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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이성민,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 [인터뷰]
2018. 08.03(금) 15:04
영화 공작 이성민 인터뷰
영화 공작 이성민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배우로서는 치열한 현장이었고 자괴감에 빠지는 연속이었지만, 결과물을 보며 이런 영화에 참여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고 말하는 이성민. 그는 '공작'의 리명운 역을 통해 강렬하고 압도적인 연기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다. 그럼에도 제 연기가 부끄러웠다며 지극히 겸손인 이성민이다. 그렇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제작 영화사 월광)은 독특한 작품이다.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첩보극이며 장르물임에도 피 튀기는 액션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배우들이 놓인 상황과 그들의 감정 연기만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극 중 북경 주재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을 맡아 묵직하고 진중한 북한 엘리트 면모를 그려낸 이성민은 흑금성을 의심할 땐 미소를 지으면서도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고, 북한 인민들의 안타까운 현실에는 착잡함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인물로 다채로운 감정을 소화했다. 이성민은 윤종빈 감독과는 '군도:민란의 시대'부터 남다른 인연이 있고, 흑금성 사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통해 알게 된 면들에 놀랍기도 했단다. 그리고 리명운이란 인물은 그동안 자신이 보여준 적 없던 모습들이 있어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할 땐 구현이 안 돼 힘들었다며 "민망한 얘기지만 숨 한 번 돌릴 시간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말하길 '공작'은 도무지 편하게 연기할 수 없었다. 간만에 하는 완벽한 정극 연기였다. 이성민은 흑금성과의 첫 대면을 찍을 때 생각했던 대로 연기가 나오질 않아 몹시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통해 구현되지 않아 정말 힘들었다. 첫 촬영이 너무 창피했다. 숨 쉴 틈이 없었다. 자세도 바꿀 수 없었다. 그랬다가 신의 긴장감이 뚝 떨어질 것 같았다. 답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괴감에 빠졌지만 배우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된 후부터 조금은 편해졌단다.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가 웬 엄살이냐 싶겠지만, '공작'은 그 어떤 액션이나 샤우팅 한 번 없이 무엇보다 평온한 상태로 긴장과 리듬, 템포의 고조를 만들어내야 하는 영화였다. 움직임도 크지 않고 제스처도 없는 데다 정적인 상태로 이런 느낌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에게도 극한의 불안감을 줬던 것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 참 연기를 더럽게 했구나 싶어 후회했다"고 걸쭉한 입담과 함께 너털웃음을 짓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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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이 가지지 않은 걸 리명운이 갖고 있기에 이를 연기해내야 한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쉽게 구현되지 않는 상황인 만큼 그동안 자신이 너무 편하고 익숙하게 연기한 것이 아닌가, 너무 즉흥적으로 신들을 찍어왔던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며 밥을 먹는 게 부끄럽다는 자괴감이 빠졌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잔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윤종빈 감독은 이같은 배우들의 고뇌의 순간을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완성본을 보고는 만족스럽고 고맙기도 했다. 또한 처음 연기 공부할 때도 생각이 나더란다. 선배들한테 야단 맞고 눈물 흘리던 시절, 그때는 대본의 어디서 쉬어가야 하고 눈을 깜빡 거려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체크하며 연기하던 시절이었다. 이성민은 '공작'의 리명운을 만나 다시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다며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을 해서 참 다행이다"라고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 이성민의 이면에는 여전히 연기를 갈망하고 지독하게 고뇌하는 치열한 흔적이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리명운을 연기하며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그 인물이 김정일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리명운은 조국을 사랑했고, 북한 주민들을 사랑했다. 그랬기에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한 사람을 만나 끝없이 의심하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민은 그런 리명운을 두고 "리명운이 굉장히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막을 걷고 인간대 인간으로 흑금성을 만났을 땐 본심을 보여주더라. 그 신에선 여리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예민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실제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말을 지도해주던 이에게 리명운 같은 사람이 북한에 존재하느냐고 물었단다. 그 답은 "실제 리명운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이란 체제가 그나마 유지된 게 아닌가 이 영화를 찍으며 알게 됐다. 리명운 같은 사람은 김정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품에서 만난 인물을 통해 이토록 깊고 짙은 교감을 이뤄내는 이성민이다. 그는 '공작'을 찍으며 청춘 시절을 돌아봤다. 공연을 준비하며 힘들어했고 아파하기도 했으며, 무대가 올라가고 끝나고 난 뒤에는 허탈했던 기분들. 그 시절의 기억들을 리명운을 연기하며 다시 떠올렸다. 또한 이런 계기를 준 윤종빈 감독에겐 고마움을 표했다. "배우는 선택되는 거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왜 날 선택했을까'란 생각을 할 때." 이를테면 윤종빈 감독이 '군도:민란의 시대' 당시 제게 군도 무리의 리더이자 정신적 조력자 대호란 인물을 제안했을 때, 카리스마 갖춘 멋있는 배우들이 많은데 왜 자신일까 의문을 가졌다. "아, 배우라는 것이 자신이 가진 이미지로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는 이미지가 있구나. 그럴 때 나에 대해 또 한 번 자각, 내지는 또 하나의 나를 알아가는 순간이 되는 것"이라는 이성민이다.

이전까진 유쾌한 감초 연기를 해왔던 그가 드라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교수 역할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무게감 있는 연기를 할 때의 놀라운 감상이 겹쳐진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또한 이성민의 역량이다. 그럼에도 이성민은 "제가 등심인 줄 알았는데 다른 부위를 요구하는 거다. 안심 꺼내 달라고 할 때 그 순간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고 찰진 비유를 하며 다시금 사람 좋은 너털웃음이다.

결국은 어떤 역할이 주어진다 해도 치열한 고민을 거쳐 감쪽같이 해낼 이성민이었다. 그가 능청스러운 동네 보안관 아저씨가 됐을 때나, 20년 동안 한 번도 들키지 않고 끊임없이 바람을 피운 전설적인 난봉꾼이 됐을 때나, 괴팍하고 외골수처럼 보여도 인자한 속내를 감춰둔 천재적인 의사가 됐을 때나. 이미 관객들은 경험했을 테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단 한번도 믿어 의심치 않는 연기를 보여준 이성민의 치열한 삶의 궤적은 허투루 완성된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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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공작'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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