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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이수연 감독, 이성과 감성의 통섭 [인터뷰]
2017. 03.06(월) 17:41
해빙 이수연 감독 인터뷰
해빙 이수연 감독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이성과 감성의 통섭, '해빙'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에 연상되는 말이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과 이에 따른 감성적 판단, 이성적인 구현이 그렇다.

최근 개봉된 '해빙'(감독 이수연·제작 위더스필름)은 한 내시경 전문 내과의사가 환자의 수면내시경 도중 살인고백을 듣고, 집주인 부자의 살인행각과 관련된 수상한 점들을 발견한 뒤 살인사건의 악몽에 시달리는 심리를 파고든 영화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 심리를 건드리며 극도의 예민과 흥분, 불안감을 유발하는 감독 특유의 연출력은 전작 '4인용 식탁'에 비해 더욱 치밀하고 날카로워졌다.

거대하고 단단한 빙산이 녹아들며 수면 위로 떠오른 결정체는 현 시대의 암울하고 음습한 사회상을 담고 있단 점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계층 추락, 불안과 공포로 가득찬 한국 사회를 사는 중년 남자의 전락은 이로 인한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 이토록 잔인한 내면 심리를 파고든 감독이지만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 반응에 대해 "왜들 이러시지"란 생각을 했단 너스레가 의외다.



이수연 감독이 '해빙'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피부로 와닿는 우리 사회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는 "제가 40대다보니 주의 변화들이 보였다. 예전엔 가난해서 혹은 억울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IMF를 맞고 10년 후 또다시 금융 위기를 겪은 이후 주변의 변화가 느껴지더라"며 "한 번 발을 잘못 들여 삐끗하면 두 번째 찬스가 없다. 한 번의 실수로 빚에 내몰리게 되고, 삶이 궤도를 이탈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공포였다"고 했다.

좀 더 알아듣기 쉬운 일례로 대기업에 다니던 한 남자가 회사에 잘린 뒤 1년 동안 해당 사실을 가족에 알리지 못했고, 결국 아내와 아이들을 다 죽인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한 사건이라 하기엔 그들은 강남에 거주하고 있었고, 부인 통장엔 2억 원이란 거금도 있었다. 이수연 감독은 이를 두고 "회사에 잘렸단 것만으로도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는거다. 물론 그 남자가 정상적인 건 아니지만 그 어마어마한 불안과 공포는 예민한 현 사회의 지표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해빙'에서 계약직 의사로 전락한 승훈(조진웅)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감독은 "개인 병원 도산하고 자살하는 사례도 많았다. 옛날처럼 소위 '사'자 붙은, 의사라고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도 영업을 뛰고 임대료 걱정하는 자영업자가 된거다. 그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더 컸을거다"라며 "경제적, 교육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이 떨어지는 낙차는 더 극명하게 추락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승훈을 완벽하게 연기한 조진웅에 대해 "이번 역할을 위해 물리적으로도 힘들었을테고, 역할 자체도 외로웠을텐데 더할나위 없이 연기해줬다"고 극찬했다. 조진웅 외에도 극 중 정육식당 부자 신구, 김대명은 섬뜩한 이미지와 묘하고 음습한 표정과 행동으로 공포를 더하는 인물들이다. 감독은 "제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관객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거다. 하지만 기꺼이 뛰어들어 훌륭하게 해낸 배우들이다.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배우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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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범죄 영화만 파고드는 마니아일줄 알았건만, 딱히 그런 건 아니란 감독의 답도 의외다. 감독은 "글쎄, 뭔가 논리적으로 상황을 보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범죄물 마니아는 아닌데 어떤 상황이 논리적으로 풀려가는 것에 대한 쾌감을 즐기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시나리오를 첩보물도 쓰고 SF도 쓰고 여러 방면으로 써보는데 늘 투자를 받는 건 이런 류다. 개중 이게 제일 낫다고 보시나보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로맨틱 코미디는 끝끝내 해피엔딩이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꺼려지지만, 멜로와 코미디는 "천재들만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제 인생에 한 번 도전해보고픈 장르"라고 했다. 오히려 사랑이란 건 논리를 넘어선 얘기라 더 어렵다고.

결국은 논리적으로 틀거리를 만들어 놓고 퍼즐을 흩트려 놓은 뒤 길을 찾아가는 편을 좋아한다고. 극 중 추리소설엔 답이 정해져 있어 좋다고 말하는 승훈처럼, 감독 또한 수학의 논리가 좋단다. 논리만 이해하면 백가지 문제라도 풀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사회생활을 하고 어른이 돼 보니 '답이 없다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차라리 답이 있고 답을 맞추는 게 쉬운 삶이구나'라고 느낀다며. 하지만 "답이 있다는 것도 어디 쉬운 삶인가. 실제론 답 없는 인생이 더 많고,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작정하고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이 그저 입장 차이인 것 같더라. 그게 어른의 삶이라 더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이수연 감독은 극 중 필리핀 혼혈 아들 경수 역을 가장 애정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유는 '해빙'에 나오는 모든 어른들이 부도덕하고 건강하지 못한 반면, 경수란 아이가 스스로 돈을 벌어 엄마를 만나러 가는 신은 "건강한 다음 세대의 희망을 담아낸 것"이라고 귀띔한다. 또한 우리나라 이주 노동자들이 범죄의 대상자로만 그려진다는 자체가 몹시 불편했단다. 결말 부분에서 너무 친절한 해설을 한 게 아니느냐는 평가에 대해선 감독 역시도 아쉬워했지만 "정확하게 정답을 맞춰줘야 한단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에 계속해서 등장했던 표현으로 일관되게 제3의 객관적인 눈으로 신을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수연 감독은 "은폐된 건 언제든 반드시 귀환해서 그에 상응하는 값을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 개인의 몰락은 한 사회가 붕괴되고 있는 단면임을 암시한 감독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감독은 "그저 염치를 아는 사회였으면 한다. 염치를 안다는 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과 직면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직면하고 돌파해나지 않고 묻어두려 하니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정말 괴롭고 슬프더라도, 그 용기를 갖는 순간 더 나은 사람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논리적이며 냉철한 것 같아도 사회를,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엔 염려와 관심이 담겨있는 감독이다. 이에 감독은 "태어나서 감성적이란 얘긴 처음 들어본다"며 "아무래도 이쪽 일을 하다보니 그런 면은 다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웃어보였다. 그 미소는 분명 따스한 온기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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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안성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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