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 뒤집어 본, ‘상류층’이란 존재에 대하여
2015. 03.25(수)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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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이 고급 진 집구석은 무엇 하나 쉽지가 않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 앞에서도 스스로를 어르고 달랠 줄 알아야 하며, 한 끗 차이에 불과한 우월감과 열등감이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감정을 농락할 때도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들이 지켜온 ‘귀족성’이란 ‘차별에 민감한 대중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섬세하다 못해 집요할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니까.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며느리로 들어온 애는 자기를 표할 문장 하나 갖고 있지 않다. ‘어느 집 딸’ 혹은 ‘어디 학교 출신’, 이 짧은 말 한 마디로 끝날 소개를,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는 아니나 ‘청렴한’ 부모 아래서 맑고 검소하게 자랐다는 등, 누구나 알만한 대학에 다니는 건 아니나 그와 상관없이 총명한 두뇌를 타고 나 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 자잘한 설명들이 따라붙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연출 안판석·극본 정성주)가 표현하는, 고풍스러움의 극치에 올라선 상류층인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의 이야기다. 부모 말 어긴 적 없고 그저 순종적이기만 했던 아들이 데려온 배부른 아내는 그들의 삶에 갑자기 몰아닥친 풍파였다. 격 떨어지는 집안의 딸답게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잘도 꼬셔내어 남세스러운 일까지 벌이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남들이 알면 뭐라 수근거리겠는가. 그야말로 한씨 집안의 역사상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다.

“현재 상태에 스펙만 좋다면 바랄 게 없겠지”

그래도 핏줄은 당긴다고, 정작 보고 나니 손자는 또 귀엽기 그지없다. 오점이라 여겼던 여자아이도 알고 보니 꽤 똘똘하여 쓸 만하고. 가정교사로부터 차라리 아들보다 낫다는 인증까지 얻으니, 어디 살아날 구멍이 엿보인다. 함께 사법고시 패스라도 시킨다면 자신의 집안으로 굴러들어온 폭탄이 도리어 폭죽의 역할을 할 날이 오리라, 그리고 잠시나마 회색빛이 되었던 한씨 집안의 얼굴엔 다시 화색이 돌리라,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다.

이들에게 서봄(고아성)과 그녀의 가족은 의지가지할 곳 없는, 오로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뿐이며 때론 그것조차 여의치 않는, 서민 중에 서민 혹은 하층민이며 동시에 상층민인 자신들과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부류다. 정호와 연희가, 그리고 우리가 스펙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면 좀 더 나은 앞날을 위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강력한 인맥을 얻는 게 스펙의 최종 가치가 아니던가. 즉, 삶에서 접하게 되는 부류들의 위치를 좀 올려보겠단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평소 우리가 우러르고 감동하는 성공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밭을 일구어 풍성한 결실을 얻어냈을 뿐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이들이다. 사실 ‘홀로서기’나 ‘자립’이란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성취해내야 할 것으로 그렇지 않을 경우 ‘몸만 자란 어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일반적으로 어른이라 불리는 위치에 올라서도, 여전히 부모나 다른 이의 후광에 힘입어 살고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리는 세계, 현실과 꼭 닮은 이 세계에선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비서나 가사도우미의 도움 없인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으로 해나가는 ‘어른’다운 사람들을 내리깐 시선으로 쳐다본다. 심지어 어린 나이임에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어른’다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를 지켜낸 소녀는, 그들이 원하는 ‘조건(스펙)’에 맞추지 못하면 엄마로서의 역할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엄마 손으로 벌어서 먹고 입고 쓰는 데야 내가 뭐라겠어”

지영라(백지연)는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딸내미에게 네 마음대로 살고 싶으면 네 손으로 벌어서 먹고 입고 쓰라 한다. 하지만 그녀의 딸도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엄마에게 다시 되받아친 게 바로 위의 내용이다. '부르주아‘, ’상류층‘이라 불리는 그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 일궈놓은 것들을 자신의 것인 양 마냥 자연스럽게 누려온 이들은, 어쩌면 온전한 생(生)을 맛 볼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주어진 조건들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삶의 모든 순간에서 본인만의 생을 살아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호와 연희가 쉴 새 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연유도 여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 맞추어진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맞춰진 다른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리라.

“견문을 넓힌다고 생각해, 너희 집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거든”

봄의 부, 형식(장현성)과 함께 목욕탕을 가게 된 인상(이준)은 개발구역에서 제외되어 남루해진 모양새의 동네를 낯선 눈길로 훑어본다. 봄이를 만나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접해보지도, 상상조차 해 보지도 못할 세계일 테다. 일부가 아닌 전체를 안다는 것은, 그 속에 놓여 진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한층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각각, 서로의 세계에 편입한 봄이와 인상이 어떠한 방향의 사람으로 성장할지가 이 드라마의 관건이다. 그들은 과연 그들 본연의 삶을 쟁취해낼 수 있을까. 여기에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드라마에 그리고 드라마에서 현실을 보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묵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풍문으로 들었소’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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