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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파, 연기와 인생이란 파도를 넘어 [인터뷰]
2017. 05.02(화) 15:10
김홍파
김홍파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어떤 배우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비록 작품 안에서 캐릭터는 죽음을 맞을지라도 그의 연기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귓속말'에서는 김홍파가 그렇다. 그는 분명히 캐릭터의 죽음으로 작품에서 빠져나왔는데, 드라마에는 여전히 김홍파의 존재감과 기운이 여진처럼 남아있다. 직접 만난 김홍파는 역시, 연기로나 인간적으로나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었다.

김홍파는 현재 방송 중인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극본 박경수·연출 이명우)에서 강유택 역으로 열연했다. 그는 곧바로 SBS 새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극본 권기영·연출 박선호)에서 장무역 역을 맡아 촬영에 돌입했다. 여기에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제작 팔레트픽처스)과 '임금님의 사건수첩'(감독 문현성·제작 영화사 람)에도 출연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심지어 또 다른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제작 영화사 월광)과 '리얼'(감독 이사랑·제작 리얼SPC)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수상한 파트너'와 별개로 새로운 영화 촬영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쉴 틈 없는 행보 중에도 김홍파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1일 티브이데일리와 만난 김홍파는 "근로자도 아닌데 근로자의 날에 모처럼 쉬게 됐다"며 웃었다.

특히 김홍파는 "'귓속말'은 사실 스케줄상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이명우 감독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방법이 없겠냐'고 거듭 출연을 요청했다고. 김홍파는 "고심 끝에 시놉시스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받아봤고 개인 일정상 작품에 절반만이라도 등장하는 캐릭터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랬던 만큼 김홍파는 강유택 회장이 '귓속말'에서 어떤 결말을 맞을지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강유택 회장이 '귓속말' 9회에서 친구이자 라이벌인 최일환(김갑수)에게 죽임을 당하며 작품 전 회에 출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일말의 서운함도 거론하지 않았다. 개인 일정이 빠듯하기도 했거니와, 캐릭터의 분량이 그의 존재감을 국한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오히려 김홍파는 "과거에 첫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해 '주인공을 하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단역, 조연, 주연은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삶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느냐 그 시간의 차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나는 단역이 더 힘들었다. 짧은 시간에 그 캐릭터의 삶을 관객에게 각인시켜야 했다"며 '귓속말' 강유택 회장 역시 전체 작품 중 절반가량만 출연했으나 아쉬움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대신 김홍파는 빠듯했던 촬영 일정에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비단 '귓속말'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드라마들이 방송 일정에 촬영을 맞추기도 어려운 급박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 김홍파는 "20년 전 급박하게 촬영했던 드라마들과 지금의 드라마들 제작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개탄했다.

실제로 '귓속말'은 마지막 분량까지 새벽 6시부터 다음날 밤 12시 30분까지 36시간이 넘도록 촬영을 강행하는 빠듯한 일정으로 촬영됐다. 그런데 정작 김홍파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비결을 묻자 소싯적 태권도 선수를 꿈꾸며 갈고닦은 기초체력도 있거니와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김홍파는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시합 도중 척추 디스크 4개가 터져 운동을 접었다고 했다. 이후 재활에 힘쓴 뒤 어릴 때 꿨던 배우의 꿈을 떠올리며 진로를 결정했다고. 배우 생활만 25년을 넘긴 그에게 고등학생 시절의 좌절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김홍파는 "그 때 다친 덕분에 배우의 꿈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고 극단 '목화'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며 "돌이켜보면 역시 연기가 천직이었나 보다"고 회상했다.

특히 김홍파는 극단 '목화'에서 연기를 시작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김홍파는 "우리 것이 중요하다"며 흔히들 배우를 말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한 스타의 이미지를 경계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할 때 '우리 문화 속에 사는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에게 오태석 연출과 제자들이 전통연희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연극을 연구하는 극단 '목화'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아무리 결연한 각오가 있었다고 해도 극단 생활은 분명 고됐다. 김홍파는 "어마어마하게 고생했고 힘들었다. 욕도 많이 먹었다"며 '목화' 입성 초기를 생각했다. 이어 그는 "그런 내 부족함을 오태석 선생께 배웠다"며 "그 때부터 배우가 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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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홍파의 연기 인생은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으로 채워졌다. 김홍파는 "내가 생각했던 배우는 너무 막연했다. 배우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연기를 막 시작한 때의 후회를 곱씹었다. 또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내면을 비울 수 있고, 그 안에 연기할 것을 채울 수 있었다"며 "연기를 꿈꾸는, 또는 지금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영화 '미지왕'(감독 김용태·제작 태흥영화사)으로 처음 영화에 발을 들인 뒤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김홍파는 "첫 영화를 해보고 아직 내가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무대도 함부로 서면 안되지만, 특히 영화는 함부로 도전했다간 소위 '한 방에 훅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 영화에 대한 반성을 내놨다. 이어 그는 다시 연극으로 돌아간 일에 대해 "나 스스로를 알아낸 뒤 더 높은 배우의 가치와 능력을 갖췄을 때 영화에 나오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김홍파가 본격적으로 연기와 배우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을 확립한 것은 2010년 개봉한 영화 '베스트셀러'(감독 이정호·제작 에코필름)부터였다. 김홍파는 "지금도 이정호 감독에게 고맙다"며 "이 감독이 '베스트셀러'에서 나를 끄집어내 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베스트셀러'에서 주민 1이라는 단역을 맡았으나 이후로 캐스팅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던 것이다.

쏟아지는 캐스팅 제의에서도 김홍파만의 작품 선택 기준은 명확했다. 그는 "캐릭터를 우선하기보다는 시나리오 책을 중요하게 본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한 명만 멋진 게 아니라 작품 전체가 주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내용일 때 선택했다고.

흔히들 배우들에게 캐릭터의 매력은 출연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이 건만, 정작 김홍파는 "작품에서 첫 번째는 어떤 내용인지, 그 내용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지"라며 "내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두 번째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항상 시나리오 책을 먼저 보고 작품에 동의하고 감명받을 때 출연을 결정했고 그 뒤에 감독이나 제작진과 구체적인 캐릭터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김홍파는 유독 정치인, 재벌, 검찰 등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을 주로 맡았다. 이에 김홍파는 "감독들이 그쪽으로 캐스팅을 한다"며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정치는 전혀 꿈에도 없다. 난 여전히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만 김홍파는 "작품의 사회적 메시지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일파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들을 다룬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연출 케이퍼필름)에서 백범 김구 선생 역할을 맡은 것이나, 언론과 재벌, 검찰의 담합을 다룬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제작 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에서 재벌 총수 오 회장 역을 맡은 것,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할 '낭만'이라는 가치를 그린 의학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극본 강은경·연출 유인식)에서 유토피아 돌담병원의 여 원장 역을 맡은 것도 다 그 이유에서였다. 물론 빠듯한 일정 와중에 '귓속말' 출연을 결정했던 것도 작품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김홍파는 "나도 일개 국민인데, 지금 사회가 너무 재미가 없다"며 그동안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을 선호했던 이유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정치나 모든 분야에서 국민들 눈을 너무 가리고 살지 않았나"라며 "나부터 궁금한 게 많고 답답함이 컸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신나게 지낼 수 있길 바랐다. 그렇기 위해 내 작품에서라도 뭔가 진실을 얘기하길 바랐다"며 지난 출연 작품들을 떠올렸고, "언젠가 사회가 건강해지면 그때는 또 그 시대에 맞는 작품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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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홍파에게 배우란 "타인의 삶을 사는 존재"였다. 그는 "사람의 인생에 희로애락이 다 있다. 배우는 맡은 사람, 캐릭터의 인생을 설명하는 존재다. 그 삶을 어떻게 잘 전달해줘야 하는지에 배우의 능력이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본래 내 성격은 다혈질"이라고 말한 김홍파도 연기를 위해 자신의 성격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그 세월이 20년을 넘겼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김홍파는 현재의 자신이 젊은 날의 자신과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늘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목화'의 오태석 연출과 대학에서 만난 결산 천경화 교수를 인생의 은사로 꼽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 오태석 연출에게는 '목화' 시절부터 연기의 기본과 배우의 자세 등을 배웠고 천경화 교수에게는 인간 김홍파로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 그였다.

무엇보다 김홍파는 천경화 교수에게 본명 김홍재 대신 '홍파(洪波)'라는 호를 받은 것을 언급하며 "'홍파'처럼 큰 파도의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배우로서, 인간 김홍파로서 언젠가 파도처럼 덮쳐올 역경과 시련도 이겨내고 큰 물처럼 세상에 덕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호를 예명으로 삼은 데부터 그의 각오가 드러났다. 흔히들 사람은 '큰 물'에서 노는 것을 꿈꾸기 마련, 진정 넓은 파도처럼 살고 연기하는 김홍파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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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종착역은 없습니다. '이제 배우가 됐다', '이제 조금 편하게 살아도 되겠다' 같은 생각이 든 적이 있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더군요. 맡은 인물이 늘 새로운 사람이다 보니 늘 새롭게 시작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만큼 사람도 인생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마지막에 어떤 인물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내 종착역은 거기에 있을 겁니다. 어찌 됐건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배우로 살겠네요. (웃음)."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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