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꾼일지’가 ‘해품달’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것
2014. 08.27(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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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초반에 일었던 성인연기자들의 연기력에 대한 우려를 날려 버리듯, MBC 월화특별기획 드라마 ‘야경꾼일지’의 성적이 꽤 좋다. 두 자리 수의 안정적인 시청률로 몇 주 째 월화드라마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우선, 극의 중심부인 ‘이린’을 맡은 정일우가 상당한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이린’은 불운한 과거를 지닌 세자로, 적통왕자였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월광대군으로 남아 임금의 눈길을 피해 몸을 낮추며 사는 인물이다.

불운한 과거란, 용신족 수장인 사담(김성오)에게 이용당한 아버지가 광기에 어려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것. 결국 ‘이린’만 살아남았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순전히 사담의 욕망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지만, 전말을 알 리 없는 ‘이린’에겐 제대로 된 삶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자신을 옥죄는 상처가 되었다.

비련의 여주인공만큼 매력적인 게 비련의 남주인공이다.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은, 사실 뿌리 깊은 결핍을 감추기 위함이다. 이는 드라마의 오랜 공식으로 TV 앞에 자리 잡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위력을 발휘한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소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때때로 우수에 젖은, 아니, 애처롭기까지 한 눈빛을 보일 때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애는 일제히 발동하기 때문이다.

정일우는 ‘이린’이 가진 이 같은 매력적인 양면성을 의외로 잘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매섭게 떨쳐 내는 할머니(서이숙)와 어서 궁으로 돌아가라는 송내관과 뚱정승과 랑이 앞에서, 그리고 정신을 잃은 도하(고성희)를 안고서 보인, 외로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정일우의 ‘이린’은 보는 이들이 심적인 동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즉, 정일우가 ‘이린’에게 잘 동화되어 있으니, 시청자들도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한량으로 보였던 ‘이린’이 실은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 거리낌 없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었던, 판타지를 내세운 사극 ‘야경꾼일지’의 순항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 바람이 언제까지 순항을 몰고 올 수 있을지 묻는다면 답하기 힘든 게 솔직한 속내다. 아직까진 주인공 ‘이린’의 매력이 여타의 허물들을 덮을 만한 크기로 자리 잡고 있지만, 몇 회 전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허점들이 극의 전개가 심화될수록 더욱 명확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야기구성 상으로 보자면, 극의 삼분지 일에 다다랐는데도 ‘야경꾼’은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제야 ‘이린’이 ‘야경꾼일지’를 발견하고 ‘야경꾼’의 존재를 알게 된 정도다. 뿐만 아니다. 야경꾼들의 수장 조상헌(윤태영)은 몇 번이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간발의 차로 ‘이린’과 마주치지 못했다. ‘이린’과 ‘조상헌’이 만나야 묻혀 졌던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고 ‘사담’과의 본격적인 싸움이 진행될 수 있는데도, 8회가 끝날 무렵에서야 겨우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는 지금껏 끌어왔던 극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이다. 극 중 인물에 대한 설명과 원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받침대 마련은 5, 6회 분량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이젠 ‘야경꾼일지’다운 ‘야경꾼’과 ‘악귀’들 사이의 신명나는 싸움이 필요하다. ‘일지’에 적힐만한 일들이 좀 벌어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아울러, 발연기로 악명 높았던 정윤호는 ‘무석’이란 역할을 맡아 그 간의 악평들을 조금은 씻을 만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무석’이란 인물이 원체 말이 없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라 정윤호의 연기력이 나아졌다고 말하기엔 좀 이른 감이 있다. 종종 몰입감이 필요한 장면에선 여지없이 이전의 정윤호로 돌아가는 모습이 없지 않기에.

여주인공 ‘도하’역을 맡은 고성희도 마찬가지다. 정윤호와는 반대로, 캐릭터 자체가 천방지축에다가 흔히 여주인공들이 그렇듯 겁도 없이 갖가지 사건에 뛰어드는 성격 탓에 본의 아니게 ‘민폐캐릭터’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청자들은 주로, 공감하기 어려울 때, 해당 여주인공을 ‘민폐캐릭터’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도하’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연기력의 문제가 먼저다.

2012년에 방영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야경꾼일지’와 비슷한 장르이면서 시청률 40%가 넘는 거대한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이걸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극을 이끌고 가던 주인공의 매력과 원작이 있는 작품인 만큼 쫀쫀하게 이어졌던 이야기 전개, 그리고 틈틈이 공간을 메워가던 주조연 연기자들의 열연이었다.

24부작인 ‘야경꾼일지’가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어쩌면 벌써부터 이게 부족하다 저게 필요하다 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참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월화드라마들의 부진 속에서 예상 밖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야경꾼일지’가 속속들이 알찬 작품으로 남기 바라는 마음이 커서다. 판타지라는 특수한 장르로 나온 드라마인 만큼, 그래야 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지상파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테니.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야경꾼일지’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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