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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행복하며 그래야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
2016. 06.22(수) 16:25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조숙한 아이들은 부모와 주변 어른들을 흡족하게 한다. 말도 안 되는 떼를 써서 부모를 곤란하게 한다거나 귀찮게 하지 않으며 함께 있는 다른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으니까.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미 돌아가는 상황, 어른들의 갖가지 마음들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탓이다. 다른 말론 눈치가 백단이라 하겠다.

조숙하다는 건 어쩌면 슬픈 일이다. 아이가 아이의 시각을 갖지 못하고 어른의 것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는 게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지 않나. 마음의 흐름도 때가 있어서 지나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조숙한 아이들은 이 소중한 과정을 그냥 건너뛰고 바로 어른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니,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복과 기쁨을 송두리째 놓치는 셈이다.

지난 15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는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다섯 명의 십대 ‘아이들’이 나왔다. 김구라 아들로 알려져 래퍼로 자리잡기 시작한 ‘MC그리’,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로 초통령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동우(보니)’와 ‘이수민(하니)’, 아직 자신에게 맞는 노랜 만나지 못했지만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영국소녀 ‘샤넌’, 제주도에서 무작정 올라와 ‘K팝스타’에 출연해 현재 그룹 ‘우주소녀’의 멤버로 활동 중인 ‘다영’까지, 사실 ‘아이들’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를 획득하고 있는 유명인이다.



동갑내기들보다 일찍,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살이의 고됨(좀 거창하지만 어른들의 부조리한 현실 및 욕망의 수레바퀴 정도...?!)을 접해버린 탓인지, 이들이 갖춘 현실감과 예능감은 보통의 어른 못지않았다. 아이 같지 않은 아이, ‘조숙함’이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모습들을 보자니, 마냥 기특하고 신기해서 웃음이 나다가도 문득 안쓰러움이 올라왔다면 오지랖일까.

물론 이들의 나이 자체가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놓여 있고 무엇을 하든 억지나 꾸밈보다 능숙하고 솔직한 느낌이 강해, 신선하고 청량한 흥미를 돋웠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뭐라 규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돋아났다. 그래, 직전엔 안쓰러움이라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찝찝함’이다.

같은 날 방영된 SBS ‘영재 발굴단’에선, 뛰어난 지능으로 중등수학과정인 일차방정식까지 무리 없이 푸는 남자아이가 출연했더랬다. 고작 41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해력과 사고력 모두 특출 난, 아이큐 164의 영재 중의 영재였다고 할까. 정작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 지점은 따로 있었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요”
이게 41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말한, 공부를 하는 이유다. 알고 보니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통스럽게 공부를 하는 엄마를 보며, 그것이 ‘돈’ 때문이란 사실을 아주 명확히 인지한 이 똑똑한 아이가, 그나마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자신이라도 엄마를 대신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뭐, 이러한 사고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세상의 고단함을 알기엔 너무 어린 아이’, 아이는 엄마의 근심을 제대로 헤아리고 일찍 어른이 되려 했다. 머리도 마음도 참 조숙한 아이다. 어쩌면 이러한 동기가 아이로 하여금 더 뛰어난 지적능력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은 뒤틀린 사회구조가 낳은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에 오염되어, 도리어 엄마를 슬프게 하는, 아이의 의도완 정반대의 상황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말았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아이의 엄청난 지능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함을 짚어낼 수 있어 다행이다. 하마터면 아이는 영재라는 가림막 속에서 소중하고 다정다감해야 할 자신의, 아이로서의 세계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뻔 했다. 아이는 말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엄마랑 같이 읽는 게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아무리 똑똑하고 생각이 깊어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아이가 아이의 세계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어른의 세계로 빠르게 진입한다는 건 슬픔을 넘어서 불행한 사건이다. 꿈에 대한 설렘보다 그 꿈이 가져올 이익을 고민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쓸데없는 짓은 애초부터 접어버리는 일이니까. 오해하지 말라. 크고 깊은 사고체계를 갖는 것과 조숙하다는 건 엄연히 다르다. 크고 깊은 사고체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 구석구석을 최선을 다해 살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물론, 대부분의 조숙함이 자의가 아니라 어떤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형성됨을 알고 있다. 그르다 나쁘다, 혹은 고쳐야 한다고 따지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그저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행복하며 그래야 어른이 됐을 때 어른다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픈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려지는 누군가의 조숙함을 마냥 흐뭇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한 미숙한 어른(어른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어른이란 것을 배워가고 있는)의 오지랖이고 딴지라 여겨준다면 감사하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영재발굴단'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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