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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각자의 자리에서 맞이하는 각자의 싸움 [TV공감]
2018. 09.12(수) 18:00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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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범의 무서움을 아는 개는 덤빌 생각조차 하지 않으나, 아직 범을 경험해보지 못한 강아지들은 이빨의 사나움이며 맹수의 눈빛이며 상관하지 않고 덤빈다. 흔히 어리석고 무모한 도전 혹은 덤빔을 하는 이들에게, 으레 어른들이 건네 왔던, 지혜라면 지혜의 언어라 할 수 있겠다.

구승효(조승우)는 안다. 거대 기업의 총수, 명령 하나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려도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는 총수 일가의 무서움을. 선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상적인 생각만으론 절대 이기지 못할 대상이며 무고한 희생자만 발생할 수 있다, 그의 고민은 이러한 두려움을 잘 아는 데서 시작된다.

종영한 JTBC 드라마 ‘라이프’(연출 홍종찬‧임현욱 극본 이수연)는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사는 의사들의 터전, 병원을 배경으로 본질과 비본질의 싸움을 그린 이야기다. 돈을 좀 더 얻을 수 있다면,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세상 못지않은 치열함을 보이는 의사들의 모습은 어느 직업이나 별반 다를 건 없구나, 의사도 단지 직업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프’에는 뚜렷한 악인도 뚜렷한 선인도 없다. 각자가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그게 본질이든 아니든)를 쫓는 자가 있을 따름이다. 화정그룹이 자신이 사들인 병원 운영을 위해 보낸 사장 구승효는 병원의 적자를 두고만 볼 수 없다. 의사를 흩든, 외부 사업을 끌어들이든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 나가려 하는데,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경영은 수익을 내야 하는 거니까.

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곳이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몇몇 의사들에게, 화정그룹의 대리인 구승효는 싸워서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안다. 단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거지, 보면 볼수록 사리분별이 바르고 인간에 대한 배려심이 깊으며 수용성까지 좋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민영화되는 과정을 막고 싶다면, 시대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고 싶다면, 병원은 수익을 내거나 가치에 입각한 투자를 얻어 와야 한다. 자체적으로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 경영인 구승효가 끊임없이 수익을 내려고 노력한 행위는, 그의 자리에서 병원을 지키기 위해, ‘라이프’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며 그만이 가능한 그의 몫이다. 의사들의 몫은 본질을 잃지 않으며 주어진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구승효에게 의사들의 덤빔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그룹의 힘을 모르는 하룻강아지와 같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몇몇 의사 안에 내재된 욕망의 발견은 똥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 차라리 대놓고 이익을 쫓는 게 낫지, 그로서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병원의 본질, ‘라이프’를 지키겠다며 싸우는 의사들의 존재가 그로 하여금 두려움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혹 이 두려움은 허상이 아닐까, 저들이라면 이 허상을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하룻강아지가 범을 상대하여 물리칠 날이 반드시 오지 않을까. 물론 또 다른 두려움의 대상이 등장하겠지만 물리친 경험, 이 강력한 경험의 힘이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맞서게 할 테고. 그래서 구승효는 의사들의 덤빔에, 자기 나름의 동조를 한다. 그 또한 여태 자신의 자리에서 두려움에 맞서고 또 맞서 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비록 해임이었지만.

결국 ‘라이프’, 즉, ‘삶’이란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각자의 싸움이다. 싸우는 배경과 직업군만 다를 따름, 각자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를 위해 혹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어진 두려움에 타협하든 맞서든, 각자의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동일하다. 보통의 우리들에게 다소 어려운 병원운영과 민영화란 소재로 그린 이야기임에도, 드라마 ‘라이프’가 순간순간의 공감을 자아내며 우리로 하여금 어떤 덤빔의 정신, 싸움의 정신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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