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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나이듦의 미학 [TV공감]
2019. 03.15(금) 09:25
눈이 부시게
눈이 부시게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눈이 부시게 반짝이던 시간들을 하루씩 잃어버려야 한다는 상실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건,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빈약 하고 비루한 지를 깨닫는 일인 동시에 사람이란 존재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오롯한 힘을 알게 되는 일이었다. 늙어버린 혜자의 삶은,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지난날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속에서 그저 여전히 반짝이는 젊은 생명일 뿐이었다.

젊음이 죽음에 점점 가까워질 때, 그러니까 젊음이 자신의 한계를 점점 인식해갈 때, 우리는 나이가 들어간다고 한다. 어떤 한계나 상실할 것들을 생각하기보다 더 큰 가능성과 수많은 설렘, 기대 등을 품고 있을 시절이 젊음이어서 늙어가는 모든 존재들이 지난 젊음의 나날을 흠모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 김수진)에서 늙은 혜자(김혜자)가 낡은 머리에서 나마 젊은 혜자(한지민)를 되살린 이유도 동일하지 않았을까.

‘젊은 혜자’의 마음으로 ‘늙은 혜자’를 살아가는 ‘혜자’는 분명 늙었지만 늙지 않았다. 으레 하는 말들처럼, 마음만은 스무 살이란, 마음은 젊다는 이야기가 그녀에겐 실제적 상황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삶을 마주 대하는 그녀의 시선은 보통의 노인들과 다르다. 스물 다섯 혜자의 시선과 생각으로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맞닥뜨리며, 줄어든 가능성으로 주눅 들기보다 나이가 들어서 혹은 몸이 낡아서 할 수 있는 능력들을 발견하고 극대화 시킨다.

특히 싸구려 건강식품을 파는 곳이자 노인들의 유치원인 홍보관의 계략에 휘말려 납치된 이준하(남주혁)와 노인들을 구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모아 마블의 히어로 집단인 어벤져스에 버금가는 노벤져스를 결성하는데, 일명 덩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몸이 성해도 모자랄 판에 누구는 보조기가 있어도 거동이 불편하고 또 누구는 장님이고 등등, 하나 같이 몸들이 성치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허름한 노벤져스는 누구나 하나씩 있기 마련이라는 강점을 끌어내 주는 혜자의 리더십으로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준하와 위험에 빠진 노인들을 구해낸다는 허구에 가까운 성과를 달성하고 만다. 물론 극의 말미에서 이 모든 게 혜자의 머리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정말 허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하다만, 이미 우리에게 단순히 흥미로운 발상을 넘는 꽤나 큰 힘, 허구 이상의 진실에 가까운 영향력을 끼친 후다.

젊음을 유세 하며 살아가나 정작 젊은이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젊음의 가치를, 죽음을 목전에 둔 몸이 젊은 마음을 지녔을 때 내뿜는 역설적인 힘을 새삼 깨닫게 했다 할까. 그리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이런 저런 가능성과 소망이 꺾이는 서글픈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생마저 꺾인 게 아니며 늙음이 젊음의 부재를 의미한다면, 이때 부재하는 젊음은 몸이 아닌 마음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이를 느끼게 하기 위해, 어쩌면 작가는 시청자들을 두고 실험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뿐인 혜자를, 시간을 돌리는 대가로 갑작스레 늙어버린, 젊은 혜자로 믿게 함으로써, 젊은 혜자의 시선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찾아온 늙음을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처음부터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의 망상이란 걸 알았다면, 늙음은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 늙는 일은 그저 서글프고 비루한 것이란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도, 객관화되는 작업을 거칠 수도 없었을 터다.

여기엔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도 한 몫 했다. ‘늙은 혜자’임에도 생각과 행동이 젊고 대담한 혜자를 보며 우리는어떤 의심도 무리도 없이 속은 ‘젊은 혜자’임을 믿었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눈이 부시게’가 내포하고 있던 반전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젊은 혜자’의 마음으로 늙음을 충분히 누리며 젊음이 무엇인지, 늙는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았다.

어차피 삶이 젊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면, 나이가 드는 게 거스를 수 없는 세계의 이치라면, 젊음은 지나가기에 그만큼 귀하고, 늙는다는 것은 세계와 삶의 이치를 좀 더 이해해나가는 과정이기에 그만큼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 생의 정수에 가까이 가는 건데, 아름답지 않을쏘냐. 이는 ‘눈이 부시게’가 말하고자 하는 나이 듦의 미학이자 혜자처럼 자신의 삶을, 그리고 타인의 삶을 애틋하게 느끼는 사람들, 누구보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인생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하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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