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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 그 서늘한 공포와 경각심 [씨네뷰]
2018. 10.03(수) 13:01
영화 암수살인 리뷰
영화 암수살인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신고되지 않았기에 피해자도 발견된 바 없고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던, 수면 아래 깊숙이 묻혀있던 암수살인(暗數殺人). 실제 부산에서 벌어졌던 이 끔찍한 범죄 실화를 다루는 영화 '암수살인'은 기존 장르물과는 궤를 달리한다. 장르 영화의 유혹적인 클리셰를 버리고 진정성을 택한 영화의 여운은 그렇기에 더욱 열렬하게 휘몰아친다.

10월 3일 개봉된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제작 필름295)은 지난 2011년 부산에서 벌어진 실제 암수 범죄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극은 살인마의 암수 범죄 자백을 듣고 사건을 파헤치는 집요한 형사 형민(김윤석)과,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문 형사를 보며 이를 마치 게임처럼 즐기는 지능형 살인마 강태오(주지윤)의 심리전을 그려낸다.

실화사건을 다루는 만큼 극은 철저하게 오락거리를 배제했고, 기존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벗어난다. 이를테면 범죄 수사물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션적 동선이 아닌, 사건 현장과 수사 동선을 다큐멘터리적 태도로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추격하는 스릴을 택하기보다, 버젓이 범인이 흘리는 단서만으로 사건의 퍼즐을 맞추고 피해자를 찾아야 하는 절박함을 강조한다. 이같은 역방향 구조와 본질에 대한 접근법은 장르물의 통념을 깨는 이색적인 흐름이다.

피해 사건을 그리는 방식 또한 잔혹한 범죄 묘사 대신 야산, 뒷골목, 갈대숲 등 공간감을 디테일하게 부각하며 서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식이다. 피해자들을 그저 도구와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피해자 자체에 초점을 맞춘 섬세한 연출 방식도 눈에 띈다. 그렇기에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지의 소재 '암수살인'에 대한 서늘한 공포와 경각심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인물 묘사 역시 과장됨 없이 지극히 현실적임에도 캐릭터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이는 성격을 드러내는 부차적인 설정들이 워낙 디테일한 까닭이다.

강태오는 학술적으로도 감정이 불가능한 살인마다. 잔뜩 들떠서 제 살육 방식을 거들먹거리며 떠들어대다가도 순간 돌변해 찰나의 광기를 내뿜는 간극을 쉼 없이 오간다. 수감 생활 중에도 감옥 안의 불교 서적과 법학 서적들을 탐독하는 모습은 굉장히 철두철미한 지능적 살인마의 면모를 보이지만, 색이 변하는 선글라스를 끼고 멍한 미소를 짓는 표정에선 유아기적 보호본능을 드러낸다.

이처럼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아를 포기하고 본능적으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욕구를 보이는 인물이다. 주지훈은 이런 인물이 발산하는 공포감을 거친 사투리, 삭발 차림과 특유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구현해낸다. 주지훈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강렬하고 놀라운 변신이며, 가히 절정에 오른 연기력이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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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김윤석은 톤이 낮다. 외양 또한 기존 형사 캐릭터와는 다르다. 부유한 집안 덕에 재정적 여유가 넘쳐 고급차량과 옷차림을 고수하고, 침착하고 지성적인 엘리트 마약수사대 출신 형사의 이지적 모습이 부각된다. 이토록 무채색에 가까운 인물이며 겉으론 미치광이 살인마가 주도하는 살인자백 심리전에서 온갖 조롱을 당하며 휘둘리는 듯 보인다. 실상은 상대의 도발을 이끌어내고 숨은 패를 읽는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 그러나 이 지독한 심리전의 목적이 개인의 명예나 승부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형민이란 인물에 매료되게 만든다.

김윤석은 실적도 되지 않는 무모한 수사를 강행하다 내리 좌천을 당하고 살인마의 농간에 기꺼이 놀아나면서도, 피해자를 향한 연민으로 묵묵하게 사건을 좇는 인물의 우직함을 덤덤하게 담아낸다. 상대의 광기와 도발에도 그저 기가 차 헛웃음을 짓는 정도로 그치는 인물이 내면의 차분하고 고요한 분노를 응축된 감정으로 드러낼 때, 새삼 김윤석의 내공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특히 피해자를 찾지 못하고 수사가 난항에 빠졌을 때 "어데있노 니"를 읊조리며 탄식을 내뱉는 순간, 그 절제된 표정과 눈빛에 담긴 허망함의 여운은 상당하다. 마지막까지 일관된 캐릭터의 기조는, 이 시대 파수꾼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암수살인'은 장르의 전형성을 탈피한 캐릭터들의 밀도 높은 심리전으로 새로운 통념의 범죄 수사물이란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과 목적을 뚜렷하게 전하는 방식이다.

결국 '암수살인'이란 개개인의 물질적 이익만을 중시 여기는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에 대한 공포이자, 무관심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지킨 한 사람이 일으킨 변화는 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다. 이같은 일말의 희망과 피해자들을 향해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한 '암수살인'의 진정성은 결다른 수작을 완성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암수살인' 포스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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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영화계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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