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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 각 분야에 만연한 성범죄, 결국 권력의 문제
2018. 02.10(토) 14:01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성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정재계를 막론하고 방송가와 문단에까지,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잘 감추어져 있었나 싶기도 하다.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용기 있는 고발에 의하여 드러나는 세계는 생각보다 더 험악했다.

‘미투(me too)’ 캠페인의 영향일까. SNS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하는 형식을 취한 이 캠페인은, 피해자임에도 죄를 지은 사람마냥 숨기고 감추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정작 얼굴을 들지 못해야 할 죄인은 따로 있다며 폭로하고 고발할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이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리트윗으로 지지를 표하며 미국 사회에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그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게 했다.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닌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폭이 넓고 깊을 줄이야. 단순히 SNS상이 아니라 용기 있게 앞에 나와 고발하는 모습으로 변형된 우리나라의 ‘미투(me too)’ 캠페인은, 법계에서부터 영화계, 방송가와 문단까지, 거의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동성에게 행한 사건은, 성범죄가 더 이상 서로 다른 성의 대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범죄는 권력이 야기한 문제다. 누군가가 상대방을 억압할 수 있다는 건(그것이 성이든 어떤 것이든), 결국 육체적인 힘이나 사회적인 힘이 더 강하다는 의미, 즉,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 까닭이다. 왜 영화제작자나 감독 혹은 방송국 PD에게 싫은 일을 당했다는 이야긴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없는가. 왜 상사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이야긴 있어도 부하직원 혹은 신입을 상대로 한 고발은 없는가.

생각해보라. 을이 잘못한 갑을 고소하긴 어려워도, 잘못한 을을 향한 갑의 것은 쉬울 텐데, 거의 전적이 없다. 반대의 경우에선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용자가 아닌 이상 쉽사리 입을 열어 고발하지 못한다. 어렵게 들어간 조직에서 미운털이 박힐까, 도태될까 등 뒷일이 무섭기 때문이다. 이는 성범죄가 지극히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정확한 증거다.

모든 세계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 수위가 높고 경계선이 희미한 곳이 예술계, 그 중에서도 상업적인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방송가와 영화계다. 자본 중심의 권력 구도를 바탕으로 예술이란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인 까닭이다. 힘의 억압에 예술이란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답도 없고, 이미지를 사고파는 곳이라 억압당한 사실이 알려져도 문제다. 설사 억압당했다 외치고 울부짖어도 그런 곳인지 모르고 갔냐, 어찌 되었든 원하는 걸 얻지 않았냐는 차가운 반응 속에 이미지만 상할 가능성이 높다.

속물로 매도되는 것보다, 힘들게 시작한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권력에 순응하는 게 낫다는 결말, 그러니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용기 어린 시도로 시작된 ‘미투’ 캠페인이 아니었다면, 그로 인해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다면 묻히고 또 묻히며 상처는 곪고 또 곪았을 터다.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음지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어둡고 험악 하지만, 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권력 자체가 허상이고 착각이니까. 하지만 그 안에 놓이면 자각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토록 많은 성범죄가 일어나 왔는데도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다. 그래서 ‘미투’ 캠페인이 감사하다. 덕분에 숨죽여 울던 이들이 입을 열었고, 구경꾼처럼 관망하던 우리는 ‘성범죄’가 주는 화제성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권력의 민낯을 목격했다. 올바른 형태의 시선을 장착하게 된 것이다.

“지상의 권력이란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때, 특히 힘없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그 권력에 맞서 죽는 걸 겁내지 않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란 작품에 실린 문구다. 각 분야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폭로와 고발들이 단순히 어떤 자극적인 화제로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그들을 위해서, 음지에 놓였거나 놓일 수 있는 우리를 위해서.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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