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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와 천박의 경계에서 줄타기, 자유로운 영혼의 김부선 [김상근의 스타앨범]
2013. 05.15(수) 15:22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상길 편집위원] 영어사전을 보면 ‘핫(hot)’은 ‘더운’이란, ‘쿨(cool)’은 ‘시원한’이란 뜻을 지닌 형용사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핫하다’는 ‘유명하다’ ‘뛰어나다’로, ‘쿨하다’는 ‘뒤끝 없다’ ‘아량 있다’ ‘솔직하다’ 등의 용어로 쓰인다. 바른 우리말은 아니지만 여배우 김부선(52)에게 요즘의 ‘핫’과 ‘쿨’은 썩 어울리는 말이다.

김부선은 거침없다. 할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거침없는 화법 때문에 간혹 오해를 빚기도 하는데,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무모하다고 할까, 위험 수위를 오르내린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원스런 입담으로 진행자를 당황케 만드는가 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스타들을 잠재울 정도의 내공을 발휘한다.

김부선은 그가 주연급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1980년대 초반보다 나이 50을 넘긴 지금 대중적 인기가 더 높다. 그의 추억의 앨범을 펼쳐 20대 초반의 김부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애마부인’의 주인공?” 정도의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김부선을 바로 알기 위해선 ‘애마부인’과 김부선의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마부인’의 아이콘은 김부선이 아니라 안소영이다.

‘애마부인’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원로감독 정인엽(75)의 대표작이다. 원작은 여류작가 조수비의 동명소설. 원래 제목은 ‘愛馬夫人’이었는데, 검열 당국이 제목이 저속하다하여 ‘愛麻夫人’으로 바꿨다.

‘애마부인’은 1982년 2월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에서 단관 개봉으로 관객 31만여명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흥행 열기는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져 1995년에 11번째 작품 ‘애마부인11’이 만들어졌고, 현재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애마부인’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안소영이란 걸출한 글래머 배우가 주연한 ‘애마부인1’을 말한다. ‘큰 가슴’의 소유자였던 안소영은 이 영화에서 가슴 노출은 물론 하반신의 곡선까지 대담하게 드러냄으로써, 많은 남성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며 성공적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걷는다.

안소영은 ‘애마부인1’로 데뷔한 그해에만 무려 7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의 등장 이후 충무로에는 ‘큰 가슴’ 배우 발굴 붐이 일었고, ‘산딸기’ 시리즈의 선우일란, 가수 설운도의 부인이 된 이수진 등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글래머 스타 전성시기에 오늘 우리가 만나는 김부선도 포함되어 있다.

‘애마부인1’ 성공 이후 정인엽 감독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제작자들이 다투어 현금을 보따리로 싸들고 정 감독 집 앞에서 줄을 설 정도였다. ‘애마부인2’에서 정 감독은 안소영을 이을 글래머 스타로 신인 오수비를 발굴했다. 1981년 미스코리아 서울 대표였던 오수비에게 ‘애마부인2’는 첫 영화 출연작이었다. 이미 화제가 된 전작 때문에 큰 부담감이 있었고 오수비는 아직 연기력도 미숙한 상태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애마부인2’의 흥행 성적은 전작에 훨씬 못 미쳤다. 오수비는 현재 미국에서 성공한 미용사업가로 살고 있다.

‘애마부인2’의 저조한 흥행 성적에 몸이 달은 정인엽 감독은 ‘애마부인3’의 제작에 앞서 주연배우 선정에 신중함을 보였다. ‘애마부인은 글래머 배우’라는 등식을 깨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몸매 보여주기가 아니라, ‘성적 억압에서의 해방’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소화해줄 연기력 있는 배우를 찾았다. 영화담당 기자들도 “애마부인 좀 추천해 달라.”는 정 감독의 전화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캐스팅된 배우가 김부선이다.

1961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부선(본명 김근희)은 고등학교(대정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서울로 올라와 모델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최고의 모델이었던 고향 선배 윤영실이 그를 이끌어주었다. 윤영실은 여배우 오수미(1992년 작고)의 동생이었으며 이후 의문의 사건으로 실종되었고 아직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당시 유명 디자이너였던 하용수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의 추천으로 김부선은 1983년 고 김성수 감독의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의 주연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같은 해에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에 출연하고, 2년 후 ‘애마부인3’에 출연한다.

전작의 애마부인들에 비해 김부선은 연기 경험이 충분한 ‘준비된 애마부인’이었다. 염해리로 예명까지 바꾼 김부선의 열정도 대단했다. 당시 출연료가 300만원이었는데, 자비로 의상비에만 700만원을 쏟아 넣는 등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애마부인3’의 흥행 성적도 ‘애마부인1’에는 못 미쳤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글래머 배우의 대명사로, 성애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애마부인’은 안소영의 ‘애마부인’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애마부인=안소영’의 등식이 ‘애마부인=김부선’으로 바뀌었다. 애마부인 관련 검색어 순위에서도 김부선이 단연 앞에 놓인다. ‘애마부인3’ 출연 당시보다 20여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 김부선이 더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20대 김부선을 말하자면 ‘대마초’와 ‘미혼모’를 빼놓을 수 없다. 1986년 10월, 검찰은 대마초를 피운 김부선을 구속한다. 당시 기록에는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웠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김부선은 지금까지 “전두환 정권시절 청와대 파티 초대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구속됐다”라고 항변한다. 이후에도 김부선은 몇 차례 더 대마초 흡연 혐의로 수사기관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2004년에는 대마 관련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어 ‘대마 합법화 논란’을 일으키는 등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가로 나선다.

이 운동이 계기가 되어 이후 김부선은 사회적 현안에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변신한 것. 그렇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의 무대에서 소신껏 발언하고 잘못된 문제들을 고치고 해결하려는 그의 적극적 행동에 대중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쏟아내는 발언들이 하나같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대마초는 마약이 아닌 한약이다”, “권력기관의 파티에 초대됐지만 거절했다”, “정치인으로부터 스폰서 제의를 받았다.” “29세 연하 남자친구를 찾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배우가 제일 불쌍하다. 결혼하기 전에 이 남자 저 남자 모두 만나고 즐겨라”라는 등 파격 일색이다. 따라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론은 그를 ‘아랫도리’ 전문 소셜테이너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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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은 알려진 대로 ‘미혼모’이다. 김부선은 1988년 딸 이미소를 낳는다. 아이의 아버지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 극장주의 아들이란 이야기가 있고, 그의 고향 사람들 사이에선 의사라는 증언이 몇 번 나오기도 했다. 현재 다른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아이 아버지에 대해 그의 감정은 최악이다. 최근 방송에서 “목을 눌러 죽이고 싶다”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다.

부모의 아픈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고 딸 이미소는 꿋꿋이 자기 길을 걷고 있다. 건국대 영화학과를 나온 이미소는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 ‘너는 내 운명’ 등에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최근작으로는 ‘나의 PS 파트너’가 있다.

이미소는 지난해 2월 SBS ‘강심장’에 출연해 “엄마가 방송에 나와 정치적 발언이나 실명공개 등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라고 김부선에게 공개 경고를 해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어머니 김부선의 발언은 딸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파격적이다. 딸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한다.’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딸 이미소가 혼전임신을 하면 잔치를 열고 축하해 줄 것”이라며 ‘쿨(?)한 엄마’의 면모를 과시했다. 자신이 한 일 가운데 ‘혼전임신’이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이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딸을 희생양 삼았다”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다시 추억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고 미혼모 사실이 밝혀지면서, 배우 김부선의 인기는 하강곡선을 그린다. 1980년대의 유망주였던 그의 1990년대 필모그래피는 빈약해졌고 역할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많은 남성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애마부인’ 김부선의 이미지는 간 데 없고, 어느 사이 이른바 ‘마담 이미지’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영화 ‘게임의 법칙’, ‘너에게 나를 보낸다’, ‘리허설’, ‘비트’, ‘삼인조’ 등에서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술집 카운터이거나, 흐트러진 침대뿐이었다. 극중에서 그의 이미지는 세월이 지날수록 천박하거나 혹은 부정한 여인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관록의 여배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04년이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분식집의 인심 좋은 글래머 주인아줌마 역을 김부선에게 맡겼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발정기 고등학생들의 싱싱한 육체를 탐하는 농익은 여인으로 열연했다.

영화는 성공적이었고, 그는 다시 스크린 전면에 나선다. ‘인어공주’,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친절한 금자씨’, ‘너는 내 운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흥행작에 연달아 출연한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김부선. 사연 많은 삶을 살았던 그는 건강미가 가득했던 20대엔 ‘몸매’로 승부하는 글래머스타로, 한참 연기력에 물이 올랐던 30대엔 고정된 ‘퇴폐’ 이미지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충무로의 외면 속에 방송은 그에게 폭탄 발언이나 일삼는 ‘문제적 여인’의 이미지만 요구하고 있다. 그에게 존재하는 자유롭고, 감수성 풍부한 표정은 그렇게 묻혀가고 있다.

구릿빛 피부와 쭉 찢어진 눈매, 통통한 두 볼을 가진 배우 김부선의 20대 시절 모습은 흡사 월트 디즈니 캐릭터 ‘뮬란’을 연상시킨다. 추억의 사진 속에서 그는 80년대에 30년 뒤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았다.

‘노출’은 김부선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그만의 아이덴티티였다. 그래서 언제 갑자기 카리스마 강한 목소리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애마부인’ 김부선은 50대가 돼 그냥 ‘부인’이 됐지만 킬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당당하게 “29세 어린 남자친구를 찾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이를 잊은 순수함과 자유로운 관념으로 그 누구보다 멋진 싱글라이프를 살고 있는 김부선, 그는 여전히 섹시하다.

[티브이데일리 윤상길 편집위원 news@tvdaily.co.kr / 사진=사진작가 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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