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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질문, 얼마나 사랑하고 있나요 [리뷰]
2017. 12.21(목) 14:27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 포스터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 포스터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의 꼬일 대로 꼬인 갈등을 풀 수 있을까. 당장 정답을 찾을 순 없을지라도 매듭을 풀 시도는 할 수 있을 터.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가 세대를 막론한 성공의 기준과 이를 유쾌하게 풀어낸 이야기로 세대 화합의 불씨를 지핀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연출 이해제)는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 앙리와 낙천적인 대학생 콘스탄스가 만나 세대 갈등을 뛰어넘어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연극이다. 프랑스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대학생'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15일 국내 초연의 막을 올렸다.

공연은 아내와 사별한 뒤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 앙리와 그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고자 찾아온 콘스탄스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공동묘지가 보이는 음산한 풍경과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득실 거리는 방에 지인 초대는 불가능하고 청결을 강조하는 집주인까지. 앙리의 방은 여러모로 세입자에게 악조건이지만 당장 파리에서 저렴한 방을 구해야 하는 콘스탄스는 두말 않고 앙리의 집에 들어온다.

정작 앙리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성 정체성마저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는 콘스탄스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에 각종 규칙을 들먹이며 콘스탄스를 몰아세우고 기선을 제압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소용없다. 콘스탄스는 특유의 낙천적인 태도로 자신에게 까칠하기 일쑤인 앙리를 "유쾌하신 분"이라 치켜세우며 적응한다. 또한 "감기 걸리지 마라"라는 고함 같은 충고가 앙리가 전하는 진심 어린 걱정과 친근함의 표시라는 것도 꿰뚫어 본다. 이에 콘스탄스는 앙리에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재능도 꿈도 모른 채 방황하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진심으로 다가간다.

그 사이 앙리는 티 없이 맑고 발랄한 콘스탄스에게 매료돼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며느리 발레리나 그런 아내를 끼고도는 아들 폴과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 앙리지만, 콘스탄스의 밝은 웃음과 고민에는 낯간지럽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어느새 고민을 들어주는 인자한 할아버지로 변신하고 마는 것. 자식인 폴과 발레리는 앙리와 콘스탄스의 친손녀나 할아버지 같은 관계가 신기할 따름이다. 이 가운데 앙리와 콘스탄스는 폴과 발레리의 관계를 두고 둘만의 비밀스러운 내기까지 하며 더욱 친밀해진다.

특히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앙리와 콘스탄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유쾌한 소동극 형태로 그린다. 앙리와 콘스탄스는 함께 살며 양말 한 켤레도 나눠 신고, 가족들에 대한 비밀을 공유한다. 또 사별한 아내가 좋아했다는 이유로 굳게 잠겨 있던 앙리의 피아노는 술 취한 콘스탄스의 연주로 봉인 해제된다. 이 과정에서 객석은 정신없는 두 사람의 일상에 폭소하기도 하고, 사별한 아내를 떠올리는 앙리의 그리움과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했던 피아노를 다시 치는 콘스탄스의 감격에 동화되며 감동하기도 한다. 웃음과 감동을 오가는 두 사람의 소란한 일상이 시나브로 공연장을 물들인다.

신구와 이순재 그리고 김슬기와 박소담은 각자의 연륜과 연기로 앙리와 콘스탄스를 찰떡 같이 표현한다. 신구는 똑부러지는 발음과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 시크한 할아버지 앙리를 표현하고 이순재는 굵은 음성과 신경질적일 정도로 까칠한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만사가 짜증인 앙리를 보여준다. 또 김슬기와 박소담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전작들에서 보여준 코믹함과 발랄함으로 앙리를 녹이는 콘스탄스로 변신한다. 여기에 능수능란한 무대 매너와 생활 연기로 객석을 웃고 울리는 폴의 이도엽 조달환과 앙리와 갈등하고 화해하는 발레리의 강지원 김은희까지. 쟁쟁한 배우들은 구멍 없는 연기로 무대를 가득 채우며 공연이 선사하는 감정의 밀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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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공연은 급격한 나이 차이와 살아온 시대의 차이로 갈등하는 앙리와 폴, 발레리 그리고 콘스탄스의 모습을 통해 현재 한국의 세대 갈등을 돌아보게 한다. 1,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생존을 위해 달렸으나 끝내 혼자 남아 아들 내외와도 남처럼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전쟁 세대 앙리,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고 염려하지만 불임에 스트레스받고 막대한 상속세도 걱정해야 하는 폴과 발레리, 대학 졸업도 어려운데 취업은 더 막막한 콘스탄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들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 서울의 한 가정과 대동소이하다.

나아가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가장 급격한 차이를 보이던 앙리와 콘스탄스가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며 남에서 가족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통해 현재 한국의 세대 갈등 역시 풀어낼 수 있고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물론 툴툴거리며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앙리와 무조건적으로 밝고 취직을 헤매는 콘스탄스의 설정 등은 보편적이다 못해 상투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쟁쟁한 경력과 내공을 가진 배우들의 호연과 캐릭터들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전개 방식이 익숙함을 뛰어넘는 더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공연 말미 앙리가 평화로운 죽음 가운데 콘스탄스에게 유서를 남기는 장면은 이 공연이 세대 갈등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앙리가 유서에서 "짧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있다"고 말하는 것. 결국 대전쟁을 겪고 피폐한 삶을 간신히 정상화한 기성세대 앙리나,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없지만 당장의 꿈과 직업이 걱정인 콘스탄스나 결국 같은 기준과 명제를 품고 산다. 당신은 누구를 혹은 무언가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가 질문으로 강한 울림을 남기며 엄동설한에 지친 관객들을 위로한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내년 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 수현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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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앙리 할아버지와 나 |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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