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공감] ‘하룻밤만 재워줘’, 결국 안에 담기는 ‘무엇’이 관건
2018. 04.12(목) 13:51
하룻밤만 재워줘
하룻밤만 재워줘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여행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 가서 가게를 열든 야생 체험을 하든 거리공연을 하든, 틀의 모양새만 조금씩 달리할 뿐 연예인들이 기존의 유명세와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세계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여행’이라는 공통의 색을 갖는다. 이제 틀이 주는 신선함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느냐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KBS 2TV ‘하룻밤만 재워줘’도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다. 연예인들이 낯선 나라, 낯선 도시로 떠나 즉흥으로 하룻밤 잘 곳을 구한다는 설정으로, 현지인과의 교류가 주요 시청 포인트이지만 이러한 광경은 여타의 프로그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 시청률이 예상치보다 낮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일 방송분은 이런 시각을 뒤바꾸는 것이었다. 런던에 간 ‘이상민’과 ‘조재윤’이 가까스로 하룻밤 재워줄 현지인을 찾아 그 집에 머무는 내용이었는데, 함께 저녁을 하며 나눈 대화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우리에겐 이상적인 여행 장소인 런던에서 살아가는 두 여인의 꿈이 서울에 사는 우리들과 별다를 것 없는 ‘내 집 마련’이라는 점에서부터 ‘통일’에 대한 이야기까지, 익숙하고 게으른 눈빛으로 보던 시청자들의 시선을 ‘당황’하게 했다 할까.

‘여행’과 ‘런던’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 좋은 ‘당황’이다. 여행은 일상이 아닌 일탈이라 으레 아름답고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지만, 일탈이 아닌 일상이 되었을 땐 상황은 달라진다. 여기나 거기나 사람의 삶의 생김은 비슷하여 결국 별 다를 것 없는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야 할 월세와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는 것, 삶의 태도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여유의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결국 일상은 일상인 것이다.

물론 좋은 ‘당황’은 오만과 편견을 깨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거품을 제거한, 여행의 실질적인 가치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이상민’과 ‘조재윤’은 잠자리를 제공해준 두 명의 현지인에게 닭볶음탕을 만들어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겉보기엔 단순히 외국인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불과했지만, 이 식탁 교제를 통해 공유된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삶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입맛에서부터 한국인에게 내재된 ‘분단’이라는 민족적인 슬픔까지, 삶의 공간을 내어준 외국인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교류였다.

여행의 실질적인 가치는 일상의 일탈에 있지 않다.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낯익은 일상 낯설게 보기’에 여행의 무게가 실린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 너무도 익숙하여 삶의 진면목을 놓치기 일쑤다.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틀을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이상민’과 ‘조재윤’이 한국인의 눈으로 영국과 마주치고 영국인의 눈에 한국을 비추이면서, 도리어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시키다니, 흔한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일 줄 알았던 ‘하룻밤만 재워줘’의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시종일관 진솔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대한 ‘이상민’과 ‘조재윤’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들이 그저 흥미를 이끌어낼 만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만 식탁 교제를 채우지 않은 덕에 가능한 전개였으니까.

결국 안에 담기는 ‘무엇’이 관건이었다. 틀이 신선할 시기가 지났다면 ‘하룻밤만 재워줘’가 건네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받들어 더욱더 튼실한 알맹이를 마련하는 건 어떠할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좋은 당황이라면 틀이 어떠하던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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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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