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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병헌, 확고한 믿음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
2017. 09.30(토) 13:36
남한산성, 이병헌 인터뷰
남한산성, 이병헌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흥행 여부를 감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좋은 영화를 찍었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영화 '남한산성'의 개봉을 앞둔 이병헌은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이 영화가 더해질 것을 생각하면 절로 뿌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 이 확고한 믿음에 대한 해답은 그의 '말' 속에 있었다.

오는 10월 3일 개봉을 앞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제작 싸이런픽쳐스)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극 중 이병헌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았다. 삼전도까지 기세 좋게 밀고 들어온 청나라 대군 앞에서 남한산성 안에 고립된 인조는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신하 최명길과 김상헌(김윤석)은 항복 여부를 두고 각자의 철학과 신념을 내세우며 설전을 벌인다. 이병헌은 섬세한 연기를 통해 최명길의 '말' 속에 진심을 담았고, 김윤석과 팽팽한 설전을 벌이며 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남한산성'이 다루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이 겪었던 수많은 전쟁 중에서도 유독 후세대에 외면받은 사건이다. 청의 대군에 밀려난 명백한 패배와 항복, 게다가 인조가 청의 황제인 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던 '삼전도의 굴욕' 등 치욕이 담긴 역사인 탓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이처럼 환영받지 못할 패배의 역사에 기꺼이 몸을 실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탄탄하고 "그 자체로 이미 작품인" 시나리오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캐릭터의 분량을 저울질하거나 장르를 기준으로 삼아 작품을 가려낸다고 하지만,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고르는 가장 큰 기준으로 '재미'를 꼽았다. "'재미'라는 것이 주관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코미디가 많거나 스펙터클한 액션, 혹은 애절한 멜로가 있다고 해서 재미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남한산성'의 경우에는 내가 받은 감동 자체가 곧 '재미'였다"는 것이다.

"최명길 김상헌의 충정은 그 어떤 멜로 영화에 나오는 사랑보다도 더욱 멜로 같았어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모습이 어지간한 액션보다 강렬했죠. '설전'이라고 하니 어찌 보면 말싸움에 지나지 않고 가벼워 보이지만, 두 사람의 언쟁 속에서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꼈죠."

티브이데일리 포토

'남한산성'은 원작 소설 속 살을 에는 추위, 눈발이 흩날리는 조선의 겨울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큰 각색 없이 최대한 원작의 줄거리와 인물을 살렸고, 특히 원문 대사 속 고증을 거친 옛말이 대사에 녹아들어 김훈 작가 특유의 '말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말 맛'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설전을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긴장감 넘치게 만든다.

극 중 최명길은 인조에게 청에 항복해 살 길을 도모하고 죄 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자고 충언하는 인물이다. 반면 김상헌은 끝까지 대의를 지키며 결사 항전해 청에 맞서 싸우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두 사람은 끊임없는 갈등을 빚는다. 이병헌은 최명길에 대해 "오로지 만백성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서 행동하는 인물이었고,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인본주의 덕에 조금이나마 인물을 이해하고 표현하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화친을 택하고, 조용하지만 침착하게 임금과 대신들을 설득하는 최명길의 말을 섬세한 연기로 빚어 놓은 것.

"옛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생경한 단어를 직접 소리 내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덕분에 최명길이라는 캐릭터에 젖어드는 것이 더욱 수월했다"는 이병헌. 정작 그를 괴롭힌 것은 상대방의 눈을 보고 표정을 읽는 대신 바닥을 보며 연기를 하는 일이었다고. 임금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싸우는 두 대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행궁 세트의 나무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가 다반사였고, 신하가 임금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볼 수 없으니 고개를 숙여야 하는 통에 상대방의 목소리만 듣고 기운을 읽어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 독특한 촬영 현장에 익숙해진 후에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설정이 오히려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시선을 돌릴 수 없는 탓에 더욱 예민하게 상대방의 연기와 주변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고, 덕분에 상대 배우와 눈을 마주치며 연기를 할 때보다 더욱 뜨거운 감정을 토해내며 맞부딪히는 경험이 새로웠다"는 것이다. 이병헌은 "마치 임금을 앞에 세워두고 그를 거쳐가며 최명길 김상헌이 삼각 구도로 싸우는 모양새여서 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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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남한산성'과 함께한 순간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혹자는 왜 보기만 해도 불편한 패배의 역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느냐고 묻지만 그 역사 안에도 살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고 남겨진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흥행에 크게 도움이 되는 승리한 역사의 이야기도 좋지만, 지금껏 그런 기쁨의 순간들을 골라 만든 영화들은 충분히 많았다"고 힘주어 말한 이병헌. 그가 말하는 '남한산성'의 차별점은 치욕적인 역사,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굴욕의 순간들을 영화를 통해 돌이켜보자는 데 있었다. 영화를 향한 믿음과 신뢰, 자부심 또한 이러한 차별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치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민초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던지며 항복을 권유하던 최명길의 모습이 곧 진짜 정치가 아닐까 싶어요. 정치란 사람들을 위해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 나라를 정말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정치 싸움을 보며 잘잘못을 가리기 보다는, 이들의 이야기에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분명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이라 생각해요."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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