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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아름답지만 지울 수 없는 기시감 [리뷰]
2018. 11.01(목) 15:37
뮤지컬 랭보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정동화
뮤지컬 랭보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정동화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음악은 아름답고 대사도 유려하며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도 지울 수 없다. 반항적인 시인을 그렸지만 정작 본 작품은 반항기를 잃은 뮤지컬 '랭보'다.

10월 23일 개막한 '랭보'(연출 성종완)는 실존했던 프랑스 시인 장 아르튀르 랭보(Jean Arthur Rimbaud)의 생애를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랭보와 그의 연인이자 시 세계를 함께 한 시인 폴 마리 베를렌느(Paul Marie Verlaine), 어린 시절부터 랭보와 함께 한 친구 에르네스트 들라에(Ernest Delahaye)의 이야기를 통해 랭보의 시와 생애를 노래한다.

극은 들라에와 베를렌느가 죽은 랭보의 마지막 시를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여행 내내 랭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다. 그 안에서 랭보는 불과 7세에 소설을 쓰며 독창적인 글로 자신을 표현한 천재이자 17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기성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한 반항아다.

특히 랭보는 누구보다 시와 시인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고민한 인물이다. 그는 현대시의 창시자라 불리는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또한 헐벗고 굶주릴지언정 시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시인이란 모든 제약과 통제를 넘어 사물과 시대를 관찰하는 투시자(voyant)라고 주장한다.

신념이 굳센만큼 저항도 거세다. 파리 주류 시인들은 랭보를 외면하고 가정을 버리고 랭보를 선택한 베를렌느도 비판한다. 그럴수록 랭보와 베를렌느는 영국과 벨기에 등 유럽 전역을 떠돌며 시에 몰두한다. 하지만 궁핍함을 못 견디고 갈등한 끝에 베를렌느가 랭보의 손을 총으로 쏘는 '권총 사건'으로 파국을 맞는다. 혼자 된 랭보가 죽기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 남겼다는 마지막 시, 랭보의 가장 걸작이라 짐작되는 미지의 작품이 극의 종착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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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답게, '랭보'는 오프닝부터 피날레까지 실제 시어를 노랫말로 적극 활용한다. 베를렌느의 동명 시에서 착안된 오프닝 곡 '내 마음에 내리는 눈물'부터 랭보의 작품을 토대로 한 피날레 곡 '영원'까지 우수에 젖은 시어들이 청중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기억 속 랭보의 첫 등장을 알리는 '취한 배', 랭보가 걸음마 수준도 안 된다며 기성 문단을 조롱하는 '앉은뱅이들', 가장 담백한 언어로 최상의 다정함을 노래한 베를렌느의 '초록' 등 랭보와 베를렌느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무대 위에 흐른다. 작품 특성상 중독성보다 서정성을 강조한 넘버들이 주를 이루고 창작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 번만 들어도 맴돌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배우들의 활약도 눈여겨볼만하다. 타이틀 롤 랭보 역의 정동화는 시 밖에 모르는 저돌적인 소년미를 자랑한다. 안정적인 발성, 정확한 발음, 화려한 무대 매너 등 출중한 실력에서 기반한 자신감이 그의 랭보를 더욱 빛나게 한다. 무대 층계를 뛰어넘거나 베를렌느에게 업히는 것은 물론, 소품이 잘못 전달된 실수조차 애드리브로 보일 정도로 안정감을 자랑한다. 김종구와 정휘도 랭보를 향한 사랑과 우정을 특유의 호소력 짙은 음색과 연기로 풀어내며 몰입을 돕는다.

다만 문제는 기시감이다. 아무리 유려한 시와 노랫말, 선율, 출중한 연기가 등장하더라도 '랭보'를 에워싸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대학로 소극장에서 '랭보'와 같은 문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거 등장한 바 있다. 추리소설 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인터뷰', 시인 이상의 내면을 분열된 자아로 표현한 '스모크', 경성 시대 문인들의 모임 구인회(九人會)에서 착안한 '팬레터' 등이다. 등장인물이 문인이라는 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혹은 사건에서 시작하는 구성, 등장인물들이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전개 방식,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브로맨스 코드까지 모두 유사하다.

등장 직후 문단에 경종을 울렸던 랭보처럼 그를 다룬 '랭보'의 작법도 전형을 탈피했다면 어땠을까. 시인의 생애를 담았지만 결코 닮지는 못한 작품의 한계가 유독 아쉽다. 기시감을 친근함으로 승화시킬지, 진부함으로 치부할지는 관객의 선택이다.

'랭보'는 2019년 1월 13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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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랭보 | 뮤지컬 | 정동화 김종구 정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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