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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장준환 감독, 이토록 여리고 강인한 사람아 [인터뷰]
2017. 12.23(토) 07:01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인터뷰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죽어있던 암울한 잿빛 거리로 미칠 듯이 뜨거운 울분을 품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에게선 괴롭고 처절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왔고, 몰아치기 시작한 광풍은 비로소 그들을 승리케 했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1987의 거리,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을 다시 소환한 장준환 감독은 무척이나 여리면서도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전 국민을 뜨거운 울분에 휩싸이게 했던 故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제작 우정필름)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던 날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당시 "이런 걸 '자뻑'이라고 한다"며 민망함을 부러 넉살로 감춘 감독이지만 순수하고 따뜻한 그의 내면이 엿보였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단 여느 말처럼, 마음으로 함께 울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그의 모습에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도 그때 그 시절을 꺼내보는 건 이렇게나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감독은 '1987'을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와 민주주의에 굉장히 큰 족적을 남긴 한 해인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말을 꺼내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 답답했다"는 장준환 감독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우리 아이들에겐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감도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장준환 감독이 '1987'을 택한 시기는 지난겨울이었다. 아직은 참담하고 암울했던 시기, 무력감과 분노가 때때로 요동쳤고 시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배우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출연을 결정했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고창석 오달수 이희준 우현 등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시나리오가 좋다며 너무도 쉽게 동참했다. 이를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표현한 감독은 "처음 시작할 땐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시기였기에 더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당시의 감격을 떠올렸다. 아내 문소리 또한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같이 걱정하고 격려해줬기에 더욱 용기와 확신이 생겼단 감독이다.

분명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실제 있었던 일을 다루는만큼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제대로 그려보잔 의욕도 넘쳐났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은 하나같이 장준환 감독이 현장에서 굉장히 집요했고 피도 눈물도 없었다며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에 "본의 아니게 본의였다"고 머쓱한 미소를 짓는 감독이지만, 그만큼 진심을 다해 영화에 임한 감독의 마음 씀씀이가 여겨졌다. 실제 그는 "민감한 주제와 상황들을 다뤄야 했기에 계속 진심을 잘 담아보잔 맥락에서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렸던 부분이 있다"고 했다.

'1987'은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이며, 실제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강행한 검사와 경찰의 협박에도 부검 결과를 밝힌 부검의, 감옥에 갇힌 민주 인사들의 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들이 존재했다. 감독은 "이 사실을 잘 짚어내면서도 어떻게 해야 드라마적으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보편적인 서사를 내세우기보다 각자의 캐릭터들을 짧은 시간 내 그려내고, 이들이 모두 모였을 때 하나로 합쳐져 이들 모두가 주인공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1987'의 구조가 낯설 수 있지만, 우리는 수많은 주인공이 나와야 했고 그날의 승리를 얻은 건 국민들이었음을 담으려 했다"는 감독의 염원은 극에 고스란히 담겼다. 실제 주요 캐릭터 외에도 시위하는 학생들을 몰래 숨겨주는 상인, 두려움에 맞서 원칙을 요구하는 교도소장, 언론의 신념을 지키는 사회부장 등등 극 중 짧게 스쳐간 수많은 이들은 큰 역사의 물결을 만들어낸 파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이처럼 작은 배역들 마저 따스하고 진정성 있는 시선을 담아낸 감독은 "이들 모두는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이 아니다. 각자 갈등과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더 우리 마음에 쉽게 와 닿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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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인물 구현 방식 속에서 유독 흥미로운 것은 악인 박처장(김윤석)이다. 그는 일그러진 애국심과 광기 어린 신념이 발현된 인물이고, 이에 대한 전사가 분명하다. 하지만 인물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구하려는 시도는 일절 없다. 감독은 "박처장은 이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악의 축이기에 그의 인간적인 부분에 동조하게 만들면 안 됐다. 우리 역사가 담고 있는 전쟁을 겪으면서 가진 이념에서 오는 트라우마들이 왜곡, 변형되며 이상한 괴물 같은 애국심을 갖게 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역사적 저변이 깔린 악인이라면 더 강력해지지 않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박처장이 제 부하들에 오히려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 역시 더 큰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이런 괴물같은 악인을 무너뜨리고 기어코 승리를 쟁취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욱 격한 감정으로 들끓게 한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난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은 또다시 춥게 얼어붙은 광장으로 나서야만 했다. 계속해서 되풀이되던 당시 상황은 때론 진력이 나게 했다. 이에 장준환 감독은 "물론 씁쓸하고 진 빠지고 우울해지는 이야기다. 왜 또다시 국민들이 엄동설한 찬 바람에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나 안타까웠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1987'이 우리를 되돌이켜 반성하게 하고 건강한 담론의 기회가 돼 더 나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회가 되길 희망했다.

감독은 세대 간 갈등, 이념 갈등이 극단적 양분화로 치달은 현재의 사회에서 기성세대들 또한 과거엔 독재정권에 대해 공통적 분노와 시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함께 힘을 모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지금 세대도 알길 바랐다. 반대로 30년 전 광장에서 힘차게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들의 이상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안타까웠다. 그렇게 뜨겁고 순수했던 그들이 지금의 척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서로 너무 날카롭게 부딪히는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몰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람이었다. 무엇보다 '1987'을 통해 관객들에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단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순수와 이상을 꿈꾸는 감독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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