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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vs 타노스, 공동체를 보는 상반된 시각 [무비노트]
2019. 04.23(화) 17:52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엔드게임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뛰어난 개인이, 게다가 이를 잘 인지하고 있는 개인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건 참 어렵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결점이 있고 누구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요하는 까닭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매력은 따로들 떼어서 보았을 때 자기 잘난 맛에 살 것 같은 히어로들이 어쩌다 한 데 모여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고 부딪혀 가면서도 결국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에 있다.

‘어벤져스’의 최대의 적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을 맞추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스톤을 수집하여 ‘자비’ 혹은 ‘희생’의 가치를 빙자해 우주의 절반을 제거한다. 과거 빠른 인구 증가로 식량난을 겪던 자신의 고향에 제안한 방법으로 당시엔 거절당하고 쫓겨나 그의 고향이 결국 황폐화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좌절 어린 과거의 경험은 그에게 있어 그의 신념이나 생각이 옳음을 확신하게 하는 절대적 증거가 된다.

어떤 맥락에서 타노스와 어벤져스가 스톤이 지닌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표면적 이유는 동일하다. 더 나은 미래를 얻기 위해. 그러한 방법으로 한 쪽은 거대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다른 한 쪽은 어떻게든 희생을 막아 보려 안간힘을 쓴다는 게 다르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비슷해도 더 나은 앞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이루는 내면의 동력이 다름에서 비롯된 결과다. 어벤져스에게 ‘자비’나 ‘희생’보다 더 큰 가치는 ‘함께’다. 패배하더라도 함께, 승리를 거두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물론 희생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즉, ‘함께’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거라면 희생도 서슴지 않으나,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국한된 이야기다. 즉, 승리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필수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에 국한된 것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희생’의 상황까지 가지 않게 노력한다. 타노스와는 상반된 이러한 시각은 어벤져스 각자가 그동안의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히어로라도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좌절할 수 있음을, 그리고 동시에 선한 의지를 함께 할 이들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한 까닭에 가능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1’의 스타로드를 필두로 한 조금은 모자란 구석을 지닌 히어로들은 스톤이 무엇인지도 알고 스톤의 힘 또한 겪어 보았지만 스톤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스톤을 욕심내는 자들로부터 파괴될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그 힘을 잠시 빌렸을 따름이다. 이들에게 스톤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친구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스타로드가 스톤을 쥐고 고통스러워하자, 그와 함께 하고 있는 히어로들이 본인에게 얼마나 해롭고 위험할 지 알면서도 손에 손을 잡고 스타로드의 고통을 나눠 쥔 채 스톤의 힘을 사용한 것이리라.

지구의 히어로들도 마찬가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이미 몇 개의 스톤을 획득하여 강력해진 타노스가 비전의 것을 노리고 있단 소식에 비전은 타노스를 막을 수 있도록 자신을 파괴해 달라고 한다. 이에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어벤져스는 선택의 여지는 아직 있다며 비전의 희생을 막기 위해 그들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VOL.1’와 달리, 비전은 비전대로 파괴되고 스톤은 스톤대로 빼앗겨 타노스의 목적은 실행된다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고 만다.

본인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의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사랑하는 딸까지 죽음으로 내몰면서 달려온 타노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터다. 어차피 수많은 희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싸움에 희생을 슬퍼하고 막기 위해 노력하다니,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보다 언젠가 사라질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을 중하게 여기다 패배하다니, 게다가 좌절과 절망감을 딛고 다시 또 일어나 질 수밖에 없을 싸움에 다시 또 힘을 합쳐 맞닥뜨릴 준비를 하다니, 유약한 데다 어리석다. 아주 징하게.

그러나 우리는 이 유약한 데다 어리석은 히어로들, 끝끝내 넘어진 자리를, 두려움을 짚고 다시 일어나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 비틀어진 세계를 바로 잡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우는 히어로들에게 매료되어 그들의 승리를 간절히 예감하고 또 간절히 기원한다. 타노스의 신념이 산산조각 나길 바란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 할지라도 가슴 한 켠에는, 개인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 함께 하기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때로는 희생까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그러한 공동체를 향한 염원이 있는 것이다. 곧 개봉될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여기서 기인한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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