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넘', 마냥 즐길 수 없는 쇼 [리뷰]
2018. 08.27(월) 15:45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 스틸 컷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 스틸 컷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서커스와 뮤지컬이 만났다. 말만 보면 세상 화려한데 보는 내내 가슴 한 구석에 의문을 남긴다. 과연 이 쇼를 보는 대로 즐겨도 되는 것인지. 관객들의 인권 감수성을 시험대에 올린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이다.

'바넘: 위대한 쇼맨'(연출 구스타보 자작, 이하 '바넘')은 서커스를 지상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든 실존인물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이다. 198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라이선스 작품으로, 현지에서는 공연 당시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상연돼 올리비에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남자 주연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이자 북미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대륙 최초 공연이다.

극은 철저한 쇼 비즈니스 맨 바넘이 신뢰를 중시하는 사업가 아모스 스커더와 만나며 시작한다. 바넘은 아모스에게 아메리칸 뮤지엄을 짓겠다는 기획안을 보여주지만, 아모스는 무일푼에 사기극도 즐거운 쇼라고 치부하는 바넘이 영 못 미덥다. 하지만 바넘은 끈질긴 설득으로 아모스의 사업 파트너가 된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을 기증받는 세계 최초의 크라우드 펀딩을 선보이며 아메리칸 뮤지엄을 짓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바넘은 각종 쇼로 성공한다. 80세 노인 조이스 히스를 160세에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의 유모라 속여 떼 돈을 벌고, 왜소증을 가진 청년 찰스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장군 톰 썸(thumb)이라고 소개해 흥행한다. 또한 수완을 인정받아 정계에도 진출한다. 안정적으로 임기를 마친 뒤엔 그가 사랑하는 쇼 비즈니스 업계로 돌아오며 위대한 쇼맨의 길을 걷는다.

실제로 바넘은 쇼 비즈니스 맨으로 시작해 미국 하원의원까지 되며 정계에도 진출한 인물이다. 그는 극에서처럼 과장되고 자극적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노이즈 마케팅' 개념을 도입시켰다. 또 아메리칸 뮤지엄 건설 사업처럼 '크라우드 펀딩'의 원형이 되는 기부 예매 형태를 최초로 시도했다. 그가 쇼 비즈니스와 PR계의 대부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바넘의 생애에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종 및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희화화로 악명 높았다. 특히 바넘은 왜소증 환자처럼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괴물이라 속여 전시하는 '괴물(freak) 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극 중 등장한 조이스 히스는 실제로 바넘이 1000달러에 구매한 흑인 노예 여성이다. 바넘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늙은 여성으로 쇼에 세웠고, 조이스 히스가 죽자 시신 부검 쇼를 열어 입장료를 받았다.

문제는 바넘에 대한 실존하는 비판이 극에서 철저하게 사라진 점이다. 심지어 극 중 조이스와 톰 썸은 바넘의 열렬한 지지자로 둔갑한다. 이 과정에서 바넘의 사기극과 거짓말들 역시 한 번쯤 속을 수 있는 유쾌한 소동극으로 치부된다. 이 공연에서 '바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사기꾼'이 전부다. 그 역시 범죄이건만, 바넘은 스스로 사기꾼인 데에 자부심을 느끼며 사기를 즐거운 유희로 치부해 도덕적 비판을 피해간다.

더욱 아쉬운 점은 '바넘'에 앞서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위대한 쇼맨'이 동일한 이유로 혹평받았던 것이다. '위대한 쇼맨'은 타이틀 롤을 맡은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바넘의 생애를 지나치게 미화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 평단에게 비판받았다. '바넘'은 '위대한 쇼맨'과 같은 문제를 답습하며 동일안 시험대에 올랐다. 바넘이라는 인물을 향한 균형 잡지 못한 시각이 장르를 막론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린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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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넘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견지한 관객들에게 실존하는 비판을 망각한 구성은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바넘'에 등장하는 온갖 화려한 쇼와 무대 장치의 즐거움을 희석시킨다. 저글링, 불쇼, 객석 위를 나는 앵무새, 링에 매달린 공중 묘기까지 각종 서커스 기예가 등장하지만 그 주체가 바넘인 만큼 결코 완벽히 즐길 수 없다. 그 기저에는 서커스 단원들의 노력을 돈벌이로만 착취했고, 인권을 짓밟았던 바넘의 면모가 도사리고 있다.

이 같은 맹점을 지닌 극이기에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유독 아쉽다. 바넘 역의 박건형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과 짙은 감정으로 객석을 누비며 다소 부족한 가창력을 넘어서는 연기력을 떨친다. 객석의 호응까지 유도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실제 쇼 비즈니스 맨 바넘이 어떻게 서커스 무대를 누볐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김소향과 리사 등 꾀꼬리 같은 음색으로 넘버를 채우는 프리마돈나들의 열연 역시 훌륭하다. 그들의 연기를 뒷받침할 정도로 실존 인물이 마냥 매력적이지만은 않다는 점, 비판적인 실화를 설득력 있게 풀어낼 이야기가 없다는 게 애석할 따름이다.

결국 공연은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쇼에 대한 감동적인 잔상 대신 애타는 궁금증을 남긴다. 어느 때보다 예민한 인권 감수성을 가진 21세기 한국 관객들이 스스로도 사기꾼이라는 바넘의 생애를 무대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로 라이선스 작품을 선보이기에 앞서 이 공연의 기획 단계에서 던졌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저 화려하게 즐길만한 쇼 뮤지컬을 추구했다고 하기엔 바넘의 생애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바넘'은 10월 28일까지 서울시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메이커스 프로덕션, 킹앤아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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