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의 세계 [인터뷰]
2019. 08.28(수) 11:00
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배우 이준혁의 세계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권력에 기생하는 비리 검사, 후임병의 사망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중위, 사수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누드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소방관 등. 그가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캐릭터들을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인품 때문이었다.

직접 만나 본 이준혁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왜?"라고 하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 "굉장히 좋은 생각이다"라고 공감할 줄도 알았다. 이렇듯 높은 공감 능력과 이해력으로 이준혁이 연기해 온 작품 세계는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이준혁이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극본 김태희·연출 유종선)로 마주한 세계는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 수뇌부 대부분을 잃으면서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이다. 이준혁이 맡은 역할은 '백령해전'을 승리로 이끈 해군장교 출신 국회의원으로, 영웅적인 스토리를 지닌 오영석이다.

국가적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극 중 여러 인물 중 이준혁이 오영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준혁은 "오영석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독특한 느낌이었다"면서 "명확한 것이 없고 여백이 많아서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즉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오영석에 매료됐단다.

이준혁의 말처럼 오영석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수려한 외모, 그리고 테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기적의 생존자' 타이틀을 등에 업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젊은 정치인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비뚤어진 신념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테러에 가담한 악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반전이 있는 인물이었다.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도무지 선인지 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오영석을 이준혁은 '망령'이라고 표현했다. 현실에 기반해 있지 않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그는 "제가 오영석보다 실제로 어리지만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도 비현실적이고, 분명한 것이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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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오영석을 연기하기 위해 오히려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했다. 오영석은 자신의 신념이 곧 선이며, 자신의 행동이 악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이러한 생각으로 빚어낸 오영석은 극 초반 시청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국민을 위하는 선한 정치인인지, 테러의 배후 세력인지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한 오영석은 시청자들을 양분(兩分)시키기도 했다. 국민적 영웅에서 빌런이 되기까지, 이준혁은 복잡다단한 오영석의 서사를 극에 켜켜이 쌓아 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준혁의 열연으로 오영석이 국회의사당 테러의 배후 집단과 연계된 인물이었다는 반전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시청자의 충격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 참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간이란 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거를 없애버렸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라는 등 오영석의 대사들은 지나치리만치 냉소적이다. 이같이 오영석이 이따금씩 내뱉는 대사들은 그의 기저에 깔린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케 하며 충격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준혁은 오영석의 이같은 '독설'에 대해 "독한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들춰내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혁은 "세상이 마냥 선하기만 한 곳이 아니지만, 분명히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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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이준혁은 오영석과 박무진(지진희) 관계성도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이상적이며 좋은 정치인인 박무진과 잘못된 신념을 지닌 정치가 오영석을 '빛과 어둠'의 관계로 이해했단다. 이준혁은 "모든 인물에겐 빛과 어둠이 있다. 박무진이 빛이라면 오영석은 어둠"이라고 했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그 힘을 잃는 것처럼. 박무진이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해나갈수록 오영석은 스스로의 악행에 발목 잡혀 점차 폭주하다가 자멸하는 서사를 완성한 그다.

테러 배후 세력과 관련된 증거들로 인해 수세에 몰린 오영석은 급기야 쿠데타를 계획해 권력을 쟁취하려 했다. 하지만 믿었던 부하의 배신으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모두가 선망하던 정치인의 이토록 초라한 죽음은 시청자들의 허탈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이준혁은 "등장은 화려하지만, 퇴장은 초라하게"라며 오영석의 비참한 최후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땅한 결말이라고 했다. 오히려 더 초라해 보였으면 했다고. 이준혁은 "이 드라마는 오영석이 아닌 박무진의 성장기였기 때문에 이 결말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처럼 이준혁의 열연으로 오영석은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격이 다른 악역의 탄생은 이준혁이기에 가능했다. 드라마 '비밀의 숲'과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악역 연기로 자신의 저력을 입증한 그이기에 시청자들의 호평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높아진 인기를 체감하냐는 질문에 이준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되려 "일을 오래 해서 그나마 좋게 봐주는 게 아닌가 싶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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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꾸준히 다른 캐릭터를 해왔다고 생각해요. 매번 다른 친구를 깊게 만나온 것 같아요. '핵 아싸'인 저를 이 친구들이 바깥구경하게 만드는 느낌이에요."

이준혁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올바른 생각으로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었다. '60일, 지정생존자'가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배우로서 이준혁의 목표 역시 그런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싶다고 했다. "제 목표는 원대하지 않아요"라고 말한 이준혁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걸 지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60일, 지정생존자'의 세계와 작별한 이준혁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떤 형태의 '바깥구경'을 하게 될지, 또 그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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