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홍성덕 제작위원 고백 “내 관리명은 ‘대둘’이었다”
2012. 09.18(화)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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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신일하 편집위원] 30여 년 동안 정들었던 직장을 9월 말 정년퇴임하는 KBS 드라마국 홍성덕 제작위원(사진)이 미니시리즈 ‘진달래 꽃필 때까지’ 연출 당시 암호명 ‘대둘’(大 2)로 불린 사실을 처음 털어놓았다. 홍성덕 위원은 왜 실명이 아닌 국가 자산인 암호명 ‘대둘’로 불리며 살아야 했는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15년 전 벌어진 방송비사를 필자에게 처음 공개한 것이다.

‘진달래꽃 필 때까지’는 지난 95년 귀순한 북한 만수대 무용단 출신 무용수 신영희씨가 96년 출간한 수필로 KBS가 동명의 타이틀로 드라마를 제작, 98년 1월5일부터 매주 월.화요일 밤 KBS2에서 방송한 특별기획 8부작 미니시리즈이다. 자서전을 통해 알려진 기쁨조 출신 무용수 신영희씨의 운명적 삶과 북한의 실상을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북한 바로알기를 통해 제대로 알린다는 차원에서 기획된 이 작품은 제작과정에서 북한의 KBS 폭파, 제작진 살해 위협 등 이슈로 여러 방송인이 크게 시달려야 했던 드라마다. 97년 한 해를 반공드라마가 아닌 남북관련 소재의 교과서 드라마를 만들어 차별화 하려던 취지였지만 예기치 않은 제작중단 요구 소동으로 고생을 했다고 입을 연 홍성덕 위원은 “무릇 모든 연출자가 목숨 걸고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나야말로 리얼100% 목숨을 걸고(?) 일했죠. 허허--”하고 웃음을 지으며 그간의 쓴 고생을 일축하는 노회함을 보여주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연출하느라 힘들었으나 조직과 여러 곳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 받았을 때 제일 괴로웠다며 실토한 홍 위원. 하지만 그런 일 보다 애꿎게 가족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정신적 충격과 고통이 컸던 것도 사실인데 “다 지난 일인데요 뭘”하고 손사래를 치는 걸 보면서 필자는 “좋은 드라마로 평가받아 다행이지 않으냐”며 위로 해주었다.

북한은 97년 11월16일 ‘진달래꽃--’의 제작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방송공사 제2텔레비전 창작단을 가차 없이 처단 그 존재 자체를 하늘로 날려버리겠다”며 위협하고 나왔다. KBS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등 북한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 경찰과 관계기관에선 드라마 제작진의 안전이 우선인 걸 인식했다. “신변보호가 불가피하다며 경호까지 할 뜻을 비추는 거예요. 번거롭기도 하고 사생활을 제한받는 거라 가시적 경호를 거절하고 출근, 귀가 등 일과를 전화로 연락하는 선에서 승락했어요” 홍 위원은 하루의 동선을 경찰에 알려주었더니 자신을 ‘대둘’로 호칭해 상부에 보고하는 게 기억이 났다면서 관계기관의 관리는 드라마 방송이 끝나고도 수개월 유지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대하나’가 누군지 아느냐고 필자가 흥미삼아 찔렀더니 안경 너머의 홍 위원은 “그럼 수수께끼를 해봅시다. ‘대하나’는 포스 원이 맞을 가요, 틀릴 가요”라며 서스펜스 드라마 연출자 대가답게 되짚어 역공을 취하고 나왔다. ‘포스 원’이라? 그럼 대통령이라는 거 아닌가. “설마 대통령을? 막 당선된 DJ당선자--”라고 물으니 그는 “미확인 사실은 노코멘트”하며 고개를 저었다. 홍 위원의 철저한 논리와 치밀함에 손들고 말았더니 조금 있다가 오히려 그는 게임을 계속하자고 한 후 가령 드라마적 상상력을 빌어 접근하면 필자가 느닷없는 DJ라고 한 것이 정답일 수 있다며 아리송한 설명을 해주었다. “순전히 이건 드라마적 상상력이라는 전제입니다”며 말한 후 얼마동안 뜸들이다 홍 위원은 아마 ‘대 하나’는 김대중 당선자가 맞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당시 국가의 관리를 받은 홍성덕PD는 경기도 일산에 살았는데 인근에 그해 대선을 승리로 이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거주 중 이었다. 홍PD는 DJ의 집과 1000m 정도 떨어진 동네에 살아 관계기관이 클 대(大) 자에다 아라비아 숫자를 넣어 호칭한 걸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연한 일로 한 때 한자인 大자로 불린 홍 위원은 “북한 소재 드라마는 곧 안보드라마라는 기존의 관행과 시청자의 편견에서 벗어나 청년층에서 장년층까지 거부감 없이 접근할 시청률 높으면서도 통일을 대비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강조. 이를 위해 노골적인 주제 전달이나 북한 사람의 희화화, 도식적 선악구도와 유치한 묘사 등을 배제하고 세련된 구조와 형식, 신선한 영상과 음악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전달하고 북한의 무용을 정확하게 재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 드라마로 만들었던 관계로 방송이 나간 후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 게 홍 위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제작 중 홍 위원은 배우 염정아의 제작거부로 곤욕을 치루었다. “모든 배우가 살해 위협에 겁을 먹었어요. 염정아는 여주인공이라 더욱 심했던 것 같은데 집에 찾아가 겨우 어머니를 설득, 다시 촬영에 들어갔죠” 우여곡절 속에 크랭크 업이 되었던 당시 과정을 떠올린 그는 “그래도 ‘진달래--’가 99년 이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가져오게 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남북 소재의 영화 ‘쉬리’가 나오는데 촉진제 역할을 했고 그 후 충무로에서 ‘JSA공동경비구역’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가 히트 했잖아요”하는 얘기를 듣고 나니 홍 위원의 주장에 수긍이 되었다.

KBS2로 방송된 조해일 원작 미니시리즈 ‘왕십리’와 이병헌의 미니시리즈 데뷔작 한수산 원작 ‘이별 없는 아침’ 그리고 ‘TV문학관 19세’ ‘TV문학관 엄지네’ 등 대표작을 남긴 홍 위원은 ‘진달래꽃 필 때까지’가 제일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 했다. “통일을 대비 방송이 보여줄 수 있으며 예측 가능한 것은 지속적인 남북관련 문화콘텐츠 제작만으로 가능하다고 봐요”하며 목소리를 높인 홍성덕 위원은 “방송을 떠나 스크린에서 남북관련 킬러 콘텐츠를 연출해 보는 게 새로운 꿈이다”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티브이데일리 신일하 편집위원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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