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부' 허정민, 때가 온다는 걸 아는 자의 기다림 [인터뷰]
2017. 12.07(목) 21:48
허정민
허정민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마인드"라는 배우 허정민의 말에서는 염세가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그의 말을 들어보니, 기다림에 대한 여유로움과 묵직함이 전해졌다.

"많이 참고 기다리는 편인 것 같아요. 주어지는 게 있다면 잘 해내면 되고요. 욕심부려봤자,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등바등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봐야 소용 없는 것 같아요."

허정민은 최근 종영한 KBS2 금토드라마 '고백부부'(극본 권혜주·연출 하병훈)에서 2017년에는 LG트윈스의 노총각 응원단장, 1999년에는 비실비실한 체력에 소심한 성격을 지닌 스무살 대학생의 삶을 사는 안재우 역을 맡았다.

그간 tvN '연애 말고 결혼' '또 오해영' 등을 통해 능청스러우면서도 활발한 캐릭터들을 소화해온 허정민은 오히려 안재우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고 고백했다. 허정민은 "내 성격이 원래 그렇다. 소심하다"며 "많은 분들이 그간 작품들에서 보여진 모습 때문에 내가 와일드하고 활기찰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만성 피로에 귀차니즘도 심한 사람"이라고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비슷한 면모 덕분에 허정민은 안재우 역을 제안받고 반가움을 느꼈다. 그는 하병훈 감독에게 "원래 내 성격이 이렇다. 어떻게 아셨냐"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또 오해영'이나 '연애 말고 결혼'을 할 때는 나와 다른 성격을 연기해야 해서 오히려 어려웠다"고 고백한 허정민은 "이번 드라마는 연기라고 할 것도 없이 정말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안재우를 더욱 편하게 만들었던 건 절친한 배우 한보름이었다. 허정민은 윤보름 역을 연기한 한보름과 스무살에 만난 오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보름을 남매 혹은 형제로 표현한 그는 "처음에 윤보름 역에 한보름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슬펐다. 이번에 사심을 가지고 윤보름 역을 맡은 배우와 결혼까지 생각했었는데, 글렀구나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허정민은 한보름과 지난 2015년 KBS2 드라마 '다 잘될 거야'에서 부부 연기를 펼친 바 있다. 이에 허정민은 한보름과의 로맨스 연기를 더욱 편하게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한보름이어서 좋았던 건 내가 낯가림이 심한데 스킨십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뽀뽀를 하는 장면에서도 정말 사심 없이 할 수 있었다"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한보름 같지만 않으면 된다"는 허정민의 농담 섞인 답에서는 둘의 우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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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민은 한보름 뿐만 아니라 손호준, 이이경 등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화기애애한 촬영현장을 꾸려가며 실제 대학 친구들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에 허정민은 '고백부부'를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대학 생활을 떠올리기도 했다.

촬영을 진행했던 캠퍼스를 보며 울컥한 적도 있다는 허정민은 자신의 실제 대학 생활에 대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며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드라마 '모래시계'를 촬영하며 연예계에 데뷔해, 그룹 문차일드 멤버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허정민은 대학생이 돼서야 오롯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학교가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맘껏 놀고, 미팅도 하고, OT나 MT도 갔다"며 "그 시절을 탐닉하면서 지냈다"고 털어놨다.

'모래시계'부터 문차일드까지 쉽지 않은 연예계 생활로 어린 시절을 보낸 허정민은 대학 생활을 거친 뒤에도 자연스럽게 배우 생활로 돌아왔다. 그는 "전공도 연극영화과였고, 배운 건 연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며 "졸업할 때 쯤 당시 매니저가 함께 일을 하자고 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기는 또 찾아왔다. 소속사 문제가 발생했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어려워졌다. 군대를 가야 했고, 제대 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집안 문제도 겹쳐 돈을 벌어야만 했고, 자신이 배우라는 꿈을 붙들고 있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대 후에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도 뭘 해서든 돈을 벌어야 했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를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껴지더라고요. 허송세월 보내는 것 같았어요.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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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허정민은 소극장으로 돌아갔다. 오로지 연기, 일에 대한 절실함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연극 '보잉보잉'을 시작으로 무대에 재미를 붙인 허정민은 매년 연극을 올리고 있다. 그는 "연극은 연극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드라마만 하면 지칠 때가 있는데, 그때 무대로 가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고 나를 환기시킬 수 있다"며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다 안방극장에 설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바로 '연애 말고 결혼'. 당시 연출을 맡았던 송현욱 감독이 허정민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허정민은 "송현욱 감독님한테 연기 그만 둘 생각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었다. 그때 감독님이 '이 작품 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그때 그만두라'고 설득했다"고 고백했다. 결과적으로 '연애 말고 결혼'을 통해 다시 한 번 빛을 본 허정민은 제작사의 반대도 무릅쓰고 자신을 믿어준 송현욱 감독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후 허정민은 '또 오해영'이라는 히트작도 만났다. 그렇게 다시 배우 허정민의 생활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인지도 면에서 조금 달라지기도 했고, 예전보다 작품도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연애 말고 결혼'과 '또 오해영'이 이어지며, 늘 주눅들어있던 허정민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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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부터 지금까지 그의 연기 생활은 벌써 22년을 넘겼다.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있었고, 일이 없어 포기하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 이 기간동안 허정민이 깨달은 건 때를 기다리는 법이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보면, 때는 온다고. 허정민은 그 깨달음을 '고백부부'로 또 한 번 되새겼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또 오해영'이 끝나고 참 헛헛했어요. '또 오해영' 같은 작품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번에 '고백부부'를 하면서 '이런 작품이 또 내게 오는 구나' 싶더라고요."

'고백부부'를 만난 2017년에 감사하다는 허정민은 "작품이 사랑을 받든 안 받든 열심히 하는 게 목표"라며 덤덤하게 내년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서는 때는 또 온다는 걸 아는 자의 여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해나갈 성실함이 비춰졌다. 이에 2018년의 허정민의 모습에 더욱 기대감이 들었다.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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