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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기생충’으로, ‘괴물’로 만드는가 [무비노트]
2019. 06.13(목) 09:52
기생충 봉준호
기생충 봉준호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봉준호의 2006년작 ‘괴물’의 영어 제목은 숙주란 의미를 가진, ‘The Host’다. 그리고 참 우연찮게도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차지한 그의 작품은 ‘기생충(PARASITE)’이고. 우리는 여기서 흥미로운 연결점을 발견하며,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엿본다.

숙주와 기생충, 공생관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공생이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생을 영위하는 것이라면 기생은 우선 동등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의 생물체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로, 도움을 받을 처지는 되나 줄 입장은 되지 못하는 쪽이 좀 더 나아보이는 다른 한 쪽에 기대어 생을 이어나간다. 즉, 주고 받는다는 균형이 깨진 상태로, 이 때 필요한 건 숙주의 넉넉한 우월감이다.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기생충은 자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할 숙주를 찾은 후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살거나 해당 숙주가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넘어가 줄만한 선 안에서 기생을 시작한다. 기생충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 숙주를 공격하는 법은 거의 없다. 혹여 공격하여 해를 입힐 경우가 발생한다면 해당 숙주를 터전이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거점 정도로 인식한 까닭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아들 기우(최우식)가 글로벌 IT기업의 CEO인 동익(이선균)의 집에 운 좋게 과외 교사로 들어가면서 기생의 기회를 마련한다. 그 결과 기우를 비롯하여 동생 기정(박소담)은 미술심리치료사로, 아빠 기택은 운전기사로 또 엄마 충숙(장혜진)은 집사로, 말 그대로 가족 전원이 동익의 집에 취업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들의 관계를 아는 이는 없다.

진입과정이 좀 솔직하지 못해서 그렇지, 마구잡이로 놀고 먹진 않는다. 누(累)가 되지 않는 선 안에서 할만큼, 해야 할만큼은 하려 애 쓰고 있다. 문제는 기생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너무도 다른 구간에 존재하는 삶의 모습이 자꾸 속 깊이 묻어둔 자존감이라든가, 치욕감이라든가, 등등의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을 정말 기생충 보듯 대하는 숙주의 속내를 맞닥뜨리고 기어코 음울한 분노를 터뜨리고 만다.

기생충이 숙주에게 분노한다, 공생하는 게 당연한 인간이 기생하는 관계를 도입해서 벌어진 일이다. 처음부터 정상적인 기생관계가 아니었던 것. 아무리 기생충과 숙주의 모습을 본 따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고 기생충이나 숙주가 될 수 없으며, 양측 모두 동등한 입장을 취하는 동일한 생명체로 기생의 기준(서로 다른 종이어야 한다는)을 충족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결말은 비극적, 누구는 처음부터 볕이 반만 드는 반지하에서 혹은 지하에서 벌레처럼 살고 싶었겠냐며, 정말 최선을 다해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상황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울분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아니, 숙주도 기생충도 될 수 없는 인간들에게 기생충과 숙주라는 틀을 씌워 놓은 걸까.

영화 ‘괴물’에는 한강에 대거 투하된 유독성 화학약품의 영향으로 탄생된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등장한다. 한강 안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우리에게 한강 둔치를 활보하며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잡아 먹어 버리는 괴물의 모습은 예기치 못한 공포였다. 분명 그 전까진 나름 큰 문제 없이 공생해 왔을 인간과 한강 속 생물체의 관계가 한 쪽의 이기심으로 한순간에 비틀어져 버린 것이다.

이 이기심은 권력의 구조, 욕망의 구조에서 나온 배설물로, 분명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동일한 생명체임에도 불구. 마치 한 쪽은 존중받지 않아도 될 생명체인 것 마냥 구분하여 위층과 아래층을 선사한다. 각각의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서로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공생관계는 불가능하고, 깨진 공생의 자리에 기생충과 숙주라는 새로운 틀이 덧입혀지니 이게 참 상당히 기괴한 상황인 게다.

결국 기택처럼 정말 기생충이 되지 않는 이상 숙주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는 수밖에.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이 구조와 틀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변질된 방식임을, 우리는 기생충도 숙주도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 변화는 작은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니까. 봉준호 감독이 ‘괴물’에서 ‘기생충’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온 세계관인 동시에 그 안에 담아온 묵직한 논고가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기생충’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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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괴물 | 기생충 |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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