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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김선영, '여왕' 이전에 한 '사람' [인터뷰]
2017. 09.08(금) 10:46
김선영
김선영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뮤지컬 배우 김선영은 다양한 작품에서 카리스마 강한 프리마돈나로 무대를 지배했다. 팬들은 김선영의 도도하고 강한 이미지를 흠모하며 '여왕'이라 불렀고 뮤지컬 관계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직접 만난 김선영은 도도한 카리스마 이면에 누구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뮤지컬 '레베카'(연출 로버트 요한슨)는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은 귀족 막심이 순수한 평민 나(I)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화 같은 맨덜리 저택을 배경으로 죽은 레베카를 향한 댄버스 부인의 집착 그리고 막심과 나의 사랑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게 펼친다. 공연은 강한 서스펜스에 힘입어 지난 2013년 국내 초연된 뒤 올해 네 번째 무대를 맞았다.

김선영은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았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신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 맨덜리 저택의 집사다. 그는 레베카의 죽음을 부정하고 새 안주인 나를 내쫓으려 해 갈등을 촉발시킨다. 특히 댄버스 부인은 광기 어린 집착과 갈등 전면에 나서는 점에 힘입어 초연 이후 줄곧 '레베카'의 히로인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김선영은 이런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소감으로 "이렇게 잘 된 공연에 그것도 누구보다 환호받는 좋은 캐릭터로 출연해도 되는지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에 함께 댄버스 부인 역에 캐스팅된 뮤지컬 배우 신영숙이나 옥주현이 '레베카' 초연부터 활약한 점을 높이 샀다. 또 "두 친구들이 이미 잘 만든 캐릭터에서 뉴 캐스트인 제가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굳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필요는 있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고민이 있었음에도 김선영이 '레베카' 출연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댄버스 부인의 광기와 그로 인한 폭발력 때문이었다. 그는 2015년 한 해 동안 작품 활동을 쉬며 출산과 첫아들 온유의 육아에 집중했고 지난해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 역으로 무대에 복귀했다. 명성황후는 황후의 위엄을 담은 캐릭터이기에 정제된 연기를 필요로 했다. 이에 김선영은 차기작에서는 조금 더 에너지를 분출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자 했다. 육아에 집중하면서 쉰 시간 동안 쌓인 제 에너지를 확실히 분출하고 무대에 쏟아붓고 싶었는데 댄버스 부인이 딱 맞는 캐릭터였던 것.

또한 김선영은 '레베카'가 그리는 권선징악의 메시지에 반했다. 그는 막심과 나의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악인들이 몰락하는 모습들을 일종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김선영은 "선이 흥하고 악이 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자칫 과거 마당극처럼 너무 뻔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데 그런 권선징악이 반드시 이뤄져야만 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며 "저는 이 이야기가 그저 뻔하다기보다는 명료하고 정확한 서사라고 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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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선영은 섬세한 감정을 통해 단순 명료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그리려 했다. 그는 죽은 레베카를 자식처럼 여겼던 댄버스 부인의 마음을 상상했고 이를 위해 무대 위 러닝타임뿐만 아니라 대본에는 생략된 캐릭터들의 과거사도 추리했다. 김선영은 "댄버스 부인이 처음 본 나를 괜히 부정하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 집사 일을 시작하며 레베카를 만나 인정받았고, 마치 나이 많은 언니가 어린 동생을 살피는 마음에 일종의 모성애까지 더해져서 집착과 광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물의 과거사를 상상하고 해석하는 건 김선영이 매 작품 반드시 거치는 작업이었다. 그는 "드라마틱한 인물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 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탄생한다"며 "무대 위에 설명이 나오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인물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종의 전사(前史)를 쓰는 일"이라 표현한 그는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 인물이 상대방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하더라도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김선영은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나 연기만을 위해 캐릭터의 전사를 쓰지 않았다. 그는 모든 캐릭터를 살아있는 존재처럼 아꼈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캐릭터에 접근하고 연기에 임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제가 하는 연기라는 게 결국엔 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광기에 사로잡힌 댄버스 부인이나 비극적인 삶을 산 명성황후, 뮤지컬 '엘리자벳'의 황후 엘리자벳 등 자신이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이 단지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일상 속 사람들의 한 유형을 극화시킨 것이라는 그다. 결국 연기를 잘하는 건 캐릭터로 대표되는 인간 유형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과거사도 추측하며 시종일관 사람을 관찰하게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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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각 장면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이 지겨울 법도 하건만, 김선영은 1999년 뮤지컬 '페임'으로 데뷔한 이래 줄곧 연기에만 매진했다. 그는 "같은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다는 게 저도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는 "극도로 몰입해서 연기하다 보면 무대 위 호흡이나 공기들이 아주 잠깐씩 멈추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내가 해석하고 불어넣은 감정들이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것만 같은 순간들"이라며 "그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계속 무대에 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김선영이 오랜 배우 생활 동안 꾸준히 집착한 단 한 가지는 바로 자아였다. 김선영은 "무대 위에서는 어디 숨을 곳도 없어서 공연만 앞두면 솔직히 정말 예민해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만큼 나 자신이 중요해지더라. 연기를 하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이 뭔지 잊는 순간들이 오는데 그때 나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단순히 신체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내 자아, 마음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 나아가 캐릭터가 표현할 감정까지 중요하게 생각게 됐다.

이처럼 자신의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기까지, 김선영은 주로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여왕'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정작 그는 "너무 감사하고 과분한 수식어다. 저는 전혀 강한 사람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내내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자신이 관찰하고 연기하는 사람에 대해 논했다.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섬세한 관찰력과 연기로 풀어내는 그는 차가운 광기의 댄버스 부인 이전에 누구보다 따뜻한 인류애의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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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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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김선영 | 레베카 |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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