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윤종빈 감독의 정면 돌파 [인터뷰]
2018. 08.08(수) 11:21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 인터뷰
영화 공작 윤종빈 감독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행위는 연애와도 같다. "사랑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 하고 싶단 마음이 강해야 버틸 수 있고 그 결정만큼은 순수해야 한다"는 그는 꽤 열렬하고 낭만적이다.

윤종빈 감독은 안기부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 사건을 알게 됐다. 1990년대,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한 안기부의 북풍 사건을 직면한 뒤 조국의 이념이란 미명에 개인의 신념을 꺾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안기부의 버리는 카드가 됐다. 이후 이중간첩으로 몰려 온갖 '국가안보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6년의 옥살이를 한 실존 인물이다. 그런 흑금성 사건을 처음 접한 윤종빈 감독의 반응은 "아, 대박. 헐"이었단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고. 90년대 당시 고등학생이었단 그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실화를 이제야 알게 된 놀라운 감상을 '공작'(제작 영화사 월광)이란 스토리로 풀어낸 것이다.

윤종빈 감독은 앞서 영화를 기획했을 때 첩보원의 정체성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단 의도를 털어놓은 바 있다. 원래 스파이 활동은 국제법상 금지된 범죄 행위다. 하지만 암암리에 많은 국가가 행하고 있는 행위다. 그만큼 알려져선 안 되고 어떤 나라도 자국의 스파이 행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밀 미션이지만, 흑금성 사건은 국내 일부 정치 세력과 안기부의 이해관계 때문에 드러난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윤종빈 감독을 흥미롭게 했다. 그는 "국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밀공작원을 공개하고 법정에 세웠다. 이를 어떻게 사법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일례로 지난 4월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청에 문재인 대통령 또한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놀라운 퍼포먼스가 펼쳐진바 있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허가를 받지 않고 국경을 넘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다. 지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실체 또한 마찬가지다. 사법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왜곡된 사건들도 많다. 그는 "제 판단은 하나였다. 안기부라는 조직에 소속된 군인이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어떤 정치적인 사건의 진실과 맞닥뜨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 척 넘어가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떤 선택을 했다. 이 신념에 대한 평가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종빈 감독의 핵심은 분명했다. 흑금성은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지킨단 신념 하에 미션을 수행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가족들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세력이 그들의 안위를 위해 북한과 내통하는 현실에 조국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다. 그 이후 흑금성이 택한 선택은 개인의 신념이라고 봤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거래를 한 것이 아니기에. 이것이 옳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의 문제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다뤄볼 만한 얘기였다. 실제 흑금성을 만났을 때의 감상도 같다. 윤종빈 감독은 "저랑 세계관이나 국가관도 다 다르겠지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하게 알겠더라. 그 믿음이 있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흑금성에 대한 판단은 상반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은 "영화는 감독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모든 창작물은 만드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나"라고 감독으로서의 확고한 가치관을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공작'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기구하고 가엾은 비밀공작원의 지난 삶의 궤적에 작지만 강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었다. 실제 흑금성이 영화를 본 뒤 뭉클했단 소감을 남겼단다. 윤종빈 감독은 그를 떠올리며 "실제 그분은 굉장히 재밌으시지만 기운이 세고 포커페이스라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기 어렵다. 일반인이라고 느껴지지 않더라"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 또한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틀림없다. '공작'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전 정권이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암암리에 퍼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며 "흑금성 사건은 조작된 사건"이라 생각한다는 주관을 담아 영화를 만들겠다니.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주변에서 괜찮겠냐고 하도 그러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영화 한 편 만드는 것이 문제 될 게 뭐 있나 오히려 의아했다"며 "옛날 얘기 아니냐. 일종의 사극"이라고 너스레다. 절더러 사명감 있는 감독도 아니고, 그저 재미있으니까 만든 영화라며.

그러나 그가 그려낸 '공작'의 북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의 캐릭터만으로도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북한 엘리트 출신이란 날카롭고 예리한 이미지 이면에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리명운의 감정 묘사는 작품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을 전달하기 때문. 이에 윤종빈 감독은 "어떤 체제든 관료들이 정말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온 역사를 알게 되면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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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양분화로 치달은 작금의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또한 올곧고 뚜렷했다. "우리나라는 이념 갈등이 없다. 그렇게 포장돼 있을 뿐"이라는 그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그 껍질을 쓴 독재국가다. 이념이 하나밖에 없는데 분쟁을 좋아하는 일부 집단들이 프레임을 씌우고 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올바른 생각과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사고를 가진 윤종빈 감독이 치열하게 완성해낸 '공작'은 액션이 없는 첩보물임에도 실화가 전하는 압도적인 기운과 상황적인 연출, 배우들의 미묘한 심리 묘사로 극도의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또한 그 속엔 분단국가란 체제의 비극과 애수가 담겼으며 이를 권력 유지 도구로 이용하는 정치 공작 구조를 과감하게 그려낸다.

군대 내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그린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들'을 시작으로 노태우 정권의 10. 13선언을 토대로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펼친 '범죄와의 전쟁', 부당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의적들의 액션 활극 '군도:민란의 시대'에 이어 '공작'까지. 매번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길 즐겼던 윤종빈 감독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늘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란다. "제가 재밌고 호기심이 가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 그는 "그러면 그 DNA에 맞는 사람들은 좋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대단치 않게 말한다. 단 "영화 만들며 늘 느끼는 교훈이 있다. 미리 재단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러니 충실하게 재밌게 집중해서 만들자는 생각"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매번 새롭고 과감하게 다양한 변주를 넘나드는 것일 테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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