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의 ‘사이렌’, 그리고 ‘세이렌’ [가요공감]
2018. 10.09(화) 11:01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사이렌’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미의 등장은 위험 그 자체다. 그녀가 나갈 채비를 하고 문을 여는 순간 붉은 사이렌 신호와 ‘warning’이라 적힌 출입금지선이 앞을 가로 막고, 그녀는 조금은 좌절하고 또 조금은 분노한다.

‘24시간이 모자라’가 ‘원더걸스의 선미’가 아닌 독자적인 ‘선미’로 거듭나게 한 곡이었다면, ‘가시나’는 그녀가 자닌 색, 앞으로 취할 방향 등, ‘선미’라는 존재를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 곡이라 하겠다. 즉, 걸그룹의 이미지를 벗으며 다소 파격적인 변신을 취한 것에, 여성 가수로서의 선미가 가진 어떤 힘과 가능성을 더했다고 할까.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이나 퍼포먼스의 파격적인 변화가 대중에게 남긴 단상이 너무 컸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성적 매력만 강렬하게 부각되니 선미는 자연스레 ‘위험한’ 여자 혹은 ‘나쁜’ 여자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녀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지는 상관없다. 짧은 상하의와 교태 가득한 춤사위 등이 선미를 규정짓기 시작한 것이다.

“네 환상에 아름다운 나는 없어”

신곡 ‘사이렌’은 이런 대중의 인식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선미를 위험한 여자, 나쁜 여자의 틀에 가둔 건, 선미 그 자체보다 자신의 시선에 보기 좋을 대로, 원하는 대로 각자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녀를 보고 만드는 대중이라고 말이다. 설사 위험한 여자라 해도 이미 경고했고 본인도 자각한 상태에서 이끌려온 것 아니냐는, 상당히 흥미로운 반문이다.

‘사이렌’의 어원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한 마녀에게서 비롯된다는 점도 인상 깊다. ‘세이렌’이라 불리는 이 마녀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혹한 뒤 배를 난파시키는 ‘위험한’ 존재였다. 호메로스의 소설 ‘오뒷세이아’에 따르면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 또한 동료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은 기둥에 묶음으로써 세이렌의 유혹을 피할 수 있었다 한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지자면, 유혹을 당한 것일까, 받은 것일까. 세이렌은, 선미는 그저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추었을 뿐이다. 이를 듣고 보고 마음을 주며, 자발적으로 유혹을 받아 위험에 처한 쪽은 우리다. 누가 경고를 받아야 하는가. 유혹을 받고 싶지 않다면, 그 손길을 잡고 싶지 않다면, 보고 듣는 쪽이 보지 않던지 오디세우스처럼 귀를 막고 몸을 묶던지 할 일이다.

오늘날의 사이렌(세이렌)은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의 의미로 더 익숙하다. 과거의 세이렌이 소리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안겨 주었다면 오늘날의 사이렌은 소리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듣고 위험하다 판단이 선 이들은 도망가거나 피하면 될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C. C. 투르라는 발명가가 마녀 세이렌에 착안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참 재미있는 발상 아닌가.

그래서 선미의 ‘사이렌’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선미를 그저 성적 매력에 입각한 시선에서 바라보며 위험한 여자라 간주하고 있다면 괜히 여러 딴 소리 말고 피해 가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선택했다면 본인만의 어떤 환상 속 선미가 아닌 선미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참 당돌한 방식으로 대중이 자신에게 부여한 이미지와 잣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더욱 확연해진 선미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하며 비로소 그녀의 존재가치를 온전히 인정한다. ‘사이렌’이 얻어낸 진정한 성취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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