는 국민의 가까이에 있었다. 윤건영 전 청와대 정무기획 비서관은 "진흙탕에 뒹굴어 이미지가 훼손되고 상처받을 수 있지만 당을 바꿔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게 당시 대표님의 말이었다"고 했다. 총선 승리, 반년 가까이 촛불로 타오른 광장에서도 문재인은 촛불속에 늘 광장에서 거리에서 국민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 국면에 이어 새 시대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2017년 19대 장미 대선에서 문재인은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MBN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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