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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시대의 종말과 ‘진실한 사랑’시대의 회복을 기원하며
2016. 07.01(금) 10:22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우리가 ‘썸’을 선호하게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솔직히 ‘썸’은 이득이 많은 단어다. 애매한 경계선, 그 이상은 절대 넘지 않아서 실패할 염려가 없고 머리만 잘 쓰면 설렘은 획득하면서 쪽팔릴 일은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 이 얼마나 시기적절한, 경제적인 감정인가.

2014년에 발매된 소유와 정기고의 ‘썸’은, 내밀한 수다들 속에서 비공식적인 표현으로 떠돌던 ‘썸’이란 단어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특히 가사 중 이 부분,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는 ‘썸’의 존재를 명확히 해주는 동시에 ‘간 보는 사이’에 놓인 수많은 남녀들의 심정을 제대로 읽어 내려 화제가 되었다.

흔히들 본격적으로 사귀기 직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단계가 설렘이 가장 극적으로 치솟는 순간이라고 한다.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불안해하면서도 상대방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오감을 곤두세우며 긴장한다. 제발 통하기를 마음이 맞춰지길 바라는, 생동감 가득한 이 감정은, 어느 봄날의 밤바람처럼 기분을 한없이 붕 뜨게 했다가도 한 여름의 장마처럼 확 가라앉게도 하여, 사람이 지닌 모든 마음의 결들을 세세하게 느끼게 하는 까닭이다.



대체적으로 ‘썸’이란 개념은 이 대목에 놓이는데 차이가 있다면 적극성이리라. 혹여 손해를 본다하더라도 있는 힘껏 마음을 열어젖혀 결말(얻거나 혹은 잃거나)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손해를 볼까 있는 힘껏 마음을 아끼는 것(우선 무언가 잃기는 싫다). 오늘날의 ‘썸’은 아무래도 후자 쪽이다. 생각해보면 이 후자의 의미를 가진 ‘썸’만큼 좋은 게 또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은 대가로 우린 우리의 소중한 여가시간과 대중없는 양의 돈을 내놓는다. 사랑하는 그이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영화도 보고 좋은 곳에 놀러가는 등, 데이트를 해야 하니까. 뿐만 아니다.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주어야 한다는 룰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썸’은 그렇지 않다. 비공식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라, 우리는 우리의 것을 합리적인 선에서만 투자하며 때론 죄책감 없이 동시에 여러 명과 만난다. 어디까지나 아직 사귀는 건 아니니 결백하다. 이렇게 손쉽고 간편한데 어찌 확산되지 않고 배기랴.

“이럴 거면 바래다주었던 그날 밤/ 넌 나를 안아주지 말았어야지”
문제는 무분별한 썸의 등장 혹은 썸의 대중화로 진짜 연애, 진실한 사랑의 개념이 훼손되었다는 데 있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마음은 감추고 가면을 쓴 감정만을 내놓는다.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정작 자신의 것(마음, 삶 등)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할 땐 뒤로 쏙 빠져버린다. 최대한의 경제적 효과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양상과도 상당히 닮아 있으니, ‘이기심’이란 생각마저 든다. 한 마디로 썸의 폐해다.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는 이를 제대로 표현한다.

대중화의 이점은 환상이 벗겨지고 본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에 있다. 실체를 접했기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썸’에게 작별을 고하는 추세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8일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연출 송현욱 극본 박해영)은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의 사랑하는 이를 향한, 쪽팔림을 무릅쓰고서 펼치는 아낌없는 구애가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어낸 작품이다. 극 중 그녀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쪽팔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쪽팔려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건 자랑스러운 겁니다.”

오해영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운 좋은 남자 박도경(에릭)은 사라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허튼 데에 힘을 쏟는 ‘감정불구’다. 하지만 신의 은총이라 해야 할까,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실은 죽음을 앞둔 미래의 자신에 의해 되돌려진 것이란 사실을 안 순간, 언젠가 사라질 것이란 사실은 인정한 순간, 자존심이라든가 상처를 받는다든가 등의 손해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감사하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겁 없이 달려와 주는 해영을, 온 생의 힘을 쏟아 마음껏 받아 안는다. 죽을 때 진짜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다는, 괜히 아꼈다는 후회가 없도록.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사랑 같은 이 개념의 탄생은
유구한 사랑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습니다“
요 근래 화제가 되고 있는 어느 커피음료의 광고 문구다. 기세 좋게 썸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비극을 가져왔다며 ‘썸 없는 날’을 공표한다. 어쩌면 ‘썸’은 단순한 가십거리 정도의 단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 현세대에게 주어진 비극이 아닐까 싶은 게다. 험악한 현실 속에서 반강제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썸이 가리고 축소시킨 ‘진짜 연애’, ‘진실한 사랑’이 제 모습으로 회복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현시대가 아무리 살기 팍팍해도 사랑만은 포기하지 않길,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또 오해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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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또오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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