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 설정 북마크 china
홈페이지 로그인 회원가입 기사제보
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씨네뷰]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의 야심작, 확연한 명과 암
2017. 08.23(수) 23:18
영화 브이아이피 리뷰
영화 브이아이피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이제껏 다뤄진 적 없는 '기획 귀순'이란 획기적 소재를 놓고 대한민국 국정원과 경찰, 미국 CIA와 북한 보안성이 복합적 구도로 얽혀있다. 범죄 영화 단골손님인 그 흔한 조폭이나 깡패 무리는 찾아볼 수 없다. 국가기관의 알력 다툼과 교묘한 정치싸움은 더욱 넓고 세련된 범죄 누아르의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충무로 이야기꾼 박훈정 감독의 작정한 야심작임엔 틀림없지만, 왜인지 명과 암이 공존하는 영화 '브이아이피'다.

8월 23일 개봉된 영화 '브이아이피'(제작 영화사 금월)는 범람하는 범죄영화들의 비주얼과는 다른 사실성에 기반한다.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국정원은 이를 은폐하려 하고, 경찰은 반드시 잡으려 하고, 북 보안성 요원은 복수하려 하고, CIA는 이용하려 든다.

남북에서 5년에 걸쳐 차례로 벌어진 엽기적 행각의 부녀자 살인사건, 그리고 명확한 용의자. 5년 전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북한의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은 보복성 좌천을 당했다. 3년 뒤 남한의 특별수사팀 경감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중압감으로 자살했다. 동료의 죽음에도 "지만 X 되면 다야?"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폭력 경찰 채이도(김명민)가 이를 대신해 수사에 착수하며 극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는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절차와 법도 무시하는 이도는, 무서운 혹은 무식한 집념으로 유력 용의자를 찾아낸다. 이에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은 그보다 먼저 VIP 김광일(이종석)을 빼돌려 살인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정의감이라고 단정 짓기엔 다소 애매한 이도의 '집념'과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혁의 '생존본능'이 극명하게 대립각을 세운다. 여기에 VIP에 대한 이용가치가 남은 CIA까지 개입하며 그야말로 난장판에 가까운 북새통이 벌어지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들을 보며 냉소적인 비웃음을 흘리는 VIP다.

이같은 사건의 흐름을 프롤로그, 용의자, 공방, 북에서 온 귀빈 VIP, 에필로그란 다섯 개의 챕터로 명료하게 나눠놨다. 영화에 내포된 사상적 의미와 구성의 미학은 박훈정 감독이 이제껏 그려낸 모든 이야기를 아우를 만큼 영리하고 노련하다. 스폰서 검사와 경찰의 힘겨루기 과정을 통해 검·경찰과 재벌, 언론의 추악한 유착 관계를 다루며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부당거래',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되어가는 인간의 상실과 타락을 참렬한 살육 현장으로 그려낸 '악마를 보았다'. 이밖에도 선과 악이 혼재된 채 각자의 이상향을 향해 들끓는 욕망으로 가득했던 '신세계' 등등. 음습한 필름 누아르에 녹여낸 박훈정 감독의 본령은 '브이아이피'를 통해 더욱 극대화됐다.

이를테면 비열한 사회 조직에 대한 예민한 통찰과 통렬한 비판, 특유의 철학적 관념론과 염세주의, 현실에 기조한 인간 내면의 적나라한 본성 따위다. 예를 들어 끔찍하게 유린당한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을 놓고도 경찰 윗선은 국정원과 뒷거래를 하고, 검찰은 눈치 보며 발을 빼기 바쁘다. 해당 신은 그 어떤 잔학한 폭력 신보다 더 공포스럽다. 각자의 사익을 추구하기 바쁜 거대 지배 세력의 부패한 먹이사슬, 그 복잡한 포식 관계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피식자들의 모습은 환멸을 넘어 착잡한 우울감을 안긴다. 이처럼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그려낸 감독의 영특함은 놀랍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하지만 이같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철저하게 사건 중심의 내러티브를 차용했다. 이에 화려한 캐스트와 활용 가치 높은 캐릭터를 놓고도 밋밋하고 단선적 연출에 그친 것은 명백한 허점이다. 국정원이란 조직에서 출세욕을 보이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찌들고 탁한 중년의 회사원 같은 장동건.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하는 맹렬한 사냥개지만 이로 인해 힘 있는 자들과의 협치나 타협을 부정하는 마초 형사 김명민. 폭압적 전체주의 권력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정의감으로 끈질기게 저항하는 박희순의 무표정한 외피 속 처연한 심회까지. 면면이 매력적인 해석이 가능한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대립 관계 속 유발되는 자극에 반응하는 이들의 행위가 지나치게 대사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들의 갈등 구조 또한 거듭된 반복으로 캐릭터를 평면적인 한계에 가둔다. 감독 특유의 '밀당'과 '쪼는 맛'을 기대한 관객들에겐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할 터.

게다가 타이틀롤이라 할 수 있는 VIP 김광일 역의 이종석은, 범죄 수사물의 방식을 따라가는 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후반엔 다소 힘이 부치는 모양새다. 물론 이제껏 상당한 고정관념이 박힌 북한 로열패밀리 자제를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공자의 외양과 냉철한 이지적 표정으로 담아내며 낯선 흥미를 주는 건 사실이다. 또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여성을 유린하고 살육하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살육 행위가 성도착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전형적 설정이 드러나며, 여성을 그저 피학적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에 머무르는 것이 그 인물과 행위에 대한 불유쾌감을 높인다. 여기서 시종일관 무표정하거나 비릿한 조소를 띠던 광일이 고작 상대가 던진 성적 조롱에 지나치게 감정을 표출하는 신 또한 노련하지 못하다.

단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관통되는 수미상관식 연출에서 극대화된 필름 누아르적 색채와 감성은 잔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다. '악마를 보았다'의 충격적 엔딩 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특히 극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장동건이 완성한 허무주의 감성은 극의 방점을 찍는다. 청소년 관람불가.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브이아이피' 포스터, 스틸]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한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키워드 : 연예계이슈
싸이월드공감
koreastardaily kantamedaily kakao qq sina news.yahoo news.msn tw.news.yahoo.com thegioidienanh vientianetimes 구글 mk hihoku KT KBS 네이트온 싸이월드 네이트 다음 tvcast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