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나혜석, 친일보다 더 큰 죄였던 여성의 간통
2019. 06.16(일) 22:37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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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종은 인턴기자] '역사저널 그날'에서 나혜석이 겪은 아픔에 대해 소개됐다.

16일 밤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은 시인이자 화가인 나혜석 편으로 꾸며진 가운데, 배우 이시원이 출연했다.

나혜석은 최린과의 관계로 김우영에게 이혼 소송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나혜석은 네 명의 아이 때문에 이혼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를 거절한다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 김우영의 협박으로 인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김우영도 다른 여자와 서울에 살림을 차리는 등 간통죄에 성립될만한 행동을 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간통죄는 여성에게만 적용됐기 때문에 당시 간통죄는 나혜석에게만 적용됐다. 또한 나혜석은 불륜을 사유로 이혼했기 때문에 아무런 위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를 비참하게 생각했던 나혜석은 1934년 '이혼 고백장'을 발표하며 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나혜석은 "남성들은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처벌받지 않는다. 여성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나혜석의 이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은 '이혼 고 백 장'이 발표됐을 때 사회에서 맹비난을 알려졌다. 하지만 불륜의 상대 최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가 남성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직책을 이용해 여론을 압박했기 때문.

이에 나혜석은 최린 때문에 아내로서의 권리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가행했다. 이는 아침 신문에 실릴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최린의 권력으로 저녁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고 알려져 놀라움을 샀다. 당시 나혜석은 현재 가치 약 15억 원에 해당되는 1만2000원을 위자료로 청구했다고 알려졌으며 나혜석은 결국 최린과 합의 한 이후 소송을 취하했다.

합의했지만 이혼이라는 주홍글씨 낙인은 나혜석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혼한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화가와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잃어가던 나혜석은 1948년 무연고자 병동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영양실조와 중풍으로 사망한 나혜석은 당시 이름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 보관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작품이 전소했다고 알려져 아쉬움을 더했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인턴기자 news@tvdaily.co.kr/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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