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 설정 북마크 china
홈페이지 로그인 회원가입 기사제보
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씨네뷰] '남한산성', '말'로 만든 창과 방패를 들고
2017. 10.03(화) 19:35
영화 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거대한 스크린 위로 펼쳐진 흰 설경이 관객을 압도한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굽이굽이 펼쳐진 긴 성벽 너머에서는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을 고민하는 임금과 대신,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인" 백성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엇갈린다. 영화 '남한산성'의 이야기다.

3일 개봉한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제작 싸이런픽쳐스)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병자년의 겨울, 삼전도까지 기세 좋게 밀고 들어온 청나라 대군을 앞에 두고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는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은 각자의 철학과 신념을 내세우며 설전을 벌인다. 우유부단한 인조와 조정 백관이 뜻을 정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사이 성벽 위 백성들은 손발이 어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저 삶을 버텨낸다.



'남한산성'이 다루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이 겪었던 수많은 전쟁 중에서도 유독 후세대에 외면받은 사건이다. 청의 대군에 밀려난 명백한 패배와 항복, 게다가 인조가 청의 황제인 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던 '삼전도의 굴욕' 등 치욕이 담긴 역사인 탓이다. 그럼에도 굳이 패배의 역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를 택한 황동혁 감독은 두 충신 최명길, 김상헌의 설전을 통해 치욕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아냈다.

이야기는 양 극단에서 날카로운 논쟁을 펼치는 두 신하의 말을 통해 흘러간다. 청에 항복하고 죄 없는 백성들의 삶을 도모하자는 최명길, "한 나라의 군왕이 어찌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라고 일갈하는 김상헌의 외침은 결국 '백성을 위한 선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라는 이들의 고민은 38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이 된다. 임금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서로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건만, 두 사람의 말은 곧 서로를 겨눈 창과 방패가 돼 뜨거운 전투를 연상케 하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이병헌 김윤석의 명연기는 곧 '남한산성'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됐다. 이병헌은 역적이라는 모함,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주위의 위협 속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는 최명길의 '말' 속에 진심을 담았고, 김윤석은 자신의 뜻을 지키기 의해서는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우직한 충신, 김상헌을 실감나게 연기해냈다. 이들의 연기는 소설을 최대한 고증해 옛말을 그대로 살린 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관객을 압도하며, 동시에 작품 전체를 빛나게 한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두 대신을 작품의 기둥으로 삼은 데 이어, 영화는 주변의 캐릭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야기의 얼개를 단단히 짰다. 일례로 충신인 수어사 이시백(박희순)과 제 살 길을 도모하는데 급급한 영의정 김류(송영창)의 대립을 통해 당시 조정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와 칠복(이다윗), 청의 통역사 정명수(조우진)의 일화를 통해서는 신분의 귀천에 의해 끊임없이 의심받고 소외당하며 살아야 했던 천민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당면할 일을 당면할 뿐"이라는 대사처럼, 말뿐인 갑론을박에 여념이 없는 임금과 대신들을 앞에 두고 백성들은 그저 지난한 겨울을 버티고 살아갈 따름이다. 모든 배역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뤄낸 덕에 '남한산성' 안의 내홍은 더욱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또한 황동혁 감독은 이 모든 인물들을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미장센 안에 담았고, 소설 속 살을 에는 듯한 겨울의 추위를 화면 위에 고스란히 구현해 냈다. 얼어붙은 조선의 산과 들, 눈이 수북히 쌓여 깨질 줄 모르는 강 위의 얼음, 칼바람이 불어 살을 에는 성벽 위 망루가 실제 세트와 최대한의 고증을 통해 재연됐다. 여기에 한국 영화 최초의 협업으로 화제가 된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OST가 화룡정점을 찍었다. 47일간 벌어진 조선의 처절한 생존기를 산 중턱에 걸터앉아 관망하던 칸처럼, 역사를 스케치한 '남한산성'이라는 영상 전체를 담담하게 아우르는 음악이 인상적이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처럼 '남한산성'은 최근의 사극 영화와는 분명하게 다른 결을 띈다. 139분 러닝타임 동안 한겨울 설경을 바탕으로 빚어낸 정제된 미장센, 감정을 절제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서사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을 따라간다. 배우와 감독이 입을 모아 '정통 사극'임을 표방한 이유다. 뜨거운 환호를 받는 영웅이 등장해 통쾌함을 안겨주거나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대규모 전투신이 등장해 볼거리를 자아내는 것도 아니지만, 최명길과 김상헌 두 대신들이 이어가는 '말'의 전쟁은 눈보라가 이는 성벽 속에서도 뜨거운 불꽃같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렇기에 '남한산성'은 여러모로 독특한 영화다. 모두가 기피하던 치욕적인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냈고, 이를 인물과 사건에 집중하는 정공법으로 풀어내 상업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선 색채를 띤다. 게다가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는 대신, 380년 전 명과 청 사이에서 신음하던 조선의 모습을 바탕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이 영화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남한산성' 스틸]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황서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키워드 : 남한산성
싸이월드공감
koreastardaily kantamedaily kakao qq sina news.yahoo news.msn tw.news.yahoo.com thegioidienanh vientianetimes 구글 mk hihoku KT KBS 네이트온 싸이월드 네이트 다음 tvcast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