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다큐의 존재 목적, 저희가 도움이 됐을까요? [윤지혜의 슬로우토크]
2020. 02.09(일)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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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증강현실 기법을 사용하여 과거 부모가 죽기 직전의 자신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현실에 덧입혀진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도움은 되겠으나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한 실제적 과거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6일 방영한 VR휴먼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너를 만났다’는 3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딸을 잊지 못하는 한 엄마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로 딸의 실제 모습에 최대한 근접한 3D 모델을 구현하여 엄마와 가상의 재회를 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만져지지 않는 아이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못다한 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탁 나오니까 되게 좋더라고요.”

엄마가 모를 리 없다. 눈 앞에 보이는 딸이 실제가 아닌 만들어진 허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아직 실제 이미지를 따라잡을 만큼 기술이 진보하지 않은 탓도 있고 무엇보다 아무리 똑같이 만들었다 해도 어미가 어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겠는가(물론 그런 날이 언젠가 오겠다만 아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딸을 보고 끌어안을 수 있어서, 남아있는 마음을 건넬 수 있어서 좋았을 테다.

‘너를 만났다’는, 굳이 사랑하는 존재를 먼저 보낸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공통의 숙명을 지닌 사람이란 존재로서 우리 모두의 눈시울을 적신다. 사랑하는 딸을 무력하게 잃어야 했던 슬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고통을 그저 담담하게 감당할 뿐인 이들의 모습을 차분하고 꾸밈 없이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그 감정에 근접할 수 있도록 돕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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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이 되살아날 두려움보다 딸의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한,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남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니까,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또 빤히 보면서도, 3D 티가 나는 딸의 영상을 접하면서도 엄마와 함께 실제 딸을 만난 듯한 가슴 먹먹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어 우리가 상실한 소중한 사람들 혹은 함께 하고 있으나 언젠가 상실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온전한 몰입이 만들어낸 소통의 과정으로, 평소에 하기 힘든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깊은 삶의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받게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감동이 여느 드라마의 것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혹자는 반문할 수 있다. 허구의 것이 어떻게 진실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겠냐고. 하지만 허구의 것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모아졌다. 딸의 모습을 좀 더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백여명의 아이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비슷한 체형의 모델을 촬영하여 실제 얼굴을 입히는 시도를 했으며 최대한 딸과 유사하게 움직이도록 오랜 시간을 들여 모션을 땄다.

결국 엄마의 마음을, 딸을 만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우리의 마음을 울린 것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몸과 마음을 모은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너를 만났다’의 제작진이 딸을 만나고 온 엄마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다. “저희가 조금 도움이 됐을까요?” ‘너를 만났다’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인 동시에 다큐멘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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