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에게 ‘기생충’이란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2.14(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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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오스카’에게 ‘기생충’이 필요했다, 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이 ‘오스카’라 불리는 트로피를 네 번이나 들어올린 것이다. 약 80%가 백인으로 이루어졌다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가 만들어낸 결과였기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전체가 코로나도 잠시 잊을 만큼 들뜬 흥분에 휩싸여 있는 중이다.

알다시피 ‘오스카’는 백인들만의 잔치로 유명했다. 이번 92회 시상식의 후보들 또한 어김없이 영화 ‘해리엇’의 ‘신시아 에리보’ 외에는 모두 백인 배우가, 국제영화상을 제외하고 비영어 영화로 ‘기생충’만이 유일하게 노미네이트되어 ‘so white’라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물론 오스카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인 동시에, 어찌 되었든 봉준호 감독이 말한 것처럼 미국의 로컬 시상식이다. 자연스러운 맥락일 수 있단 소리다.

하지만 로컬이라고 하기에 할리우드는 전세계 영화 산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고 이를 기반으로 둔 게 오스카다. 즉, 세계 영화 산업의 흐름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주도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본인들이 그러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겠다만 그간의 양상은 안타깝게도 외국어 영화에는 한없이 콧대가 높은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때마침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한 ‘기생충’은 그들을 비롯한 모든 영화인에게 아주 시의적절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

전년도에 강력한 후보작으로 논의되었으나 감독상과 찰영상 및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장편영화상)을 받는 데 그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넷플릭스로 제작된 작품(이유를 굳이 찾는다면)이었다지만 ‘기생충’은 그렇지도 않다. 그간의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벗고 전세계 영화인의 축제로서 책임을 다할지, 그저 로컬 시상식임을 재확인할지, 92번째 오스카는 그 방향성에 있어서 결정적 방점을 찍어야 할 기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의 호명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기존의 오스카가 ‘기생충’에게 허락할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선이고 장벽이었니까. 그래서 감독상의 수상자로 영화 ‘1917’의 ‘샘 멘더스'가 아닌 ‘기생충’의 ‘봉준호’가 불렸을 때, 봉준호 본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탄사를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배우 이선균의 말을 빌려, 선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 오스카가 선을 넘어버린 거다. 오스카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했다”

여기에 작품상 시상자로 나온 배우 ‘제인 폰다’,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배우인 동시에 비틀린 사회구조가 일으키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항상 앞장서온 그녀의 의미심장한 한 마디가 더해지자 이상 징후는, 좀 더 확실한 변화의 조짐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오스카 최고의 영예를 받을 대상이 ‘기생충’이라 해도, 이변이 아니라, 마치 오스카가 했어야 할 당연한 선택인 마냥 전혀 이상하지 않더라.

결국 오스카는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명장면을 연출해냈다. 사상 처음으로 외국어영화, 국제장편영화에게 가장 빛나는 오스카를 쥐어준 것이다. ‘기생충’이 만들어낸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기로 앞에서 전세계 영화인의 축제로서 스스로를 각성하고 그에 맞는 방향을 취한 결과다. 장벽이 무너지고 선을 넘다, 이는 오스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큰 사회적 반향이 되고 있다. 오스카에게 있어 ‘기생충’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징적인 지점에 ‘기생충’이 운명처럼 위치하여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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