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 잃은 ‘개콘’은 ‘개그 콘테스트’일 뿐
2014. 11.18(화)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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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 일요일 밤의 최강자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16일 방송된 ‘개콘’은 14.5%(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1시간 앞서 방송된 MBC 드라마 ‘장밋빛 연인들’의 17.9%에 덜미를 잡혔을 뿐만 아니라 20분 늦게 방송된 MBC 드라마 ‘전설의 마녀’의 20.8%에 한참 뒤지며 이제 시청률의 제왕 자리와는 완전히 멀어진 모양새다.

지난 1999년 ‘개콘’이 시작된 이래 최대의 위기다. 시작 당시 대학로의 연극 아이디어를 안방으로 가져와 그야말로 ‘콘서트같은 공개 개그 프로그램’을 지향하며 안방극장의 코미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승승장구했던 ‘개콘’으로선 두 자리 수 시청률이라고 애써 자위할 수 없는 낯 뜨거운 수치다.

‘개콘’의 첫 번째 위기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찾아왔다. 당시 ‘개콘’을 주도하다시피 했던 심현섭 강성범 등 스타밸리 소속 스타 개그맨 10여명이 SBS에서 ‘개콘’과 유사한 포맷의 새로운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을 론칭하기 위해 빠져나간 것.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까지 평균 25%의 시청률을 올리던 ‘개콘’은 이들의 이탈 후 이듬해 초 오히려 시청률이 올라 최고 34%까지 찍었다. 다급해진 제작진이 프로그램 전체의 대수술에 들어갔고 이전까지 스타밸리 소속의 스타 개그맨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가능성 있는 신예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전화위복의 효과를 본 것.

제작진은 심현섭과 강성범 등의 빈자리를 권진영 김다래 등 신인으로 교체했고 ‘노통장’의 김상태, ‘봉숭아 학당’의 ‘세바스찬’ 임혁필 등 이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른바 ‘중고’ 신인들을 과감히 기용해 캐릭터 위주의 개그로 재포장했다. ‘생활사투리’ ‘도레미 트리오’ ‘공부합시다’ ‘몽당 친구들’ ‘우비 3남매’ ‘비트박스’ ‘ABC 개그’ 등의 새 코너도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는 당시 스타밸리와의 경쟁에서 뒤져 한 걸음 물러서있던 경쟁사 박준형의 갈갈이패밀리가 다시 최전선에 투입되면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아이디어를 대방출하며 이룬 성과이기도 했다.

이에 비교해 ‘웃찾사’는 2003년 4월 시작해 줄곧 10%대에서 시청률이 배회하다가 점점 떨어져 결국 2010년 10월 막을 내렸다.

‘개콘’의 오랜 인기비결은 끊임없는 새 얼굴의 발굴과 새 코너로의 변화 속에 통렬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었던 데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정치인은 물론 공무원과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개그의 소재로 풀어내며 우회적인 비유와 더불어 직접적인 비판까지 서슴지 않으며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 때문이다.

‘개콘’이 방송되는 일요일 오후 9시 40분은 다수의 서민들이 저녁상을 물리고 일주일을 마감한 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다. 이때 시청자들은 편하게 일주일의 마무리와 새로운 주의 출발이라는 기로에서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 마음 한 구석에 품은 불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개콘’은 워낙 오랫동안 인기를 끌다보니 그 흥행의 단맛에 취해 타성에 빠졌고 그래서 달콤한 시청률의 유혹이 주는 흥행공식에 길들여진 버릇을 습관처럼 반복할 뿐 예전의 개척정신이나 전투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개콘’은 ‘크레이지 러브’ ‘닭치고’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 ‘힙합의 신’ ‘큰 세계’ ‘시청자 의견’ ‘명인본색’ ‘속상해’ ‘연애능력평가’ ‘나 혼자 남자다’ ‘선배 선배’ ‘렛 잇 비’ ‘10년 후’ ‘세상아 덤벼라’ ‘속상해’ ‘가장자리’ ‘쉰밀회’ 등의 코너로 최근 새 단장을 마쳤다.

‘개콘’은 작가가 있지만 각 개그맨들의 아이디어가 우선이고, 매주 자체적으로 심사를 거쳐 녹화하며, 또 편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코너만 전파를 탈 수 있는 치열한 경쟁과정이 필수다. 현재 이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거나 가능성이 있는 개그맨은 거의 120명에 이른다.

전술한 코너에서 보듯 최근 ‘개콘’의 제작트렌드 중 하나가 코너 자주 바꾸기다. 예전에는 한 번 자리 잡았다 하면 짧게는 1년 가까이, 길게는 몇 년씩 장수시키는 게 관행이었는데 지금은 주기가 빨라졌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출연을 원하는 개그맨은 많다보니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코너가 자주 바뀐다는 단순한 순환구조만 보면 시청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설정과 얼굴을 보니 자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만약 그런 긍정적 효과를 본다면 시청률이 계속해서 하락할 수 없다.

시청자는 익숙해질 만한 코너와 개그맨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짐에 어리둥절하고 또 그렇게 느닷없이 새로 투입된 코너에 적응하느라 우왕좌왕한다. 제작진은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냄으로써 시청자의 싫증을 유발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겠다는 강박관념과 더불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새로 뽑은 인력에 대해 일일이 배려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지나친 나머지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아니면 새 코너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의 결여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거나. 박보미 등 실력과 가능성에 스타성까지 갖춘 일부 신인을 제외하곤 애초에 이렇게 많이 뽑은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더불어 예전의 스타밸리나 갈갈이패밀리처럼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기획사가 출연진의 상당수를 채우고 있는 독과점 형태의 캐스팅 역시 다양성 차원에서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개콘’의 가장 큰 허점은 예전의 풍자와 해학, 그리고 비판의식이 사라진 채 상황극에 유행어 한두 개 집어넣곤 말장난 혹은 몸개그로 단순한 웃음만 유발하려는 예외 없는 공식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후’나 ‘크레이지 러브’는 주제가 모호해 이 코너가 무슨 소재로 웃기려는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어떤 웃음을 주려는지 헷갈려서 일부러라도 웃을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힙합의 신’은 코너를 주도하는 김수영의 진행이 어색해 김기리-박보미 콤비의 고군분투가 안타까울 따름이며 시작과 끝에서 섹시댄스를 추게 만드는 두 미녀 개그우먼의 활용의 의도가 자못 의심스럽다.

요즘 대세인 요리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명인본색’은 이제 막 뚜껑을 연 시작점이긴 하지만 아이디어의 현저한 부족이 두드러지고 ‘연애능력평가’는 유치해서 도저히 두 눈 뜨고 봐주기 힘들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제목과 내용을 차용한 ‘쉰밀회’와 ‘큰 세계’는 태생적 한계가 이미 충전된 에너지의 방전을 여실히 보여주고, ‘나 혼자 남자다’와 ‘선배, 선배’는 박성광과 이수지의 힘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기획 자체의 힘이 떨어진다. 신혼부부, 40대 부부, 50대 기러기 아빠, 그리고 노총각을 통해 메마른 현 세대의 가족세계를 보여주려는 노력이 가상했던 ‘가장자리’는 제목처럼 말장난의 한계에 부닥쳤다.

압권은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다. 그냥 재미삼아 한두 번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획기적인 시도로 그쳤어야 할 교내 콩쿠르 수준의 개그를 계속해서 내보내며 공영방송의 전파낭비의 끝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면에서야 유민상도 빨리 장가를 보내는 게 마땅하지만 그게 지상파 공영방송사의 프라임타임대에서 전국의 시청자를 상대로 캠페인성으로 벌여야 할 일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장가가고 싶은 유민상보다 연상의 노총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나마 ‘닭치고’가 우리 사회의 어둡고 음습한 구석을 때론 우회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어르고 뺨치며 강한 임팩트를 보였지만 갑자기 보건교사 후다닭 안소미를 남학생을 유혹하는 여학생 찜닭으로 바꾸면서 ‘힙합의 신’ 인트로와 아웃트로에서 그녀를 섹시댄서로 내세워 톡톡히 재미보고 있는 효과를 확대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등 철저하게 변절하고 있다.

주말극에서 자주 펼쳐지는 막장의 내용에 시청자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특별하게 여가시간을 즐길 여유가 없는 탓에 화내면서 시청해온 것과는 달리 그나마 ‘개콘’은 일주일의 마지막 저녁을 비교적 긍정적 시각에서 속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잘나가서일까? 이 프로그램은 간간이 실수와 무리수로 시청자들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방송된 ‘렛 잇 비’코너의 ‘일베’ 캐릭터 사건이다. 이동윤의 얼굴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등장시켰는데 이 사진 속에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논란을 야기한 것. 제작진은 부랴부랴 사과를 했지만 그런 실수인정이 자신들의 제작상의 안일함 혹은 무지함을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라 시청자들의 불편한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바보상자’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TV가 무한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서민들이 손쉽게 보도 연예 문화 예술 교양 예능 등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그래서 특별하게 돈 들여 따로 레저활동을 하지 않아도 시간 때우고 배울 수 있었던 순기능이다.

특히 요즘처럼 유독 서민에게 총체적 난국이 닥친 시기에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보도가 아닌 ‘개콘’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최고의 소화제고 영양제며 쾌변약이다. 그런데 ‘개콘’이 그 약발이 다 됐다.

반면 지난 해 4월 기사회생한 SBS ‘웃찾사’는 꾸준한 상승세 속에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전작의 부진을 뛰어넘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콘’의 ‘봉숭아학당’에서 왕비호가 아이돌에게 독설을 퍼부었다면 ‘웃찾사’의 ‘삼대천왕’은 감히(?) 서태지 조용필 나훈아 등 한국 가요사의 최고의 ‘오빠’들을 웃음의 도구로 활용하고 때론 은근히 그들을 에둘러 풍자한다.

‘부산특별시’는 ‘개콘’의 ‘생활사투리’보다 재미는 크게 앞서지 않지만 그 설정의 깊이가 심오하고, ‘LTE뉴스’는 풍자와 해학을 넘어서 직설화법의 비판을 서슴지 않아 민영방송의 개그가 맞나 싶을 정도다. ‘개콘’은 기껏 시청자의 웃는 수준을 높여놓곤 스스로 웃기는 수준을 낮추고 있다.

[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개콘’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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