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차지연, 쉼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인터뷰]
2018. 10.08(월) 08:43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차지연 인터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차지연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뮤지컬 배우 차지연의 행보는 매번 놀랍다. 대작의 주인공을 맡아 카리스마를 뽐내다가도 갑자기 대학로 소극장 연극 무대로 돌아가 애절한 신파를 그려낸다. 종잡을 수 없는 행보, 다음 걸음을 향한 호기심과 기대가 곧 '배우의 미덕'이라 믿는다는 차지연을 만났다.

지난 8월 11일 개막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연출 김태형)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여인 프란체스카와 사진 촬영을 위해 마을에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의 이룰 수 없는 가슴 시린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차지연은 주인공 프란체스카 역을 맡았다.

2006년 뮤지컬 '라이온킹'을 통해 데뷔한 차지연은 국내 뮤지컬 계에서 손에 꼽히는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력을 동시에 지닌 그는 공연계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은데 이어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KBS2 '불후의 명곡'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대중들에게도 얼굴을 알리는 등 확고부동한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왔다. 특히 '복면가왕'에서는 '여전사 캣츠걸'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0주 간 대장정을 펼치며 가왕으로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차지연이 연기하는 프란체스카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에서 미군 남편과의 결혼을 동아줄 삼아 미국으로 온 중년의 이민자로, 주부의 일상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던 중 우연히 마주친 로버트와 사랑을 나누며 잃었던 '나'를 되찾게 되는 인물이다.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삶에서 '사고'와도 같은 로버트와의 만남이 불러일으킨 변화들을 섬세하게 연기해야 하는 배역이다.

때문에 차지연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관객들에게 기대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평소 강렬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배역과 노래를 주로 맡아온 차지연의 이미지와 프란체스카의 이미지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허스키한 목소리와 파워 보컬을 강점으로 내세우던 차지연이기에, 서정적인 넘버가 주를 이루는 작품에 출연한다는 점 또한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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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 역시 출연 직전까지 같은 이유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겁이 나고 무서워 여러 번 출연을 고사했지만 작품이 끝없이 나를 쫓아오는 느낌이었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에는 작품과 정면으로 마주해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는 그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성악 발성을 내지 못할까 두려워 피하기만 했던 넘버들인데, 막상 접하고 나니 너무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며 말문을 연 차지연은 "대본 역시 일부러 캐릭터에 힘을 주거나 각 잡지 않아도, 그저 상황이 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완벽하게 잘 짜인 텍스트였다"고 말했다.

차지연은 완벽한 대본을 따라 프란체스카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가정을 꾸린 여인의 로맨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불륜'을 소재로 한 극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극이지만, 관객들이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프란체스카의 전사를 파고들었다.

특히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현실에 부대끼며 살았을 이방인 프란체스카가 느꼈을 공허함과 외로움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것에 집중했다. 가장 큰 숙제는 로버트를 만난 프란체스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동화되고, 그가 곧 자신과 똑같은 유형의 사람임을 알아채는 과정을 자연스레 스며들듯 표현해 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차지연은 "개막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숙제"라며 "매 회차 다른 프란체스카의 감정을 잡아내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흘러가는 한 회, 한 회가 모두 아쉽다"고 말했다.

차지연은 "이처럼 완성도 높은 음악과 텍스트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 보니, 요즘은 내가 배우로서 정말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무엇보다도 평소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무대 위 차지연이 아닌, 여자이자 아내, 엄마로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인간 차지연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어 기뻤다는 그다.

"센 캐릭터를 연기할 때마다 힘이 들더라고요. 원래 차지연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자신감 넘치는 모습 뒤에는 극도의 무서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제가 있어요. 매번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가지고, 불안에 떨고 엉엉 울면서 첫 공연에 임한 뒤에는 제 무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죠. 쉬운 작품, 쉬운 무대 하나 없이 모든 순간들이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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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선 지 올해로 13년째, 차지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가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곳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의 모든 가치관, 방향성,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이 무대 위 캐릭터에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스스로 더욱 좋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르게 살 수 있기를 고민하며 산다는 그다. 이는 두 돌을 앞둔 아들의 엄마 차지연, 배우 차지연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배우'로서의 차지연은 하나가 무대 위에서 도태되지 않고 치열하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한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전작과 비슷한 작품을 연달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만의 원칙으로 삼았다. 관객들에게 지루하지 않은 배우로 남기 위한 나름의 목표이자, 그가 '위키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마법사였다가, '서편제'의 한 많은 송화였다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 프란체스카로 변신한 이유다.

차기작인 뮤지컬 '더데빌'에서는 남자 배우들만 도전하던 엑스 역할에 도전할 예정이다. 지난해 연말 공연한 '광화문연가'에서 배우 정성화와 같은 역할을 함께 맡아 흔치 않은 혼성 캐스팅을 선보인 지 약 1년 만이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동서양에 구애받지 않는 오롯한 배우이고 싶다"는 차지연의 신념이 녹아있는 선택이다. 차지연은 자신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가 배우로서의 신념을 지키는 한 걸음이 되기를, 나아가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신인 배우들의 길을 터주는 역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막힘없이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쉼 없이 계속될 차지연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였다.

"유명해지거나 몸값을 올리는 일 같은 것에 욕심이 하나도 없어요. 배우로서 계속해 무대에 설 수 있는 지금,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은 지금의 생활에 그저 감사할 뿐이죠. 다가올 40대 역시 두렵기는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크죠. 지금처럼 계속해 배우로서 멋지게, 제 몫을 하며 늙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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