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룸' 김설진 "강요하지 않아요" [인터뷰]
2018. 10.27(토) 11:43
현대무용가 김설진
현대무용가 김설진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현대무용가 김설진은 모두의 의견에 귀를 열고 대화하고자 애쓴다. 역설적이게도 먼저 소통하면서 자신이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용수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절대 자신의 표현과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를 만나봤다.

11월 8일 개막하는 '더 룸(The Room)'은 김설진과 국립극장(극장장 김철호) 전속 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김상덕)의 협업으로 만든 신작이다. 김설진은 이번 작품에서 안무가로서 무대를 지휘했다. 현대무용의 성지로 꼽히는 벨기에에서도 대표적인 무용단 피핑 톰에서 활동한 김설진이기에 그가 한국 무용을 선보이는 국립무용단과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대의 콘셉트는 제목처럼 한 방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람들에 대해 공유되는 '방'이라는 공간은 김설진이 오랫동안 흥미를 가졌던 소재다. "방을 소재로 한 작품은 예전에 유럽에 있을 때 솔로 작품이 처음이었다"던 그는 "투어를 다니면서 여러 호텔 방들에 있었다. 그때는 방에서 겪은 악몽에 대한 이야기, 내가 오기 전에 이 호텔 방에 묵었던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솔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했다.

솔로 작품 이후에도 김설진은 '방'이라는 소재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다. 솔로 작품에 한계를 느낀 그는 현재 예술감독으로 있는 국내 현대무용단 무버 단원들과 같은 소재로 군무를 만들어 보려 했다. 그러나 공연 일주일 전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의 만류로 '방(Room)' 초연에 오르지 못했다. 김설진은 그때에 대한 미련과 숙제가 남았다는 생각에 '더 룸'에 더욱 공들여 작품을 완성했다.

작업을 구체화하면서 방의 의미도 확대됐다. 처음에는 한 개인의 공간이라는 의미였는데 나아가 누군가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 방을 바라본 것이다. 그는 "마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을 나서면서 '아, 차키 두고 나왔는데', '뭐 두고 나왔는데'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 않나. 삶을 떠날 때도 '맞다. 아직 못한 게 있는데'하고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그가 선보일 방에 들어갈 구성원을 선별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김현숙, 윤성철, 김미애, 김은영, 문지애, 황용천, 박소영, 최호종 등 8명의 국립무용단 소속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무용단의 훈련장 김미애를 비롯해 국립무용단의 최고참 단원인 승무 전수자 김현숙부터 최연소 단원인 최호종까지, 출연진은 연령과 성별, 경력 어느 것으로도 묶이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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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과정도 남달랐다. 당초 김설진은 워크숍을 통해 출연진을 선발하려 했다. 국립무용단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단원들의 실력은 익히 신뢰하고 있던 만큼 자신과 잘 맞을 법한 사람들과 작업하려 했기 때문. 그러나 국립무용단 측에서 워크숍을 거절했다. 결국 김설진은 50여 명의 단원들이 한데 모여 한국 무용하는 것을 보며 매 순간을 관찰했다. 그는 "그분들이 실수할 때, 뒤에서 앉아서 쉴 때, 순서를 끝나고 돌아볼 때, 평소에 하는 습관들이 포착되는 순간을 봤다. 그런 순간들이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몇 분 계셨다. '저 사람은 어떤 이야기가 있길래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궁금해지는 사람을 뽑는 게 제 기준이었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설진은 '더 룸'에서 자신의 이야기만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에 "제 이야기를 강요하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대에 녹이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고 했다. 김설진은 "물론 들어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 이야기와 그분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 했다"며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출연진을 선발한 이유를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재의 출연진에 누구보다 만족했다. "단원들도 '이런 조합은 처음이다', '전례 없던 조합'이라고 하더라"라며 웃은 김설진은 "조합이 굉장히 잘 됐다"고 자부했다. 또한 "출연진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영화 같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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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공연의 연출과도 같은 안무가에게 본인이 표현하려는 것 외에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김설진은 여전히 왕성하는 무용수인 만큼 무대 위에서 직접 표현하고 싶다는 표현 욕구도 엄청날 터였다. 그러나 김설진은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에서 개인적인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그는 "정말 운이 좋게 피핑 톰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무대에 섰고 정말 많은, 행복한 경험을 했다. 무용수로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본 것 같다"며 "무용수로서의 욕심은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일례로 전에는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웃으면서 "진짜 잘한다"는 감탄과 함께 박수를 보낸단다.

대신 김설진에게는 또 다른 원칙이 생겼다.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정말 예전의 나로 돌아가서 생각해봤다. 현대무용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춤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이어 "'춤추는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표를 가졌다"며 '더 룸'의 출연진을 비롯해 최근 작업에서 무용수들과 테라피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반영하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실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가장 컸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이 무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여파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 김설진은 "우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관객이 어떻게 이해하나"라며 "적어도 그룹 안에서는 스스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봤다. 결과물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갖는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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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김설진은 자신을 어떤 무용수, 혹은 안무가로 규정하지 않았다. 피핑 톰 소속의 세계적인 무용가, 한국의 현대무용단 무버 예술감독, 케이블TV Mnet 예능 프로그램 '댄싱 9 시즌2' 우승자, KBS2 수목드라마 '흑기사'에 출연한 배우. 김설진은 그를 가리키는 여러 수식어들에 대해 초연했다. 자신만의 해석도 표현도 수식어도 강요하지 않는 김설진이기에 그의 무대엔 끝이 없었다.

"제가 원한다고 사람들이 그 모습으로 기억해주진 않을 것 같아요. 아마 죽고 나서야 변함없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텐데 그 전까진 계속 바뀌겠죠? 연기를 하고, 춤을 추고, 책도 쓰고, 그림을 그려도 저는 다 똑같아요. 그저 저를 나눈 카테고리가 달라서 다르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김설진이라는 사람이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어떻게든 풀어낼 거예요. 그렇게 배출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프거든요."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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