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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공감] 이국주와 어느 신인배우를 두고 일어난 논란에 대하여
2017. 03.23(목) 16:23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미녀와 야수’의 ‘미녀’ 벨은 자신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개스톤 대신, 보통의 여성과 다른 자신의 독특한 이면까지 사랑해주는 야수를 선택한다. ‘뷰티 인사이드’의 ‘미녀’ 이수는 자고 일어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우진을 사랑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사람은 겉이 아닌 속이 중요하다고.

외모지상주의, 말 그대로 ‘외모(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가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에 이미 뼛속 깊이 물든 사람들은 ‘미녀와 야수’나 ‘뷰티 인사이드’와 같은 주제의 영화를 볼 때에도 주인공의 외모부터 확인한다. 저렇게 예쁜데 굳이 상대방의 외모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냐며, 심지어 야수도 마법에 걸린 것일 뿐 본래 미모의 왕자였다. ‘뷰티 인사이드’는 또 어떠한가. 우진은 아름다운 그녀, 이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르고 고른 잘 생긴 모습으로 다가갔지 않나.

사실 어느 때 어느 시기에서나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했다. 특히 여성의 외모는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옛 말처럼 때때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은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고. 예쁘고 잘생기면 어디서든 환영받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이어트를 위해 가지도 않을 스포츠센터에 등록하고 맛도 없는 채소들을 씹어 먹으며 상황과 여건이 허락되면 성형도 서슴지 않는다(못해서 안달일 따름).



좀 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가 잘못된 건 아니다(남자든 여자든).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면, 살아가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더 윤택해질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닐까. 문제는 비교의식이고, 그로부터 비롯된 열등감 및 우월감이다. 이는 우리를 외모지상주의의 노예로 만들어, 자존감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밑바닥으로 내팽겨 치고 살아가는 태도가 윤택해지기는커녕 도리어 피폐해지게 하는 까닭이다.

최근 개그우먼 이국주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어떤 남자 연예인에게 볼에 뽀뽀를 받았다는 이유로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그들의 요지는 이렇다. ‘누군가 자본주의의 끝을 묻거늘, 고개를 들어 슬리피를 보게 하라.’ 한 마디로 돈 때문에 마음에도 없고 하기도 싫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국주의 외모를 염두에 둔 지극히 악의적인 반응으로, 그녀 또한 ‘너네 되게 잘생겼나 봐, 너네가 백억 줘도 나도 너네랑 안 해’라며 강력한 조치를 취할 뜻을 밝혔다.

여기까진 보통의 악성댓글 관련 사건과 비슷하다. 한층 더 흥미로운 상황은 이후에 벌어진다. 이국주가 악플러들을 고소한다는 기사에, 한 신인배우가 ‘당신이 공개석상에서 성희롱한 남자연예인들 어땠을까요’ 라는 등의 반문을 담은 댓글을 남긴 것이다. 이는 얼추 사건을 ‘젠더’와 ‘성희롱’이라는 새로운 쟁점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듯 보인다. 어찌됐든 그 다음 날 신인배우가 사과문(논란을 일으킨 점은 반성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변함없단 내용의)을 하나 게시하며 상황은 대충 종료된다.

일각에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국주가 아니라 소위 얼굴이 예쁘다는 다른 여자 연예인이었다면 당당하고 진취적인 태도라며, 혹여 그녀가 무례한 스킨십을 해왔다손 치더라도 내숭 없는 솔직함이라며 도리어 찬사를 받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논란을 일으킨 신인배우 또한 굳이 ‘성희롱’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을 테고. 즉, 젠더든 성희롱이든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고 연예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드러낸 것일 뿐이란 이야기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뇌에 비취는 영상을 신뢰하며 때때로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 까닭이다. 겉모습이 매력적이면 결정도 쉬워진다. 하지만 벨과 이수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존했다면 야수 안에 내재된 선하고 지적이며 다정한 모습을, 매순간 변하는 외모 속에 숨겨진 진실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 중요하지만, 외모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가 보아야 할 전부는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들은 오히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전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세계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잃어버리고 말아, 끊임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으로 또 우월감으로 스스로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이국주와 악플러, 신인배우와 이국주,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란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외모지상주의와 젠더 및 성희롱)은 어찌 보면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 남녀의 외모라 하면 당연히 젠더적인 관점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조금 삐끗했을 때 발발하는 문제가 성희롱 등등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소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뼛속깊이 외모지상주의 및 가시적인 가치에 물들었고 휘둘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재확인했다고 할까. 이국주와 어느 신인배우를 둘러싼 논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하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 출처=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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