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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 이윤택의 '유체이탈' 모순 화법,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2018. 02.19(월) 18:34
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연출, 연희단거리패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사과는 하지만 폭행을 하지는 않았다." 공개사과를 하기 위해 취재진 앞에 나선 이윤택 연출은 30분이 채 안되는 짧은 기자회견 동안 계속해 입장을 바꿨다.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성폭행'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즉시 대중의 공분을 샀다.

1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이윤택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이윤택은 최근 벌어진 성 추문 논란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뜻도 에둘러 밝혔다. 하지만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는 계속되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논란을 키웠다.

이윤택 성 추문 논란은 지난 14일 시작됐다. 극단 미인의 대표인 김수희 연출이 자신의 SNS을 통해 과거 극단 연희단거리패 단원 시절 이윤택에게 성기 안마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한 것. 이후 여러 명의 피해자가 추가로 등장했고, 특히 17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윤택에게 2001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는 김보리 씨(가명)라는 피해자까지 등장하며 논란이 커졌다. 김보리 씨의 '미투'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수사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청원 글이 게재돼 신청자 수가 이틀 만에 2만6000명으로 불어났다.

이윤택 연출을 둘러싼 스캔들에 대중들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명 극단을 이끌어 온 이윤택이다. 그의 성 추문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연극계 전체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회견이 예고되자, 이윤택이 연극계 원로로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윤택은 "피해 당사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내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 후배 단원들께도 사과드린다. 내 행동을 제지할 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나 때문에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연극계 원로로서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쟁점인 성폭행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답변이 달라졌다. 이윤택은 "가능하다면 피해자들을 따로 만나 직접 사과를 하겠다"는 말까지 꺼냈었지만, 정작 "실제로 성폭행을 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발뺌했다. "성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성폭행 혐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라는 변명도 이어졌다. "폭력적이거나 물리적인 제압은 없었다. 상호 간 믿고 존중했다" 등, 소위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이윤택 만의 동상이몽일 수 있다. 성폭행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유죄 판결이 날 수 있는 범죄 행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은 상태에서 행위가 이뤄졌어도 이 또한 성폭행으로 성립될 수 있다. 극단 전체의 작품을 연출하고 모든 배우의 기용에 관여하는 이윤택의 존재 자체가 극단의 일개 단원인 피해자에게는 유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윤택은 "필요하다면 법적인 조사를 통해 달게 벌을 받겠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모순이나 다름 없다. 현재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윤택의 성폭력 혐의 중 다수는 공소시효 10년이 훨씬 지난 사건이기에 법적 공방을 따질 수 없기 때문.

성범죄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안고 살아온 피해자들이 숨겨온 아픔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자신의 극단과 지위를 내놓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목소리를 냈고, 이에 힘입어 용기를 낸 수많은 이들이 '미투'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이윤택의 사과는 가볍기 짝이 없었고, 자신의 책임을 덜어내려는 면피성 발언들로 가득했다. 연극계가 매도되지 않길 바란다며 고개 숙인 거장의 '위선'보단 진정성 있는 '사죄'를 원했던 대중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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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연희단거리패 | 이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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