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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안평대군·김종서·박팽년 사망 이유? '조선판 데스노트'(서프라이즈)
2019. 01.13(일) 11:31
서프라이즈 몽유도원도 안평대군
서프라이즈 몽유도원도 안평대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서프라이즈'에서 몽유도원도에 대해 다뤘다.

13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죽음을 부르는 그림' 편이 전파를 탔다.

1453년 조선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그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왕위를 뺏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

1453년 11월 10일 단종 편에 섰던 좌의정 김종서가 철퇴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안평대군이 역모죄로 사사됐다. 1456년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하던 박팽년이 고문을 당하는 도중 옥중에서 사망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뜻밖에도 그 후 사람들 사이에서 한폭의 그림이 그들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그림은 바로 몽유도원도였다.

조선 회화사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의 작품이었다. 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묵담채화로 담은 몽유도원도는 조선 회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1418년 조선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안평대군은 총명하고 감수성이 풍부해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무릉동원을 노니는 꿈을 꾼 안평대군은 꿈에서 본 도원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이에 안평대군은 당대 최고 화가 안견을 불로 꿈속 무릉도원을 그리게 했다. 안견은 사흘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몽유도원도에 안평대군, 김종서, 박팽년 등 죽은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 완성 후 발문을 남겼다. 당시 몽유도원도를 보고 감탄한 문인들이 직접 찬문을 써올렸는데, 찬문을 남긴 인물들은 총 21명으로 그 길이가 20m가 넘었다.

이렇듯 몽유도원도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수양대군의 손에 목숨을 잃자 몽유도원도는 죽음을 부르는 그림으로 불리게 됐다.

동부승지 성삼문이 역모죄로 처형되는데, 성상문도 몽유도원의 찬문을 쓴 21명 중 하나였다. 몽유도원도에 이름을 쓴 사람들이 차례로 죽으면서 조선판 살생부가 된 몽유도원도.

현대에 들어 일부 학자들은 몽유도원도가 안편대군의 야망이 반영된 그림이라며 찬문은 안평대군에 대한 사대부들의 충성 맹세로 그들의 죽음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숙주를 포함해 몽유도원도에 찬문을 남긴 몇몇은 수양대군의 편에 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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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몽유도원도 | 서프라이즈 | 안평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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