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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우스', 40년이 지나도 활화산 같은 정열 [리뷰]
2018. 10.01(월) 14:19
연극 에쿠우스 속 알런 역의 전박찬과 말을 연기한 배우들
연극 에쿠우스 속 알런 역의 전박찬과 말을 연기한 배우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소년의 순수함으로 데일 듯 뜨거운 관능적인 욕망을 풀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기는커녕 폭발할 것 같은 정열을 가진 연극 '에쿠우스(EQUUS)'다.

9월 22일 개막한 '에쿠우스'(연출 이한승)는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극은 1975년 극단 실험극장에 의해 국내 초연돼 43년 동안 불멸의 고전으로 사랑받았다. 이번 무대는 한국 최장수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58주년 기념 공연으로, 연극 특유의 생동감에 극단의 노하우가 더해져 안정감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극은 라틴어로 말(EQUUS)을 뜻하는 제목답게 영국을 배경으로 17세 소년 알런이 마을 마구간에 있는 말 7마리의 눈을 찌른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의 기행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사형을 주장한다. 하지만 판사 헤스터는 평소 친분 있던 정신과 전문의 다이사트에게 알런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부탁한다. 알런이 누구보다 내면의 고통에 떨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이사트는 알런을 만나 대화, 최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담을 진행한다. 다이사트를 밀어내던 알런은 차츰 마음을 열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다이사트는 알런이 엄격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 도라와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인 아버지 프랭크 사이에서 오랜 시간 억눌린 채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알런에게 말은 자신과 동일시 되는 존재다. 인간에 의해 재갈이 물린 말들에게서 부모에 의해 욕망과 자유가 거세된 자신의 삶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말은 억압 속에서도 탄탄한 근육으로 질주라는 본능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명마 너제트는 탐스러운 갈기와 매혹적인 자태로 단번에 알런을 매료시킨다. 이에 알런은 말들을 동경하다 못해 숭배한다. 그는 모두가 잠든 야밤에 알몸으로 너제트를 타고 하하의 들판을 질주하며 한 없는 자유와 쾌감을 만끽한다.

하지만 알런이 소녀 질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말들은 또 다른 억압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질과 마구간에서 사랑을 나누려던 때, 알런은 불현듯 말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질책한다고 느낀다. 결국 그는 말들의 눈을 찔러 성적 욕망을 분출하려던 순간을 간직한다. 억눌린 욕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와 동경했던 말을 제 손으로 다치게 했다는 자책감, 그 사이에서 알런은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다이사트는 역설적이게도 알런을 치료하려다 그에게 빠져든다. 그는 의사로서 누구보다 정제된 삶을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으로서도 아내와 자식 한 명 낳지 못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다이사트는 알런이 말과 함께 겪은 폭발력 있는 자유와 정열을 동경한다. 끝내 그는 알런을 치료하지만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창조할 수는 없다"며 괴로움에 발버둥 친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에쿠우스'는 다이사트의 상담을 통해 알런과 말들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처럼 풀어낸다. 알런의 기억과 동시에 등장하는 말들은 이 공연의 백미다. 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맨몸에 최소한의 가죽으로 근육질 몸매를 감싸고, 얼굴마저 말 가면으로 가린 채 준마의 모습을 연기한다. 인간의 육체인 두 발로 네 발 달린 말들의 걸음걸이와 모양을 연기하는 모습은 자못 관능적이고 경이롭다.

그 중에서도 너제트 역의 배은규 배우는 알런이 매료된 명마의 모습을 걸출하게 표현한다. 그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너제트의 몸처럼 부풀려지고 꼿꼿했던 허리를 말 모가지처럼 숙여 알런에게 다가가는 순간 관객은 "에쿠우스"를 연호하는 알런에 빙의된다. 그저 엄격하게 관리된 몸매가 아닌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표현력이 객석을 감탄으로 물들인다.

이 모든 순간에 깊이 빠져든 알런 전박찬의 연기도 일품이다. 2014년과 이듬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알런을 연기했던 그는 이번에 한층 더 노련해진 감정으로 관객을 밀고 당긴다. CM송을 부르며 다이사트의 상담을 거부할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17세 소년의 엉뚱함으로, 너제트와 밀착해 자위에 가까운 행위를 보여줄 땐 성에 눈 뜬 청년의 관능을 보여주는 것. 원작에 충실해 질과의 관계에서 전라 노출 신을 선보일 때에도 야설적이기보다는 본능에 눈 뜬 알런의 희열을 느끼게 하며 균형을 잡는다.

손병호 또한 억눌리고 세상에 찌든 다이사트를 안정적으로 표현한다. 음색부터 따뜻하고 정의로운 차유경의 헤스터, 언제나 솔직하게 알런에게 다가가는 질 역의 심은우, 아들을 사랑하지만 완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 프랭크 역의 유정기와 어머니 도라 역의 이양숙. 모두 안정감 있는 연기로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제단처럼 높이 오른 계단과 사각의 무대는 투박한 나무 의자를 제외하면 어떤 도구도 없어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연이 때로는 마임으로, 때로는 무용 같은 몸짓으로 텅 빈 무대를 채운다. 관객은 오직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로 '에쿠우스'의 욕망과 쾌감에 빠져들 뿐이다.

'에쿠우스'는 11월 18일까지 서울시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극단 실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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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에쿠우스 | 연극 | 전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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