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가 선물해준 류혜영만의 시계 [인터뷰]
2019. 01.27(일)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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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배우 류혜영의 시계는 조급하게 보채지도, 약이 닳아 멈춰 있지도 않다. 공백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만의 값진 시계를 찰 수 있게 된 류혜영은 그저 제 속도로, 자신의 소신이 담긴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고자 한다.

유독 이별에 익숙해지지 못한다는 류혜영은 작품이 끝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한다고 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자신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작품을 잊고 새 작품을 하기 위한 류혜영만의 준비 과정이었다. 이번 올리브 화요드라마 ‘은주의 방’(극본 박상문·연출 장정도) 촬영을 마치고도 그는 긴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마지막 촬영부터 종영까지의 텀이 꽤 길었던 탓에 류혜영은 “(여행 가서 두고 온 작품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심은주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고도 신중히 꺼내 놨다.

그는 ‘은주의 방’에서 셀프 인테리어에 눈 뜨며 망가진 삶을 회복해가는 심은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직, 자취, ‘썸’ 등 현실밀착형 소재를 녹여낸 작품에서 류혜영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대한민국 2030 ‘은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류혜영이 이번 작품을 택한 이유도 공감에 있었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 동명의 웹툰을 찾아봤다는 그는 “은주와 제가 나이도 비슷했고, 29세에 백수가 된 취준생이 겪는 고민들과 성장해나가는 모습들이 공감이 됐다. 그래서 은주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웹툰을 보고 힐링을 받았다. 웹툰처럼 취지가 잘 전달이 된다면, 저 또한 힐링을 전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었다”고 복귀작으로 ‘은주의 방’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많은 이들이 자신처럼 작품을 통해 힐링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은주를 연기했다. 류혜영은 “최대한 현실에 있을 법한 친구로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19년 된 ‘남사친’이 있다는 건 판타지적 설정이지만 은주만큼은 ‘나 같다’ ‘내 친구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이것저것 추가하지 않고 담백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은주의 털털하고 긍정적 마인드를 보며 자존감이 높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좌절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고 은주를 표현함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을 많이 받은 밝은 은주를 표현하면서 저도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이게 된 것 같다”고 은주 캐릭터를 향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은주와 ‘은주의 방’은 류혜영에게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후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오게 해 준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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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방’에 대해 “배우로서의 길을 가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표현한 류혜영은 오랜 공백기를 가지며 새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됐다. 그런 그가 “이제 새로운 작품을 할 용기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만난 게 ‘은주의 방’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현장에 나가는 거라 ‘전보다 더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무서운 마음이 촬영하면서 해소가 됐고, 자존감도 회복됐다. 제가 고민한 시간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만큼은 성장했구나’를 스스로 깨닫는 지점이 있었다. 이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더 생긴 것 같다”며 작품을 마친 지금, 지금의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작품이 ‘은주의 방’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가 오랜 공백을 가졌던 이유는 스스로 중심을 단단히 잡고 싶어서였다. 쟁쟁한 선배들과 영화 ‘특별시민’을 촬영하며 프로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배웠다는 그다. 그 옆에서 본인을 돌아보니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고 한계도 많이 느끼게 된 그는 서둘러 작품을 찍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택했다. 류혜영은 “제 스스로에게 관심을 돌려 고민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한테 집중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행복한 것이 뭔지 생각했다. 중심이 잡혀 있어야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든 즐겁고 행복하게 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고 고민 끝에 얻게 된 것들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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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류혜영은 현재 답을 찾는 과정 속에 있다. ‘응답하라 1988’ 이후 쏟아진 큰 관심에 조급한 마음이 생겼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관심을 이어가고 싶고, 빨리 새 작품,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다. 그 조급함이 제게 안 좋게 작용할 것 같아 쉬었던 것도 있다. 이제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며 미소 지었다.

조급함이 두려웠다는 그가 항상 지향하는 점은 바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 거다. 류혜영은 “조급해지면 진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눈앞이 흐려지는구나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지금이 조금 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며 “고민하는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건 나만의 시계가 있다는 거다. 남의 시계를 쫓아가는 건 불행해지는 일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 배우가 선택하는 작품은 무조건 믿고 본다’하는 배우들이 있지 않나. 제가 선택하는 작품이 대중에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서 저도 그런 욕심이 있다”고 배우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말하며 최근 본 한 댓글을 통해 또 한 번 다짐을 되새겼던 일화를 밝혔다. 류혜영은 “‘혜영 씨 나오는 작품 믿고 보게 된다’는 댓글을 보고 너무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며 “그분은 그냥 지나가다 쓴 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부담감이면서도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런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더 다짐하게 됐다”고 캐릭터뿐만 아니라 작품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작품을 결정하고 싶다는 소신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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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팬이 남긴 한 마디는 그에게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오랜 공백기에도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며 응원을 잊지 않은 팬들에 대해 류혜영은 “커피차를 하는 게 작은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야 완성되는 거라는 걸 안다. 그렇게 많은 마음들이 담겨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니 너무 벅차오르더라. 공백기에도 댓글이나 메시지를 다 읽어보고 그랬다. 나를 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좌절하게 될 때도 그 생각을 하면서 일어나게 되고, 열심히 살게 해주는 힘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느덧 데뷔 12년이 된 그는 “지난한 12년을 보내고 보니 옛 경험들이 쌓여 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직업이 다 힘들겠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참 어려운 것 같고, 저라는 사람에 대해 직업적인 것 말고 인간적으로도 깊게 생각하게 해주는 일인 것 같다. 늘 새롭고 재밌다”며 “저는 아직도 멀었다”고 구수하게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걸어 나갈 용기를 얻게 한 공백기는 류혜영에게도, 그를 기다린 팬들에게도 선물이 돼 돌아왔다. 책도 더 많이 읽고,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의 올해 계획 중 가장 첫 번째는 “새로운 작품을 하는 것”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이제 막 징검다리를 건넌 류혜영이 자신의 필모에 ‘믿고 보게’ 만들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갈 시간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제공=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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