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록’의 청춘 겉핥기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0. 09.12(토)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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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오늘의 청춘을 위로하려 했다면 다른 세계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빌려 와야 했다. 안그래도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는 드라마 속 세계가 어느 정도 낯설기도 한데 주인공들이 대면하고 있는, 그 절망적이라는 현실의 모습까지 실재하는 우리의 삶과 큰 간격을 보이고 있으니, 참 예쁘기만 한 드라마가 건네는 무력한 위로일 뿐이다.

tvN 드라마 ‘청춘기록’(연출 안길호, 극본 하명희)은 ‘사랑의 온도’로 로맨스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하명희 작가의 신작인 데다가 배우 ‘박보검’과 ‘박소담’이 섭외되어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현실의 벽에 절망하지 않고 스스로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성장 기록’을 담아낸 이야기에 박보검과 박소담이라니, 청춘과 이토록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 또 있을까.

실제로 두 배우가 구현하는 청춘은 반짝반짝 빛나니 참 예뻤다. 박보검은 배우가 꿈인 모델 ‘사혜준’을 맡아 머리 굴리지 않고 제 힘으로 해내려 하는, 외모는 물론이고 성품까지 성실한 인물의 면모를 자기 본연의 모습에 담아냈고, 박소담 또한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되겠다고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해당 분야에 뛰어든 ‘안정하’란 인물을 배우 고유의 강단 있고 뚝심 있는 연기력으로 생생하게 만들어냈다.

문제는 딱 여기까지라는 것, 그저 예쁜 가상의 청춘으로 현실의 청춘을 겉핥는 것에 그치고 만다는 데 있다. 두 배우의 연기력에 비해 ‘청춘기록’이 조성하고 있는 세계의 모양새가 허울만 화려하지 너무 허술하고 빈약하여, 우리로서는 혜준과 정하가 시종일관 진정성 어린 태도로 그렇게 안간힘을 쓸 만큼, 괴로워해야 할 만큼 절망적인 벽이 존재하는 곳인지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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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혜준의 갈등은 배우가 되고자 하나 해당 세계에선 실력보다 인맥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그럼에도 자신은 제 힘으로 배우란 꿈을 얻어내고 싶고, 이 두 가지 상황이 서로 상충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게 가능한 바탕에는 그가 이미 모델로서 정점을 찍은 바 있어 활용하려면 언제나 활용 가능한 인맥이 있기 때문이고, 그러다 보니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오디션에 떨어지는 일보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이 한 두마디씩 던지는 충고 아닌 충고 정도다.

그리고 알고보면 연기력도 이미 인정받고 있는 터라(본인만 모르고 있다) 곧 꿈을 이루어도 이상하지 않은 혜준은, 우리에게 도통 박보검이 연기하는 것만큼 초라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배우가 이해하는 혜준과 ‘청춘기록’의 세계에 존재하는 혜준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한 결과다. 이는 정하도 마찬가지다. 함께 일하는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하긴 하나 그 선배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예쁨은 물론이고 실력도 인정 받고 있으니 이미 진정한 승자인 거나 진배 없어, 그녀의 서글픔이 박소담의 연기만큼 와닿지 않는다.

이들이 겪는 현실의 벽에는 오늘의 청춘이 고통받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남루함이나 열심히 노력했으나 좀 더 앞선 이에게 밀리고 마는 패배감과 그로 인한 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혜준과 정하는 경쟁구도에서 승리를 거둔 후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의 시련은 꿈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이전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열등감으로 가득찬 선배의 괴롭힘에 불과하여 우리에겐 판타지 속에나 있을 법한 청춘 혹은 다른 세계의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정말 견고한 현실의 벽에도 여전히 꿈을 두 손에 쥐고 꿋꿋이 서 있는 청춘을 그리고 싶었다면,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는 속에서도 제 가능성을 믿고 실력을 길러 보잘것없이 작은 문이라도 제 힘으로 열어가는 과정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제 힘으로 열 수 있는 문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허구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현실을 뚫는 힘을 지니고 오늘의 청춘의 두 어깨에 두텁게 내려 앉았을 텐니까. 청춘의 매력을 한껏 품고 있는 두 배우를 데리고 청춘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를 내놓은 ‘청춘기록’이 더없이 아쉬운 지점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tvN '청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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