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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뷰] '염력' 연상호 감독의 초능력 활용법, 기막힌 본질
2018. 01.31(수) 19:07
영화 염력 리뷰
영화 염력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만화같은 상상력에 적나라한 사회적 실체를 교묘하게 숨겨놨다. 역시, 연상호 감독은 영특하다.

1월 31일 개봉된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제작 영화사 레드피터)은 '부산행'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며 초능력을 소재로 했다. 주인공 석헌(류승룡)은 빚 보증을 잘못 서 위장이혼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중년 가장이다. 은행 경비 일을 하며 몰래 은행 커피와 휴지를 빼돌리는 '진상 아재' 면모도 있고 대체적으로 능청스럽고 뻔뻔하다. 정의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슬쩍 기웃대다 적당히 몸사리고 피해가는 그런 인물이다.

하늘에서 초고속 유성이 떨어지던 날, 약수터물 먹고 배가 꾸룩꾸룩 하더니 갑자기 물건을 제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 숟가락 구부러뜨리며 전 세계를 순방하던 유리겔라가 떠오른다. 저 또한 이 신기한 능력 사용해 돈방석 오를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다 몇년 동안 연락 없던 딸 루미(심은경)에게서 아내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알고보니 딸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남평상가에서 청양치킨을 개발해 치킨 가게를 운영하던 청년 사장이고, 용역 깡패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아내가 변을 당한 것. 이제부터라도 딸을 데리고 제 희한한 능력으로 제대로 벌어먹고 살겠노라 결심하지만 딸은 상가 이웃들과 강제 철거에 맞선단다. 이를 돕는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변호사 김정현(박정민)은 석헌 눈엔 사람들 부추겨 허파에 바람 넣고 괜히 위험한 일에 몰아넣는 탐탁지 않은 사람이다. 석헌은 말한다. 무슨 수로 이기느냐. 이럴 시간에 뭐 먹고 살지 궁리나 하라고.

이제 와서 아빠 노릇하려는 거냐고 반발인 딸 루미와는 갈등이 심해지고, 늘 아빠는 도망만 갔다는 딸의 말이 비수가 돼 꽂힌다. 아빠 노릇 좀 제대로 하고 싶다. 용역 깡패들은 거대 자본 권력을 등에 업고 이들을 공격해오고 아빠 석헌은 딸을 구하기 위해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며 슈퍼 초인으로 거듭난다. 부성애로 각성한 한국형 슈퍼 히어로의 탄생이다.

극은 크게 두가지 서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철거 위기에 놓인 남평상가 철거민들의 투쟁과 붕괴된 가족의 갈등과 봉합이다. 감독은 이를 매우 유쾌하고 시끌벅적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그 속내엔 감독 특유의 통렬한 비판과 적나라한 비틀기가 가득하다. 이는 사회 현실에 대한 예민한 통찰이 장기인 연상호 감독이 애니메이션 전작들에서 꾸준히 보여온 방식이다. 이를테면 철저한 억압적 지배 구조의 계급 사회, 비열한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 따위의 것들. 그렇지만 실사 영화에선 대중성의 확장과 상업적 코드를 충실히 담아낸 감독인만큼 '염력' 역시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에 초능력을 쥐어주고 이를 매우 코믹하고 영리하게 풀어내고 이 기조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용역 깡패들에 맞서는 방식도 온갖 고철과 차량들을 염력으로 끌어와 탑을 쌓는 식이고, 혀를 내밀고 다리를 벌벌 떨며 안간힘을 쓰는 우스꽝스러운 염력 포즈는 류승룡의 실감나는 표정 연기로 살아난다. 손동작으로 까딱이는 류승룡과 속수무책 당하며 울먹이는 용역 깡패들, 그리고 이들이 경찰서에서 벌이는 코믹한 공방전 또한 코미디의 연속이다. 특히 뉴스에 나와 배후세력이 북한이라는 천박한 소리를 늘어놓는 무기분석가의 모습 등은 블랙코미디의 절정이다.

히어로물 외피를 하고 있는만큼 초인의 각성도 충실히 공식을 따라간다. 석헌은 끝내 말을 안 듣고 망루로 오른 딸을 구하려다 점차 딸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뜬다. 포기하란 말에 "이렇게 끝낼 거였으면 우리 시작도 안 했다"고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함을 드러낸 이들은 자본주의 거대 권력의 폭력성에 짓밟힌 피지배층의 모습이다.

해맑은 싸이코 홍상무(정유미)의 등장은 철거민들에겐 절대악인 용역 깡패들 또한 자본권력의 노예이자 소모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염력'의 거대 빌런은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의 제한된 권력과 부를 지닌 '가진자들'이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시스템의 비열하고 잔혹한 폭력성이 드러나는 순간, 이 적나라한 현실 사회의 모습은 관객의 심리에 거울효과를 일으키며 강렬한 자극제이자 기폭제가 된다. 너무도 영리한 연상호 감독 특유의 방식이다.

자본 권력에 길들여진 주류 언론들이 국면 전환을 위해 상가를 불법점거한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에 위협을 가한단 왜곡보도를 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현장에서 열악한 상황에도 생중계를 하는 대안 언론의 모습, 철제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린 철거민을 향해 쏟아지는 물대포는 故백남기 농민의 비극적 죽음을 연상케한다. 이는 도덕성이 결여된 언론과 부패한 권력의 힘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약자들의 짓밟힘에도 숨죽이고 외면하던 석헌은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고, 사력을 다해 딸과 철거민을 구하려 나선다. 자본권력에 저항하면 딸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인간이자 아버지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진정한 각성을 이룬다. 그리고 이제껏 발현되지 않던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히어로로서 존재할 수 있는 핵심은 결국 내면의 치열한 갈등을 딛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 나이트클럽 차력쇼 취직을 목표로 사용했던 초능력을 이제야 제대로 쓰기 시작한 그는 통렬한 염력을 발휘하며 한국형 초인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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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최초의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에서 좀비물의 특성을 최대치로 활용해 '헬조선 지옥도'를 그려냈듯, 한국형 초인 히어로 '염력'을 통해 자본 권력이란 막강한 '절대악'의 폐해를 그렸다. 하지만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생존의 위협 속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저항하는 이들에게 석헌이란 판타지적 인물로 대변되는 희망을 선사한다. 이는 한층 더 여유롭고 따스해진 그의 시선을 엿보게 한다. 물론 "너희가 이겼다"고 내뱉는 석헌의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시스템의 힘과 위력을 나타내지만, 그렇기에 석헌의 존재 가치는 더욱 값진 것이 된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자본 권력의 비정상적 폭력에 이용 당하는 공권력의 우매함을 힐난하지 않고 도리어 손을 내미는 것. 위험에 처한 경찰특공대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활을 거는 철거민의 모습을 담아낸 연상호 감독은 지난 용산 참사에서 희생 당한 경찰과 철거민들에 대한 위안이자,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전하고자 한다. 연상호 감독의 이같은 본색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이를 통쾌한 코미디와 풍자로 녹여낸 지점은 더욱 진일보한 그의 세계관을 엿보게 한다.

만화적인 기법으로 표현된 캐릭터의 다채로움 또한 '염력'만의 매력이다. 류승룡은 덥수룩한 머리와 후줄근한 차림, 배 나온 아저씨의 익살과 부채감 가득한 아빠의 성장을 보여줬고 심은경은 억세고 당찬 구석이 있지만 아빠 앞에선 서먹한 딸의 일상적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청년 변호사 박정민은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애쓰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또다른 희망을 엿보게 했다. 얄밉지만 어설픈 구석이 있는 김민재는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무엇보다 홍상무로 첫 악역을 맡은 정유미는 "왓", "뻑"을 외치는 순간 응축된 '미친 매력'을 발산하며 '염력'을 올킬시키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염력' 포스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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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연예계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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