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 [무비노트]
2019. 07.29(월) 17:26
라이온 킹
라이온 킹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라이브액션(실사)으로 변형시킨 영화 ‘라이온 킹’이 실패한 주된 요인은 서사의 부족이다. 실제에 근접하게 만든 결과물이나 중심 캐릭터들의 표정은 이야기의 맥락을 투영해주지 못하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작을 압도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OST도 그저 배경음악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감상평처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볼 법한 동물 다큐멘터리에 인간의 목소리만 덧입혀 놓은 꼴이라 할까.

과거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우리에게 준 감동은 동물의 거대한 서사였다. 공존과 순환의 법칙을 따라 굴러가는 정글의 세계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사자무리 내의 서열 싸움에는, 단순히 동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가족애, 권력욕, 영웅의 성장기 등, 우리가 공감할 수 있을만한 가치들도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동물의 모습을 취한 인간의 서사라 하겠다.

우선 주인공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부터 살펴보면 강력한 카리스마로 주어진 영역을 다스리나 자신의 힘을 함부로 남용하진 않는, 올바른 권력자의 초상이다. 그는 자연의 풍요로운 아름다움의 수호자로 사사로운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며, 본인의 힘을 오로지 놀랍다 못해 성스러운 자연의 순환 체계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라고 두려움이 없진 않을 터,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심바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따르며 함께 하는 많은 동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매순간 용기있게 일어설 따름이다.

우리가 으레 입에 담곤 하는 말, 사람보다 낫다는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하는 대상으로 덕분에 우리는 한낱 동물의 서사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리하여 왕의 자리를 탐내는 동생 스카의 계략에 빠져 심바를 눈 앞에 두고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한다. 어린 심바의 성장기도 마찬가지다. 아빠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도망치듯 살던 곳을 벗어나 떠돌아다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돌아오는 모습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의 서사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 알맞게 밀착되어 있는 OST는 보는 이들의 몰입과 감동을 배로 만드는 것이었고.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우리의 유년 시절의 상상력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작품으로 탄생했더랬다. 그런데 2019년 새롭게 개봉한 ‘라이온 킹’에서는 실제화된 동물 캐릭터들에 가려진 것인지, 일정 이상의 감정 표현이 불가능했던 동물의 표정 탓인지 원작에서 거대했던 동물의 서사가 말도 안 되게 빈약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섬세하게 그려져야 했을, 심바가 과거의 상처를 딛고 돌아와 스카를 물리치는 대목은 그야말로 최악의 개연성이었다. 심바와 스카의 싸움이 실제 사자들의 서열 다툼에 가깝게 그려진 점은 높이 살만 했으나 현실감이 추가된 만큼 어려워질 몰입도를 고려하여 이야기의 전개를 좀 더 촘촘한 형태로 변형시켜주었다면 그들의 서사를 잃을 일은 없었을 터다.

일각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단 의견도 있다만 예술의 세계에서 도전은 무모할수록 좋다. 무모한 도전이 있기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거니까. ‘라이온 킹’의 문제는 안 될 일을 무리하게 붙든 데 있는 게 아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실사로 틀을 바꾸는 커다란 도전을 했으면서 정작 콘텐츠는 어떤 발전도 시키지 않은 것에 있다. 그러니 원작의 서사와 새로운 틀은 따로 놀 수 밖에 없으며 이는 해당 작품의 서사에도 치명적인 결핍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즉,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아야 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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