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증명할 것 없는 ‘캡틴 마블’의 통쾌한 등장 [영화공감]
2019. 03.20(수) 11:41
캡틴 마블
캡틴 마블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마블의 ‘캡틴 마블’은 그간 남성 위주의 히어로들을 보여주었던 날들을, 참 마블스럽게, 멋들어지게 변명한다. 히어로들의 모임인 어벤져스는, 사실 따져 보면 캡틴 아메리카라기보다(물론 이쪽이 먼저 태어난 건 맞지만) 캡틴 마블이 그 시작점이라고, 굳이 증명할 필요까진 없지만 앞으로의 마블의 운명에 그 누구보다 지대한 역할을 할 히어로라고, 아주 제대로 증명해준다 할까.

일방적으로 주어졌던, 유약하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한 여성 캐릭터들이 주목을 받는 요즘이다 보니, 마블이 예고한 그들의 새로운 히어로, ‘캡틴 마블’을 향한 우려 중 한 가지는 뻔하고 과한 캐릭터, 그러니까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강하다는 걸 과하게 증명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마블이 지닌 본래의 매력까지 잃어버릴까 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도, 남성을 지배하겠다는 것도 아닌, 그저 이 세계를 함께 협력하여 살아내는 동일한 존재라는 맥락에 있다. 사실상 모든 왜곡된 권력구도에 대항하는 건강하고 올바른 움직임으로 보아야 마땅한데, 멋모르는 이들이 마치 여성이 남성 위에 서서 지배하려는 움직임이라도 되는 듯 오해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까닭이다.

하지만 마블은 ‘캡틴 마블’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보기 좋게 꺾는다. 외계의 전사 부족, 크리족의 요원이자 비어스란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첫 등장을 하는 캡틴 마블(브리 라슨)은, 뒷목에 통제장치를 붙인 채 훈련을 받는다. 훈련의 주된 목적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힘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하라는 것, 자칫 감정에 휘둘려 무슨 문제라도 일으키는 경우엔 주어진 힘을 거두어가겠다는 조건과 함께다.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옳아 보이는 목적이고 내용이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그녀를, 아니, 스톤의 힘으로 만들어진 광속 엔진 폭파 사고로 얻게 된 그녀의 힘을 소유하려는 크리족의 계략이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가진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녀를 적으로 돌렸을 때 감당해야 할 결과가 얼마나 두려울지 잘 아는 까닭에, 그녀를 철저히 통제하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맥락이, 그간 세계가 보인 여성을 향한 남성의 지배욕구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정확히 짚어낸다. 왜곡된 권력이 지니는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의 힘을 빼앗길 수 있는 또 다른 강한 상대의 등장이다. 그래서 철저히 억압하고 철저히 통제하며 자신 외에 그 누구도 권력을 가질 수 없음을 철저히 세뇌시키는 동시에, 권력을 갖고 싶으면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 내라고 요구한다.

캡틴 마블이 푸른 피의 ‘비어스’일 때도 붉은 피의 ‘캐럴’일 때도 항상 맞닥뜨려야 했던 상황이다. 그래서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걸어왔던 자신의 삶과 본래 이름인 ‘캐럴 댄버스’를 되찾자 마자, 자신의 힘이 주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온전히 받아낸 것임을 깨닫자 마자, 통제 장치와 함께 내던져버린 게 바로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데 무엇을 더 증명하란 건가.

“난 너에게 증명할 것이 없어”

영화 속 캡틴 마블의 대사다. 그렇다.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강하다고, 아니 어떤 존재도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할 까닭도 필요도 없다.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 세계를 함께 누리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마음껏 즐기며 살아갈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여성이자 히어로로서 마블의 운명을 제대로 짊어져 준 ‘캡틴 마블’, 더 이상 증명할 것 없는, 그야말로 통쾌한 등장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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