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엽 작가, 디오라마에 담은 무한한 청사진 [인터뷰]
2019. 05.19(일) 17:15
신언엽 작가
신언엽 작가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흔히 모델하우스 전시장에서 접했을 법한 건축 모형 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예술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이가 있다. 한반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4.27 판문점 선언을 모형 안에 고스란히 담아낸 신언엽 작가의 이야기다.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신언엽 작가는 영화 '싱글즈',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 영화, 공연, CF 등 다방면의 콘텐츠에서 미술 감독을 맡아왔다. 그런 그가 돌연 디오라마의 세계에 푹 빠진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디오라마란 작은 공간 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놓고 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입체 전시물을 뜻한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건축 모형에 스토리를 더하는 일이다. 여기에 조명과 음향 등의 요소와 영상 연출을 통한 동적인 요소까지 더해 아트와 기술의 컬래버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내가 하는 디오라마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과제를 위해 만들던 건축 모형이 지금의 디오라마 작품으로 발전하기까지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취미로 히어로 피규어들을 모으던 신언엽 작가는 피규어들에 맞는 만화, 영화 속 장면들을 디오라마로 구현하며 피규어들에게 집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영화 '배트맨' '대부' '백 투 더 퓨처' '매드맥스' '마스크' '트랜스포머' 속 상징적인 장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실존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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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엽 작가는 전공인 무대디자인 기술과 영화, CF 촬영 현장 등에서 쌓아온 내공을 발휘해 디오라마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입혔다. 조명과 LED를 이용한 특수 효과, 음악까지 어우러져 스크린 속 카메라 앵글을 그대로 재현해 영상 촬영을 진행했다. 디오라마를 주제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한 셈이다. 이에 그의 작품은 입소문을 타며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작품의 가치도 올라갔단다.

이처럼 소위 '히어로물'에 빠져있던 그가 작업 방향을 튼 것은 지난해 한반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4.27 판문점 선언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디오라마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역사적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해 놓는다면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작업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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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순수하게 취미 삼아 사비로만 작업하던 디오라마였지만 4.27 판문점 선언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운 좋게도 통일부 관계자와 미팅을 가질 수 있었고, 그간의 포트폴리오와 미리 준비한 3D 작업물, 피규어를 모두 들고 가서 관계자를 설득했다. 디오라마가 워낙 생소한 장르다 보니 많은 설명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통일부와 협력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됐고, 디오라마를 전시할 장소까지 제공받게 됐다.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피규어의 사이즈와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해 디오라마를 실제 6분의 1 크기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실제 현장을 방문하기에는 까다로운 절차를 겪어야 했기에 수만 장의 사진을 참고한 끝에 도면을 만들 수 있었다. 규모가 큰 작업이다 보니 여느 건물을 짓는 것처럼 많은 노력이 필요해졌지만 신언엽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진행했다. 3D 프린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수작업으로 모든 부품들을 만든 끝에 비바람에 녹슨 파란 합판 표면의 질감, 모래 바람이 불었을 때 바람의 표현, 빗물의 흔적 등을 디오라마에 온전히 녹여낼 수 있었단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피규어 헤드를 일일이 깎아 수정하고 경호원들의 넥타이, 배지, 완장까지 모두 제작해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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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업물은 시민들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신언엽 작가는 "실제로 가보지 못했던 공간을 눈으로 보며 아이들은 역사를 배우고, 어른들은 감동을 받으시더라. 외국인들은 작품 앞에 서서 남북문제에 대해 30분씩 토론을 하기도 했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언엽 작가가 디오라마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원대한 청사진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북한에서도 전시를 하고 싶다"며 "미술 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에도 생소한 장르를 소개하고 싶다.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 마음을 풀 수 있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포부를 드러내는가 하면, 이후에도 공익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으로 9.19 남북 정삼회담, 조선노동당 로비 청사에 선 각국 정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을 시작으로 이순신 장군, 위안부 등을 소재로 삼아 "디오라마를 역사적인 사실을 쉽게 풀어주는 하나의 소통 창구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디오라마라는 장르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무대디자인, 설계와 실제 제작부터 전시, 기획까지 다양한 과정을 대학의 학사과정과 연계해 강의로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는 일도 이 꿈에 포함돼 있다. "문화 장르 안에서 디오라마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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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만족도가 200%에요. 작업을 할 때 완성품의 모습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지고 다음 작업을 하고 싶어서 빨리 내일의 해가 뜨길 기다리게 되죠. 5년 간 기초를 닦았으니 이제는 디오라마라는 장르가 조금씩 빛을 보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을 100개 만들어 제대로 된 디오라마 박물관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죠."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 신언엽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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