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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잘못된 선택과 집중의 패착 [리뷰]
2018. 01.23(화) 08:50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포스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포스터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러시아의 추위도 녹일 열정 가득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원작의 매력은 반감됐고 파편적인 치정극만 남았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다.

'안나 카레니나'(알리나 체비크)는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가 쓴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뮤지컬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오페레타 씨어터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라이선스 공연으로 제작됐다.

공연은 매혹적인 여인 안나 카레니나가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을 버리고 귀족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원작 소설과 동일한 구성이다. 원작은 불륜과 치정 등 파멸로 귀결되는 배덕한 내용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작이라 불리며 사랑받았다. 19세기 말 당대 러시아의 귀족 문화와 농민들의 삶을 작품 곳곳에서 상세하게 풀어냈거니와, 톨스토이가 극단적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기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원작의 매력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우선 톨스토이가 묘사한 당대 러시아 사회상이 휘발됐다. 귀족 문화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무도회, 경마장 등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긴 하나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를 통해 표피적으로만 다뤄진다. 러시아 농민의 삶은 더욱 수박 겉핥기에 그친다. 원작에서 러시아의 시골 풍경은 근대화 직전,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한 곳으로 상세하게 기술됐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시골 귀족 콘스탄틴 레빈의 대사와 일부 넘버를 통해 점차 근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포장될 뿐이다. 이마저도 안나가 귀족 문화의 사교계를 피해 머물렀다가 염증을 느끼는 곳으로 묘사돼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가장 공들여야 할 안나와 브론스키의 러브스토리는 감정을 켜켜이 쌓는 것이 아닌, 시종일관 급작스러운 설정을 내세우기에 조금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일례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지나치게 희미하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게 전부다. 첫눈에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감정을 지나치게 생략했다. 심지어 두 사람 만남은 뒷전이고 앙상블과 공연에만 추가된 M.C 캐릭터가 군무로 시선을 뺏는다. 주인공의 감정은 보이지 않고 군무만 남는 주객이 전도된 장면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에 대한 어떤 설득력도 전달하지 못한다.

첫 만남에 이어 두 사람이 정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무도회 장면도 마찬가지다. 브론스키는 무도회에서 약혼자인 키티에게 청혼하기로 내정된 상황이었지만, 안나에게 러시아 사교계를 설명하며 키티와의 청혼 약속을 잊는다. 이에 안나는 남편은 물론 사랑하는 아들 세료자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의 적극적인 구애를 거절하지 못하고 열병 같은 사랑에 허덕인다.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반한 매력도, 안나 역시 브론스키에게 빠지는 이유도 부족하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처럼 주된 서사인 안나와 브론스키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축약된 결과,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감정선은 널뛰듯 전개된다. 안나의 솔로곡 '눈보라'처럼 개별적으로는 뛰어난 곡들이 더러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아 한 공연의 넘버가 아닌 개별적인 음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안나 역의 정선아와 브론스키 역의 이지훈 등 걸출한 실력파 배우들이 열정적인 연기를 펼쳐내지만 이미 맥 끊긴 서사를 이해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키티 역의 강지혜와 카레닌 역의 서범석, 오페라까지 안정적으로 부른 패티 역의 이지혜 등 찌를 듯한 고음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가창력이 아까울 따름이다.

물론 시각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는 가득하다. 발레와 무용을 기본적으로 습득하는 러시아 환경을 반영한 듯 앙상블의 절도 있는 군무는 여느 발레 공연 못지않다.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 또한 흥미롭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는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조명을 활용해 섬광으로 감옥의 창살을 표현하고, 안나의 심경 변화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는 마치 무대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리꽂는 조명과 색감 변화가 전부였던 기존 한국 무대 예술에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용과 볼거리 등은 뮤지컬을 구성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뮤지컬도 한 편의 이야기 위에 그려지는 음악과 연기의 향연인 터. '안나 카레니나'는 이야기 구성을 간과한 것이 뮤지컬의 완성도에 얼마나 큰 패착인지를 보여준다.

'안나 카레니나'는 2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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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뮤지컬 |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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