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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뷰] '버닝', 이창동이라 가능한 청춘 미스터리
2018. 05.17(목) 17:51
버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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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장수정 기자] 영화 '버닝'은 얽히고설킨 청춘들의 관계를 통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묘한 분위기를 동력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버닝'은 언뜻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버닝'은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의 사실적인 연기와 뛰어난 미장센 등 영화적 기법을 적극 활용해 점차 그들의 내면을 파고들고, 이에 보는 이들은 정체마저 명확하지 않은 청춘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17일 개봉한 '버닝'(감독 이창동·제작 파인하우스필름)은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국내 작품 중에는 유일하게 이번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밀양' '시' 등을 통해 인간과 삶, 예술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담아낸 이창동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청춘의 표상을 담아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기대케 했다.

'버닝'은 시작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춘들의 모습으로 포문을 연다. 소설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인 종수가 우연히 가게 앞에서 춤을 추는 동네 친구 해미를 만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종수와 해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두 사람은 빠르게 서로의 집까지 방문하는 사이가 되고, 한 평 남짓한 해미의 자취방을 보며 "이만하면 좋다"는 대사를 내뱉는 종수의 모습에서는 지난한 일상을 살아내는 현실적인 청춘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또한 두 사람은 해미의 자취방에서 특정 시간에만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기다리고, 이마저도 어느 큰 건물에 반사돼 들어오는 것이란 점에서 돌파구 없는 청춘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해미가 미스터리한 남자 벤과 함께 등장하고, 종수와 자유분방한 해미, 정체모를 인물 벤이 얽히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버닝'은 세 청춘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묘한 관계를 통해 미스터리함을 조성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주변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남에 살며 외제차를 모는 벤과 파주 한적한 동네로 밀려난 종수, 척박한 현실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해미 등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아래 놓인 청춘들은 마치 현시대를 살아가는 주변인처럼 느껴지고, 이에 영화의 배경을 우리네 현실로 확장시킨다.

이 가운데 종수는 청춘 영화 속 주인공들과는 달리 현실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인물처럼 그려지고, 때문에 종수의 감정을 따라가는 '버닝'은 그가 느끼는 현실의 압박과 무기력함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의 재판 때문에 홀로 파주 집을 지키며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는 종수는 벤과 자신의 다른 처지를 보며 열등감과 동시에 묘한 질투를 느끼지만, 벤을 따라가는 해미를 어쩌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한없이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버닝'은 친절하게 전개되는 영화는 아니다. 이번 영화의 원작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가 그랬듯, 종수와 벤 또는 해미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벤이 말한 쓸모없는, 자신이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비닐하우스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역시 규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 무력하게만 보이던 종수의 내면에 들끓는 분노와 원망 어린 감정들이 표출되는 순간들은 충격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일례로 면접 보러 온 청년들을 숫자로 이름 매기는 데 분노해 자리를 떠나버리는 종수의 모습이나 벤이 태운 비닐하우스를 찾기 위해 아침마다 달리는 종수의 끈질김은 그의 내면에 담긴 알 수 없는 울분을 짐작케 하고, 동시에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의 단면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방패막이는 커녕 종수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기만 하는 어른들과 비닐하우스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침마다 불탄 하우스를 찾아 달리는 종수의 모습이 맞물리고, 이에 종수가 찾아 헤매는 허상과도 같은 비닐하우스가 수수께끼 같은 현실에서 찾고픈 해답이 아닐까 짐작케 한다. 종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비닐하우스에 집착하며 이를 의심하고 또 갈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은 리얼리즘을 표방해 극적인 연출을 자제하는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중요한 장면에서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들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끌어낸다. 더불어 불탄 비닐하우스를 찾아 달리는 종수의 시간은 동틀 무렵으로 담아내고, 이때 안개 깔린 어둑한 배경은 종수의 마음을 대변하며 혼란스러움을 배가시킨다. 이렇듯 '버닝'은 주인공의 감정이나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뛰어난 미장센으로 표현해내 여운을 남긴다. 그렇기에 '버닝'은 수수께끼 같은 전개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정체모를 어떤 것에 소중한 것을 잃은 종수의 복잡한 내면만은 고스란히 느끼게 하고, 영화를 본 뒤 무력함에 휩싸인 종수의 얼굴만은 오롯이 남게 된다.

'버닝'은 그 자체의 만듦새도 훌륭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봤을 때 더욱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등 매 작품마다 치열한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를 구현한 이창동 감독은 이번에는 청춘들의 들끓는 내면을 영화적으로 구현, 또 한 번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다.

[티브이데일리 장수정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버닝' 포스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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