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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의 ‘작금의 조선’이 서글프지 않은 이유 [TV공감]
2018. 09.11(화) 11:43
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일제의 야욕은 그 나마의 낭만이 통하던 나름 보통의 날들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멀쩡하던 담은 허물어지고 단단하게 살아가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앞날에 들이닥칠 사랑을 꿈꾸고 책을 손에 들어야 할 나이에, 어두침침한 현실을 직시하며 손에 총을 쥐고 일어서게 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연출 이응복, 극본 김은숙)이 그리는 ‘작금의 조선’이란 남루하기 짝이 없다. 위정자들은 하나 둘 제 살 길을 찾아 나서기 바쁘고, 믿고 존경할 만한 ‘어르신’은 온갖 모략과 술수로 삶을 빼앗길 따름이다. 왕은 ‘대한’이란 나라의 위엄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타국의 군인이 침략자의 위치에 있단 이유만으로 칼을 차고 궁을 드나드는 게 당시의 현실이더라.

이야기가 여기서 그친다면, 서글픈 약소국의 역사만 되짚는, 힘없는 연민과 실체 없는 분노에만 빠져 있을 뿐이었을 터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강점은,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맞닥뜨리는 각각의 인물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사라졌을 개개인, 일명 ‘민초’들을 화면 안으로 소생시켜 그들의 결코 비루하지 않았던 삶의 모습들을 담아냈다는 데 있다.

일왕 다음으로 유명한 귀족 집안의 자제이자, 일본군 대좌인 모리 타카시(김남희)는 친일파 이완익(김의성)과의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조선의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의병의 자식은 또 다시 의병이 된다고, 일제의 원활한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 이러한 조선의 민족성 먼저 말살시켜야 한다는 것. 정작 조선인인 완익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이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가득 찬 침략자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미스터 션샤인’에선 부모 혹은 조부 이상의 조상이 의병인 인물들이 몇 등장하는데 고애신(김태리)이 그렇고, 포수 장승구(최무성)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완익을 아버지로 둔 쿠도 히나(김민정), 기회주의자인 아버지를 둔 김희성(변요한),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난 구동매(유연석) 등등을 비롯하여 귀천이 낮은 사람들을 데리고 의병단을 꾸린 황은산(김갑수)까지, 이들은 갖가지 사정으로, 그러니까 사랑에 빠져서 혹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혹은 개인적인 원한 등등의 이유로 어두운 시대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

모리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의 자식들은(만약 식솔을 남긴다면) 후에 의병, 독립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피는 못 속여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배운 게 이거여서다. 의로운 가치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의 힘은 강하고 그들의 삶은 언제 어디서고 헛되지 않으리란 확신, 예쁜 꽃으로 피어 한철 즐기다 가면 참 좋겠지만 만약 불꽃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또한 아름답게 여길 수 있는 담대함, 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비루하지 않는 삶을 선택할 힘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래서 ‘미스터 션샤인’의 ‘작금의 조선’은 슬프고 참혹하지만,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기개가 넘치고 웅숭깊은 자존감으로 가득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삶을 내던지는 민초라 불리는 백성들, 개개인의 역사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이다. 의뭉스러운 부분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드라마로서, 할 수 있는 소임은 다 했다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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